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아진 얼음 두께...해빙 활주로 건설도 지장받을 정도”
남극 기온연구, 지구 이상기온 신호등 역할
2022년 역대 최소 기록한 해빙면적 우려
탐사대 대륙기지 선정위해 K-루트 개척 지속
“최근 남극 해빙(海氷) 상황이 굉장히 이례적입니다.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은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소속 홍상범 월동연구대장이 던진 이 한 마디에, 1만2740㎞(남극 장보고과학기지와 한국의 지리상 거리) 건너 헤럴드 스튜디오가 잠시 술렁였다. ‘역대급 기후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남극은 이상기후에 몸살을 앓고 있음을 알려준 말이었다.
헤럴드는 새해를 맞아, 올해로 설립 10주년이 되는 장보고과학기지의 홍상범 대장을 지난해 12월 19일 랜선으로 만났다. 장보고과학기지는 한국이 남극에 두 번째로 건설한 과학 기지이자 남극 대륙에 세운 첫 기지다. 최근 이상 기후 연구와 관련해 장보고과학기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22년 11월 부임한 홍 대장을 줌을 통해 연결했다. 2022년 월동연구대장을 역임한 뒤, 현재 극지연구소 생명과학연구본부에 근무 중인 한세종 박사는 권남근 뉴스콘텐츠부문장 등 헤럴드 취재진과 스튜디오에서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홍 대장은 2022년 해빙(바다 얼음·Sea Ice) 면적이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그만큼 기후 이상이 심각하고, 연구진 역시 이에 대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연구하시는 분들이 정말로 놀라울 정도의 최소 면적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남극은 북극에 비해 기후 변화에 덜 민감한 지역으로 여겨졌으니, 이 현상의 원인에 대해 더욱 궁금해합니다”
홍 대장은 최근 대한민국 최초 남극 쇄빙선(해수면의 얼음을 분쇄하며 항로를 여는 장비를 갖춘 배)인 ‘아라온호’의 선장에게 들은 얘기도 전했다. “선장의 말에 의하면 남극에 들어갈 때 쇄빙이 예년보다 수월해졌다고 합니다. 얼음 두께가 전보다 얇아졌단 뜻이지요.”
바다 얼음이 녹는 것은 국내 연구진의 남극 기지 개척과 현지 생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얼음이 얇아지면 기지 관련 수송부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 인력과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기지 주변에 ‘해빙 활주로’가 건설돼야 하는데, 얼음이 얇아지면서 향후 해빙 활주로가 건설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남극 기온 보면 주요 국가의 기후 위기가 보여”=국내 연구진은 왜 남극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것일까. 남극 기온 연구가 지구의 이상 기온을 점치는 데, 일종의 ‘신호등’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극에서 과도하게 기온이 높아질 경우, 지구 전체의 이례적인 기온 상승이 뒤따르는 것으로 학계는 분석하고 있다.
지구 평균 기온 증가율과 극지방 기온 증가율을 서로 비교할 때, 발견되는 ‘극지 증폭 현상(극지 기온 증가율이 지구의 평균 기온 증가율의 2배에 이름)’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연구자들은 극지 증폭 현상이 지구 중위도 지역(한국·일본·미국·유럽 지역)에서 발생하는 기후·기상 조건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지리상 중위도에 위치한 주요 선진국 내 연구진이 더욱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규모 자연 재해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도, 극지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홍 대장은 “재난 상황을 잘 예측하기 위해, 극지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자연현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남극에 대한 국내 연구진의 연구 수준은 날로 향상되고 있다. 2022년 11월 발간된 ‘제 1차 극지활동 진흥 기본계획’에 따르면 한국은 ‘극지해양기초연구·공학 인프라’ 분야에서 모두 미국의 75%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극지 연구의 후발주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짧은 시간에 급격히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한국의 논문 성과 순위는 조사 대상 18개 국가 중 14위였지만, 최근 논문 증가율(20.6%)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0여명이 남극에 K-루트 개척...하루 50~70㎞씩 계속 ‘전진’=최근엔 남극 대륙 기지 후보지 추가 선정을 위한 국내 탐사대의 ‘K-루트 개척’이 한창이다.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약 110㎞ 떨어진 지점에 탐사를 위한 차량 장비를 세팅한 뒤, 약 10명이 하나의 팀을 구성해 새로운 기지 위치를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팀은 하루에 약 한 50~70㎞ 씩 육상로를 전진하며, 크레바스(빙하나 눈 골짜기에 형성된 깊은 균열) 같은 여러 위험 지역을 돌파하며 미지의 땅을 개척 중이다.
