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의문의 1패'...다이소 기업가치, 롯데쇼핑에 육박 [안재광의 대기만성's]
<편집자 주> 대단한 기업의 만만한 성공스토리, <대기만성’s>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업과 산업 뉴스 이면의 생생한 스토리를 심층적으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필자인 안재광 기자는 한국경제신문의 산업부, 생활경제부, 중소기업부, 증권부, 마켓인사이트부 등에서 기업과 자본시장을 17년간 취재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한국경제신문의 동영상 채널 <한경코리아마켓>에서 콘텐츠를 제작 중입니다.
다이소가 일본 다이소와 지분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일본 다이소(대창산업)는 한국 다이소(아성다이소) 지분 약 34%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걸 싹 다 한국 다이소가 산 건데요. 정확히는 아성HMP란 회사가 샀죠. 인수 금액이 약 5000억원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국 다이소 지분 3분의 1 가치가 5000억원이면, 전체 회사 가치는 1조5000억원이란 얘기인데, 롯데쇼핑의 시가총액이 현재 2조원 안팎 하니까, 큰 차이가 없습니다. 롯데 입장에선 통탄할 노릇이죠. 1000원짜리 파는 동네 구멍가게 같은 회사와 비교를 당한다니 말이죠.
하지만 롯데쇼핑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 다이소가 만약 상장한다면 1조5000억원이 아니라 3조원도 넘을 수 있습니다. 매출이나 이익, 사업 구조가 가장 비슷한 CJ올리브영이 현재 상장 준비 중인데 ‘몸값’이 최소 3조원, 최대 5조원도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거든요. 이번 주제는 ‘다이소 신드롬’입니다.
◆3만원짜리 화장품을 3000원에
다이소의 성공 비결, 딱 하나만 꼽으라면 가격이겠죠. 여기서 핵심은 싼 게 아니라, 트렌드에 맞는,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싼 제품을 찾는 거예요.
다이소 제품은 500원, 1000원, 비싸도 5000원인데. 이 가격에 판 게 처음에는 바구니, 쓰레기통, 손톱깎이 같은 잡동사니 위주였잖어요. 백화점엔 없고, 마트에도 잘 없고. 전통 시장 나가야 볼 수 있는 싼 제품이 많았습니다. 시장에선 이런 물건을 1만원에도 팔고, 1000원에도 팔고. 가격이 사장님 맘대로인데, 다이소가 이걸 정가로 균일가에 파니까 사람들이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머물지 않고 화장품, 의류, 신발, 홈인테리어, 가전 등등으로 확장합니다. 잘 보면 이런 품목은 백화점에서 주로 파는 것인데요. 브랜드도 다르고, 품질도 다르지만 어쨌든 이걸 균일가 매장에서 1000원, 2000원으로 ‘해치웠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예를 들면 화장품을 어떻게 1000원, 2000원에 팔지? 남들은 상상도 못 할 때 다이소는 이걸 합니다. 요즘 난리가 났다는 VT 리들샷이라고 있어요. 올리브영에서 3만원 넘게 팔리는 것을 다이소가 3000원에 내놔서 ‘품절 대란’이 났습니다.
3000원에 팔기 위해 다이소는 어떻게 했느냐. 우선 비싼 화장품 케이스를 벗겨 버리고, 샘플처럼 포장을 바꿨어요. 화장품 원가 구조를 보면 판매가가 1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대략적으로 내용물은 5000원에 불과하고요. 케이스는 그 두 배인 1만원에 이릅니다. 케이스만 벗겨 내도 원가를 대폭 절감할 수 있죠. 여기에 다이소는 화장품 함량을 줄이고, 배합도 조금 바꿔 원가를 더 낮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불경기가 기회로
다이소가 잘된 두 번째 비결은 불경기입니다. 다이소 같은 매장을 균일가 숍이라고 하는데요. 한국,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미국이나 유럽에도 흔합니다. 예컨대 미국의 원 달러 숍이 그렇죠. 달러트리, 달러저네럴이 다이소와 비슷한 것인데요. 미국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요. 영국의 99펜스 스토어도 그렇고요.
