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反과학·非과학 판쳐도 과학의 질주 기대한다
얼마 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2023년 한국을 빛낸 과학 성과들을 공개했다. 액체에서의 정전기 현상 규명부터, 준입자 ‘애니온’ 특성 발견, 밀 육종 기간을 13년에서 7년으로 단축한 성과까지 국내 과학계가 거둔 풍성한 성과물들이 이름을 올렸다.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인류의 지식을 확대하고 삶의 질을 끌어올릴 과학의 저력을 보여준 세계적인 성과물이다. 특히 지난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이 이뤄낸 결과물이어서 어느 때보다 의미가 깊다.
갑진년 새해에도 과학의 질주는 계속될 전망이다. 당장 올 11월 아폴로 계획 이후 52년만에 유인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2호가 달로 향하고 지난해 전 세계를 달군 대화형 인공지능(AI) GPT-4와 제미나이를 훨씬 능가하는 GPT-5의 등장도 예상된다. 미국과 유럽에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새 슈퍼컴퓨터가 속속 도입되고 매년 수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뎅기열과 지카바이러스를 막아줄 모기의 등장도 예견된다. 한편에선 지구 온난화의 원인인 탄소 배출량이 올해 처음으로 주춤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난치병인 파킨슨병 줄기세포 치료제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예방 백신의 유효성을 밝힐 임상시험 결과를 포함해 인류에게 희망을 안겨줄 다양한 성과들도 기대된다. 한국에선 땅 위의 인공태양인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K-STAR)의 1억도 운전, 소형모듈원자로(SMR) 실물 개발을 포함한 크고작은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각국의 과학 협력을 중단시킨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의 전쟁, 160년 만에 미국을 가장 분열로 끌 고갈 대통령 선거를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을 주요 걱정거리로 꼽았다. 실제로 미국만 해도 대통령 선거 무소속 후보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감염병에 대한 정부 지원 연구를 중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기업가 출신 공화당 예비후보인 비벡 라마스와미는 ‘기후변화는 사기극’이라며 탄소 감축 노력을 깎아내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아르헨티나의 새 지도자가 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과학의 비효율성을 내세워 정부 연구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주요연구기관을 폐쇄하겠다는 공약을 내놔 과학계의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막달레나 스키퍼 편집장은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R&D예산과 과학 정책의 변화가 주는 시그널이 세계 과학계에 주는 효과가 의외로 크다”며 “과학 정책의 후퇴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정치 지도자들의 선동은 먹고 살기 어려워진 국민에게 점점 잘 먹히고 있다. 미국 퓨리서치에 따르면 과학 대국인 미국에서도 과학에 대한 신뢰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 미국인 가운데 57%만이 과학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16%p 더 줄어든 수치다. 최근에는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가 음모론을 믿는 경향이 비슷해서 과학을 뒷받침하는 합의 기반이 약화하고 균형잡힌 태도로 과학을 옹호하기가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실 한국도 상황은 비슷한데 비교적 가장 가까운 2020년 실시된 설문에서 과학자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이들이 14%에 불과해 조사대상 국가 중 꼴찌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는 낙관적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과학자들이 나서 더 다양한 외부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목소리로 소통해 더 많은 시민이 과학을 신뢰하고 지지하게 하는 노력을 계속해서 한다면 말이다. 과학자와 대중의 소통이 활발한 미국에서도 과학자들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지금도 나온다. 사이언스의 홀든 소프 편집장도 최근 논평에서 “과학자끼리 모여 회의하고 논문을 쓰고 동료 평가를 하며 과학을 발전시켜도 여전히 누군가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며 “과학자들이 거만하게 비쳐지거나 포퓰리즘을 조장하지 않으면서 반과학적 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신념과 상관없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자연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의 삶을 증진할 방법을 찾아나선 사람들을 지원할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에선 지난해 정부가 R&D 예산 삭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학의 비효율성과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다. 물론 여러 과학자의 노력과 여론의 반대로 R&D 예산안에서 일부 다시 늘어났지만 정부 연구기관의 혁신과 역할 변화의 필요성은 숙제로 남겨졌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두고 벌인 과학계 논쟁도 훗날 ‘반과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과학계에 남겨진 혹시 모를 관행과 편의주의가 차별과 특혜를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수십 년간 이어진 R&D 시스템에 그냥 적응해버린 부분은 없는지, 행여 카르텔을 걷어 내려다가 실력이 뛰어난 연구자들을 함께 다치게 하는 건 아닌지, 실력보다 배경과 인맥이 좌우하는 평가가 남아있는 건 아닌지 과학계 스스로가 질서를 잡아나가길 기대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부분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과학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명분을 주지 않도록 말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2% 최상위 연구자 증가율이 두 번째로 빠른 나라로 떠올랐다. 이는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여러 정권을 거치며 꾸준히 다져온 기초 체력 덕분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달 주변을 돌고 있는 다누리와 우주기술 자립국가의 기틀을 만든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수많은 기초 연구에서 경이로운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2024년은 한국의 과학계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사회와 더 많이 소통해 최근 이룬 성과에 걸맞은 위상을 되찾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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