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사설] 2024년, 다시 저널리즘의 길을 묻다
미디어오늘 1433호 사설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2024년 새해가 밝았다. 희망과 기대를 담은 덕담이 오가지만, 새해맞이 표정은 결코 밝지 않다. 경제난과 안보위협, 인구소멸 위기에 이르기까지 미래를 위협하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건만, 해법을 찾아야 할 정치권은 파당 싸움에만 골몰한다. 이대로 가면 100일이 채 남지 않은 22대 총선을 계기로 정치 쇄신은커녕 분열과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시민사회도 이념과 세대, 지역, 성별 등으로 갈라진 채 상대 진영 심판만 부르짖거나 정치혐오에 빠져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언론은 어떤가. 위기가 깊을수록 철저한 검증에 기반한 사실 보도로 시민들의 판단을 돕는 언론의 역할이 긴요하다는 언명이 무색할 만큼 무력하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디지털 혁명이 몰고 온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생존을 위협받고, 가깝게는 정권의 전방위 언론 탄압에 내몰려 있다. 더 큰 문제는 갈수록 심화하는 정파적 대립과 반목에 도구로 소용되거나 더 나가 자발적으로 복무하면서,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독립 언론'은 흔히 광고(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 언론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정치적 독립성은 모든 언론의 필수요소다. 저널리즘 교과서로 불리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모든) 취재 대상들로부터의 독립 유지”와 “권력에 대한 독립적인 감시”를 강조한다. 이는 진실에 대한 의무, 시민에 대한 충성, 사실확인의 규율이라는 최상위 원칙을 뒷받침하는 실천 지침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저널리즘과 저널리즘 아닌 것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독재정권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언론의 독립성은 집권세력과의 관계로 치환되곤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몇차례 정권교체를 거치며 특정 정당과 언론이 공조하는 '정치-언론 병행성'이 심화했다. 모든 언론의 규범인 독립성이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고, 트래픽 경쟁과 독자의 호응 속에 '팬덤 정치-언론'의 공생구조를 낳기도 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2020년 조사에서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한다'는 응답(44%)이 40개국 평균(28%)을 훌쩍 넘은 것은 편향적 소비자도 그 구조의 한 축임을 보여준다. 뉴스의 선택적 소비를 넘어 다수의 시민들이 뉴스를 아예 보지 않은 '회피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2023년 언론계를 돌아보자.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공영방송 이사(장)와 사장 해임,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파행 운영, 대선 직전 뉴스타파 녹취록 보도를 빌미로 한 전방위 압수수색, 포털에 대한 압박과 팩트체크 지원 중단 등. 이명박-박근혜 시절보다 훨씬 거친 언론장악 시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와 언론노조 등을 제외한 언론계 전반은 무력하다 싶을 만큼 잠잠하다. 시민-독자의 관심도 미미하다. 이 서글픈 무관심에는 정권 교체에 따라 공수를 바꿔가며 지속되고 강화돼 온 정파적 공생구조에 대한 염증이 깔려 있다. 전 정부에서도 강도와 방법이 달랐을 뿐 언론장악 시도가 없지 않았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다.
정파성에 기반한 언론 생태계를 타파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다수의 독자를 잃고 한없이 쪼그라든 언론과 언론인들부터 각성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본질은 옳고 그름의 일도양단과 정의 실현이 아니라 일관된 잣대에 들고 끈질기게 사실을 검증하는 과정임을 되새기자. 호불호에 따라 환호와 비난을 쏟아내는 소수가 아니라 원칙을 갖고 회의하는 독자를 발굴하자.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 당시 대안으로 제시됐던 자율규제기구 공론화를 다시 시작하자. 정파적 공생구조의 과실은 소수만 향유하지만 그 폐해는 공동체 전체의 몫이다. 2024년에는 그 낡은 구조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는 첫 걸음을 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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