국립중앙박물관 고대 그리스·로마 상설전 관람 후 느낀 소회
완연한 겨울에 들어선 어느 날,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화와 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가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라는 이름의 이 특별한 전시는 유럽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과 공동 기획한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웬 그리스·로마 전시?’라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예전부터 서양 미술과 관련된 전시는 개최되어 왔다. 특히 지난 1년 간은 누적 관람객 수 36만 명을 기록한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역시 빈미술사박물관 특별전인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과 같은 블록버스터급 서양 미술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그리스·로마전 또한 이러한 특별전시의 연장선상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보다 특별한 점은 ‘상설전시’라는 것이다. 상설전시관에서 세계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지난 2019년부터 조성한 이집트실, 세계도자실, 메소포타미아실에 이어 개최하는 4번째 세계 문명·문화 주제관 전시이다. 길어야 몇 달이면 끝나는 다른 전시와는 다르게 2027년 5월 30일까지 무려 4년 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추운 날씨의 평일임에도 박물관에는 단체관람을 온 듯한 학생들과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관람객들이 눈에 띄었다. 3부로 구성된 그리스·로마실은 3층 세계문화관의 한 쪽 끝에 있었다.
1부는 우리가 잘 아는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신화의 세계), 2부는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의 특징 중 하나인 초상 미술(인간의 세상), 3부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사후관(그림자의 제국)에 각각 초점을 맞추었다. 신들의 모습이 새겨진 그리스 도기와 세계사 속 익숙한 이름의 로마 정치인들의 초상 등 책에서만 보던 그리스·로마 작품들이 유럽의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전시를 둘러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직접 봤다는 반가운 마음도 있었지만 유럽의 박물관에서 느꼈던 질투와 열등감, 씁쓸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생까지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국과 세계 유수의 문화유산을 당연하게 향유하는 그곳의 문화적 풍토는 문화 정책을 공부하고 싶었던 유학생에게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로 다가왔었다. 그 차이를 먼저 인정하고 메우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해외 정책을 연구하고 벤치마킹한다 해도 수박 겉 핥기에 불과해 보였다.
하지만 약 10년 만에 돌아온 한국도 달라져 있었다.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세계 문화를 향유하는 기회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꼭 코로나19로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어서 만은 아니었다. 문화유산에 대한 폭발적 관심과 높아진 국격을 바탕으로 한 국가 간 상호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계문화관의 ‘그리스·로마실’이 그 마중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리적, 시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고대 그리스·로마와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인류 보편 가치를 지향하는 박물관’이라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비전과 전략이 그 답을 알려주고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는 인간과 그 인간을 둘러싼 세계를 탐구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고민을 하며 철학과 민주정, 로마법과 같은 그리스·로마 유산의 영향 아래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세계로 확장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 결과, K-컬처는 날개 돋친 듯 세계로 뻗어나갔다.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이제는 세계의 문화에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높아진 한국 문화의 위상을 기초로 인류 보편적 가치에 관심을 둘 때 우리 문화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문화를 흡수하여 재해석하고 자신의 고유 문화로 발전시킨 고대 로마처럼, 서로 각기 다른 문화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함께 묶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고대 그리스·로마 이 두 문화권처럼 말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정수민 amantedepari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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