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권 분쟁, 더 치열해져도 된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2024. 1. 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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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家 형제간 분쟁으로 재벌기업 지배구조 도마에
일반 주주 입장에선 경영권은 경영자의 능력과 실적에서 나와야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

한국타이어 지주회사 한국앤컴퍼니를 상대로 한 공개매수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조현범 회장은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조현범 회장의 형인 조현식 고문과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손잡고 경영권 확보를 위해 진행해온 공개매수였다. 하지만 공개매수에 참여한 주주는 기준일까지 최소 매집 지분율을 밑돌았다. 최소한 20.35% 이상의 지분을 사들인다는 계획이었지만 주주들의 9% 정도만 참여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15년 8월1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마친 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벌그룹 혈육 간 분쟁 사례 적지 않아

공격의 빌미가 된 것은 조 회장의 사법적인 문제였다. 2020년 업무상 횡령 등으로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조 회장은 계열사 부당 지원 등의 혐의로 또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분쟁의 불씨는 아직 살아있다. MBK파트너스는 시세조종과 주식 대량보유 보고 의무 위반 등이 의심된다며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업계에서는 법적인 공방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경영권을 놓고 벌어지는 분쟁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은 부정적이다. 그렇지만 재벌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벌어지는 분쟁, 특히 혈육 간 다툼은 드물지 않았다. 멀리는 2000년 현대그룹에서부터 두산, 금호, 한진그룹에서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있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분쟁도 치열했다. LG그룹에서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올해 초 어머니와 여동생들까지 세 모녀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모두가 가족이 얽혀 일어난 싸움이다. 드라마 소재로는 재미있겠지만 확실히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대주주가 아니라 일반 주주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앤컴퍼니의 경우 공개매수 실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아버지인 조양래 명예회장이었다. 차남인 조 회장을 지지하며 지분을 사들여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일반 주주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한다면 굳이 특정인이 기업의 경영을 맡아야 할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주가로 나타난 실적을 기준으로 보면 현 경영진을 신임할 수 있는 이유는 별로 없다. 현재 주가는 10년 전에 기록했던 최고가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기업 범죄를 저지른 경영진이 자리를 지키는 것도 이상하다. 조 회장은 현재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일 뿐이다. 공개매수는 막아냈다고 하지만 MBK파트너스가 제기한 경영자의 사법적 문제와 지배구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경영권은, 더구나 주식회사의 경영권은 원칙적으로 주주의 승인을 받아 행사할 수 있는 제한된 권리일 뿐이다. 누가 경영권을 가지는 게 좋은지 결정하는 기준은 당연히 누가 더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주식회사에서 주주가 인정하는 경영권은 경영자의 능력과 실적에서 비롯된다. 능력이 부족하고 실적이 미흡한 경영자가 일반 주주의 뜻과 상관없이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주식회사는 다른 사람의 돈을 많이 모아 사업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많은 의결권을 원하면 투자를 받지 말든가, 주식을 더 매입해 지분을 확보하면 된다. 주식회사를 만들어 지분율이 낮아진 것은 다른 누군가가 강제한 것이 아니다. HMM(옛 현대상선) 경영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은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계열사 팬오션의 유상증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증자하면 지분율은 그만큼 낮아진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다.

우호적인 기업 인수가 아닌 경우에는 경영권 분쟁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기업의 인수합병(M&A)은 더 자주, 더 치열하게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적이 부진한 경영자의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주주의 권리다. 더 나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기업이 실력이 부족한 대주주 때문에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면 대주주를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대주주가 아니라 기업이다. 인수합병은 기업의 성장 전략이기도 하다. 인수합병은 계속 기업의 유지에 좋은 수단이다. 기존 설비를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적정한 자원 배분을 촉진할 수 있다. 기업 보유 자산의 대체비용과 경영권의 가치를 쉽게 산정할 수 있도록 해 증시 기능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근로자들의 고용이 승계되고, 사업이 확장된다면 국가 경제에도 좋은 일이다.

물론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주가조작 같은 불법적인 행동은 없어야 한다. 시장의 경쟁을 훼손해도 곤란하다. 정부 규제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인수합병에 의해 기업 경영권 시장이 활발해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어 가치가 훼손된 기업에 대해 인수합병 시도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기본적으로 인수합병은 기업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효과적 수단이다. 플랫폼 유통기업 쿠팡은 영국 명품 플랫폼 파페치(Farfetch)를 인수한다. 세계 1위 온라인 명품 전문몰이라고 한다. 인수금액은 5억 달러다. 저렴한 가격에 신성장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불필요한 비용 지출이라고 지적한다.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플랫폼을 고급화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도전하지 않고 도약을 기대할 수는 없다.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에 나선 박철완 상무가 2021년 3월11일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제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벌그룹 지배구조 문제 다시 돌아봐야

한국 경제는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다. 2011년 이후 우리나라는 평균적으로 2% 후반대에서 3% 초반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왔다. 인수합병 시장의 활성화는 경제 전반의 역동성과 생산성을 높여 경제를 성장시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인수합병 시장이 활발하지 않다. 사회 전반의 부정적 시각도 있고 좋은 매물이 많지 않으며 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지만, 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의 영향도 크다. 재계에서는 규제 개혁 이전에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장치가 부족하다며 차등의결권주식, 신주의 제3자 배정 요건 완화 같은 방어 수단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영권 방어 수단도 대주주가 아니라 기업에 필요한 경우 사용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경영권은 주주들에 의해 인정받아야 한다. 주식회사의 경영권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승인받는 것이다. 성과를 통해 주주들의 신뢰를 얻는 것보다 나은 경영권 방어 수단은 없다. 한국앤컴퍼니의 사례는 대기업들이 지배구조 문제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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