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석 가리기 본격화한 스타트업, ‘ABC’만 살아남는다
AI 스타트업에는 내년에도 투자 쏠림 예상
(시사저널=한다원 시사저널e. 기자)
한때 뭉칫돈이 몰리며 '빅딜' 소식이 이어졌던 스타트업 업계에 지난 한 해 찬바람만 불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 이어지며 벤처캐피털(VC)들의 투자가 급격히 축소된 탓이다.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대접받던 스타트업들은 투자 거품이 빠지며 움츠러들었다. 후속 투자는 물론 유니콘들의 기업공개(IPO)마저 좌초되는 실정이다. 2020년 10개였던 한국 유니콘은 2021년 18개, 2022년 22개까지 늘어났지만 지난해에는 새로운 유니콘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던 스타트업들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비바리퍼블리카는 2022년 2472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 외에도 컬리(-2334억원)·당근(-564억원)·직방(-370억원)·버킷플레이스(-362억원)·리디(-360억원) 등도 영업손실이 이어졌다.
주요 스타트업, 2023년 들어 적자로 전환
새해 역시 경기 불황이 이어지며 새로운 유니콘 기업 등극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누적 벤처투자액은 전년 동기 대비 25% 감소한 7조6874억원을 기록했다. 투자 건수도 2022년 5857건에서 5072건으로 줄었다. 벤처투자 정보업체 더브이씨(THE VC)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2월23일까지 개업한 스타트업은 95개로 2022년(322개)보다 70.5% 감소했다. 2021년(579개)과 비교하면 83.6%나 쪼그라든 규모다. VC 업계 관계자는 "새해에는 본격적으로 스타트업의 옥석 가리기와 생존게임이 시작될 것"이라며 "스타트업들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사업을 지속할 기업과 성장이 멈추는 기업으로 분류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유동성 확보에 실패한 스타트업들의 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실리콘밸리 투자사인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는 최근 "유니콘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글로벌 공유오피스 스타트업 위워크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누적 투자금은 110억 달러(약 15조3900억원)에 달했지만, 지난해 11월 파산을 신청했다. 파산하는 글로벌 스타트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누적 투자금 8억 달러에 달하는 헬스케어 스타트업 올리브AI(Olive AI), 화물 스타트업 콘보이(Convoy), 주택 건설 스타트업 비브(Veev) 등도 최근 파산을 신청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폐업한 스타트업도 늘어났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피치북(Pitchbook)의 데이터를 인용해 지난해 약 3200개 스타트업이 문을 닫으며 파산으로 휴지 조각이 된 투자금은 272억 달러(약 35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피치북은 "수많은 회사가 조용히 문을 닫기 때문에 실제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투자 혹한기'에도 투자 업계에서 각광받는 스타트업들도 있다. 바로 'ABC 기업'이다. ABC 기업은 AX(인공지능 전환)·B2B SaaS(기업용 서비스형 소프트웨어)·Cost-efficiency(비용 효율성) 사업을 담당하는 스타트업이다. 활발했던 투자가 움츠러든 상황에서도 비용 효율성을 높이려는 기업들의 B2B 수요가 늘어나면서 AI를 활용한 스타트업들이 살아남을 것이란 의미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생성형 AI 스타트업을 향한 투자가 잇따랐다. 투자사들 사이에서는 "AI와 관련 있다고 보여지면 투자가 잇따랐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한 예로, AI 포털 서비스 기업을 표방하는 뤼튼테크놀로지스는 월간활성이용자가 지난해 3월 4만 명에서 12월 140만 명으로 급증했다. 영상판 챗GPT를 만드는 트웰브랩스는 지난해 10월 미국 엔비디아로부터 13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웹툰 생성형 AI 회사 라이언로켓도 지난해 12월 6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움직임은 지표로도 드러난다.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액은 730억 달러(약 94조6226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31% 줄어들었지만,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179억 달러(약 23조2055억원)로 27% 늘어났다. 이 중 대다수가 B2B SaaS 기업으로 알려졌다.
잘나가는 AI 스타트업 버블론도 여전
특히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Gartner)는 2026년까지 전 세계 기업의 80% 이상이 AI 기술을 사용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새해에도 AI 관련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삭스의 조지프 브리그스, 드베시 코드내니 경제학자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AI에 대한 전 세계 민간투자는 2022년 919억 달러(약 119조원)에서 2023년 1102억 달러(약 143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5년에는 1584억 달러(약 205조원)로 증가하며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일각에선 AI 스타트업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내비치고 있다. 과거 1995~2000년에 걸쳐 일어난 닷컴버블이 연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가 대중화하면서 인터넷이 보급된 것처럼, 챗GPT로 AI가 주목받으며 AI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우려도 여전한 상태다. 앞서 스타트업 업계에도 2017~19년 기업들의 가치에 거품이 끼며 스타트업들의 기업 가치가 급증했던 바 있다.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생성형 AI 스타트업들이 제대로 된 사업모델을 만들지 못하면 또 하나의 버블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VC 업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어떤 사업모델을 갖고 이윤을 낼 수 있을지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스타트업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기술보다도 지속 성장을 입증할 수익성을 내야 하는데 현재 기업들은 적자에 머물러 있고,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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