최근 K-루트 탐사팀은 장보고과학기지로부터 1200㎞ 넘게 떨어진 지점까지 진출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운영하는 콘코디아 기지 근처에 있는 대륙 기지 후보 지역에서 탐사 팀은 얼음의 특성을 조사하고, 레이더 탐사 등을 통해 심층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홍 대장은 “항공기만으로 화물을 수송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석유류를 비롯한 여러 자재는 항공이 아닌 육상을 이용해야 합니다. K2 탐사대의 루트 개척은 한국의 육로 수송 통로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K-루트가 구축되면, 해빙의 운송수단인 ‘피스톤 블리’, 유류 탱크 차량, 카라반(사람들이 취침하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차량) 등을 통한 남극 내 이동 반경도 한층 넓어질 전망이다.
장보고과학기지 주변에 있는 남극에서 가장 큰 산맥인 남극종단산맥을 중심으로 연구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지질, 지리, 운석탐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예정이다. 빙하 코어 시추에도 속도를 낸다. 빙하코어란 오랜 세월 녹지 않고 쌓인 극지의 얼음층으로, 강설 당시의 공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과거의 대기 상태를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냉동타임캡슐’로 불린다. 남극의 아스파 지역(남극특별보호구역)을 통한 생물 연구도 확대한다.
▶“적막 속 남극...대원들의 안전에 만전 기할 것”=사진으로 보는 남극의 자연풍광은 좋은 듯해도, 극지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다.
홍 대장은 인터뷰 도중 남극의 적막감이 주는 생생한 놀라움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남극은 일부러 소리내지 않으면 어떠한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곳”이라며, 현지 생활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전했다.
한세종 박사는 “지금은 남극의 여름 기간이라 정말 바쁠 것”이라고 말하자, 홍 대장은 “맞다. 지금 장보고과학기지는 정말 바쁜 시기”라고 했다. 지난해 11월말에서 12월초에 막 짐을 푼 장보고 과학기지 월동연구대 대원들은 아라온호를 통해 가져온 물품(냉동·냉장 식자재와 생활용품)을 정리하고, 하계(10월 말~3월 초) 기간 방문할 연구팀의 장비들을 세팅하느라 눈코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 박사는 “해가 뜨지 않는 4월말에서 8월 중순의 극야 기간에는 오로라를 많이 관찰할 수 있으니 사진을 많이 찍어두라”고 권하기도 했다.
월동연구대 대원들의 경우 급격히 바뀐 환경 탓에 도보 등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박사는 “(과거 제가 대장으로 근무할 당시) 백야 기간에 잠을 못 자는 등 힘들어 하던 대원들이 떠오른다”고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홍 대장 역시 대원들의 안전사고를 최소화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보고과학기지를 찾는 인원이 점차 늘면서 현지 시설의 개선과 확충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홍 대장은 “설립 10년이 지나면서, 이곳에서의 연구 활동이 굉장히 다양화되고, 이에 따라 하계 방문객도 늘고 있어 증개축을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멀리 남극에서 국민들에 대한 새해인사를 부탁하자 홍 대장은 “한국에 있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란다”며 “2000년대 후반부터 여러 인프라들이 구축이 되고 이에 따른 성과물들이 나오고 있어, 이제는 국민들이 남극 연구와 관련해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듯 하다”고 말했다. 권남근 뉴스콘텐츠 부문장·김지헌 기자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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