이런 균일가 매장은 불황에 더 잘되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 다이소가 확 컸던 것은 1990년대,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렸던 시기였습니다. 한국 다이소는 1997년 IMF 터지고 시작됐고요. 미국에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요즘은 세계 경기가 어떨까요. 세계적인 불경기라고 하기에는 미국 경제가 요즘 너무 좋고요. 미국의 GDP 성장률이 가장 최근 수치인 2023년 3분기의 경우 연율로 무려 5.2%에 달했습니다. 미국은 고용 상황도 좋고, 주식시장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죠. 물가가 너무 올라 힘들다고 하는데, 물가가 올라가도 월급이 더 올라서 소비를 안 줄입니다.
저성장의 대명사 일본 경제도 2023년 상반기에 기록적인 엔저 덕분에 분기당 연율로 3~4%대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는데요. 하반기 들어 성장률이 꺾이긴 했지만, 2023년 일본 GDP 성장률은 2%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면에 한국은 상황이 꽤 안 좋죠.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분기당 0%대 수준에 불과하고, 국민총소득(GNI) 성장률도 2023년 3분기에 0.5% 수준에 그쳤습니다. 한국은행은 2023년 연간 GDP 성장률이 1.4%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제외하고 GDP가 1%대 수준에 불과한 것은 유례가 없었어요.
미국, 일본과 다르게 한국은 고물가를 감내할 기초 체력이 약하다는 겁니다.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상승하면 사람들은 소비를 줄일 여지가 크고, 그럼 주로 내구재라고 하는 자동차, 가전제품, 가구 같은 건 잘 안 살 것이고요. 옷이나 화장품, 식품 같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좀 더 저렴한 것을 찾을 가능성이 높겠죠. 다이소에 한국의 저성장은 기회가 되고 있다는 얘깁니다.
◆10대들의 쇼핑 성지
다이소의 강점을 또 하나 얘기하자면 젊은층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유통업계에 10대, 20대는 엄청나게 중요한 소비자입니다. 이 연령대가 돈을 잘 써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트렌드를 주도하기 때문이에요. 젊은층이 많이 사는 화장품·옷, 이런 게 유행이 되잖아요.
외국인도 요즘 다이소 매장에 가면 많죠. 외국인 관광객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연간 1700만 명을 넘었는데 2020년 250만 명, 2021년 96만 명으로 뚝 떨어졌다가 2022년 300만 명, 2023년 10월까지 880만 명으로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요.
절대적인 숫자도 늘었지만 외국인의 쇼핑 패턴이 바뀐 것도 한몫했는데요. 외국인들, 그중에서도 비중이 가장 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다이소를 특히 좋아해요. 요즘은 중국 관광객은 단체가 아니라 개별 여행을 많이 해서 면세점, 백화점 건너뛰고 다이소로 직행합니다.
젊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사는 게 바로 화장품이죠. 다이소가 화장품 구색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0대, 20대 젊은층도 좋아하고 외국인 관광객도 좋아하고. 올리브영의 진정한 경쟁자는 다이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승계 문제 풀어야
물론 다이소도 여러 문제들이 있어요. 일본 다이소와 지분 정리는 했다고 해도 결국 다이소란 이름은 일본 게 맞잖아요. 박정부 다이소 회장은 “다있소” 뭐 이런 느낌이라 다이소로 했다는데, 이건 눈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고. 그렇다고 간판을 싹 다 바꾸자니 사람들에게 너무 다이소가 각인되어 있어서 쉽지도 않고요.
또 지분 구조가 복잡해서 이것도 풀어야 할 숙제 같죠. 박정부 회장이 1944년생으로 만으로 곧 여든인데요. 승계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근데 이 회사 지배구조가 좀 복잡해요.
한국 다이소를 운영하는 곳이 아성다이소란 법인이고, 아성다이소의 최대주주가 이번에 일본 다이소 지분을 사들인 아성HMP입니다. 아성HMP는 일본 다이소에 물건 납품하는 게 주된 사업이고요. 이 아성HMP 지분 100%를 아성이란 회사가 들고 있어요. 아성의 최대주주가 박정부 회장, 그리고 두 따님입니다.
다이소가 온라인 통합 쇼핑몰을 최근에 오픈했고, 배송도 하루 만에 가져다 주는 과거 쿠팡의 로켓배송 같은 것도 도입했는데. 이렇게 끊임 없이 발전을 하고 있어서 다이소는 더 큰 회사가 될 게 분명해 보입니다. 이제 한국인의 삶에서 다이소는 떼어낼 수 없는 회사가 된 만큼 앞으로도 싸고 좋은 물건 많이 들여와서 박정부 회장 바람대로 ‘국민 가게 다이소’가 되길 바라게습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