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통일 불가’라는데 한국은 ‘통일 불필요’ 어쩌나 [핫이슈]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이고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라고 한 것도 과거 막말 퍼레이드에 비하면 크게 새롭지 않다. 우리 역시 국방백서 등에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명시한 만큼 김 위원장이 한국을 ‘비동족’으로 적대시하고 ‘통일 불가’를 언급한 것은 요즘의 남북한 경색 국면에서 예상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평화통일 가능성을 배제한 채 우리를 겨냥해 핵무력을 포함한 군비 증강 의지를 거듭 밝힌 것은 유감스럽다. 김 위원장은 “군사분계선(MDL) 지역에서 사소한 우발적 요인에 의해서도 물리적 격돌이 발생해 확전될 수 있다”고 했는데 누가 우발적 요인을 제공했는지 따져보면 북한은 반성부터 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북한은 2018년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서(9·19 합의)’ 폐기를 선언했는데 그 합의의 잦은 위반 당사자는 북한이었다. 북한군은 서해 완충구역에서 사격 훈련을 비롯해 미사일 발사, 무인기 침투, 해안포 포문 폐쇄 등 각종 위반을 저질렀다.
반면 우리는 북한의 비정상적 행태에 질린 나머지 ‘통일 불가피’에서 점차 ‘통일 불필요’로 가고 있다. 남북 간 경제 격차가 초래할 통일 후 사회·경제적 혼란을 우려해 통일에 대한 기대치 역시 낮다. 지난해 11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공개한 3분기 국민 통일여론조사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별로’와 ‘전혀’)는 답변은 32.0%로 2015년 이후 가장 높았다. 작년 2분기만 해도 25%가 불필요하다고 답한데서 7%포인트나 높아졌다. 2020년 2분기(31.4%) 외에는 ‘통일 불필요’ 응답은 20%대를 유지했지만 최근 북한의 무기 도발과 대남(對南) 강성 발언에 30%대로 뛴 것이다. 2020년 2분기의 경우 전년 2월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무력 시험을 본격화하면서 남북 관계가 악화된 여파가 컸다.
북한은 ‘통일 불가’라고 하고, 우리는 ‘통일 불필요’를 외치는 상황을 밖에서 지켜본 자라면 내놓을 답은 간단하다. 서로한테 간섭하지 않고 각자도생하는 것이다. “통일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한테 “통일은 성사되기 어렵다”는 반응은 상식적으로 볼 때 갈등을 촉발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입장에 박수치고 제 갈 길을 가면 될 일이다. 그러나 북한은 ‘통일 불가’를 외치면서도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고 정찰위성을 계속 발사한다. 평화통일 대신 북한 주도의 무력통일의 끈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 말대로 통일이 어렵다면 우리는 북한과 무력충돌 없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모델로 고려해볼 만한 나라도 있다. 최근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제기됐던 몰도바다. 몰도바는 1991년 소련 해체로 독립한 뒤 서방 편입을 추진한 반면 몰도바 내 트란스니스트리아 자치공화국은 친러시아 성향이 강하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몰도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1992년까지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본인이 7년 전 방문했던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는 현지인들이 지인 방문을 위해 몰도바로 이동이 자유로웠다. 몰도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상대에게 자신의 체제를 강요하지 않고, 불편해질 통일을 굳이 원치 않는다. 당연히 상대와 전쟁 할 준비도 없다.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가 갈등 소지를 줄인 채 교류하며 평화롭게 사는 모습은 남북 간 공존의 모델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통일 불가’ 발언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북한은 다음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줘야 한다. 무력 증강이 남한한테 흡수통일 되지 않기 위한 대비용인가, 아니면 1950년 한국전쟁처럼 남한을 침공해 우리가 가진 것을 힘으로 뻬앗기 위한 것인가.
김 위원장이 남북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다면 ‘적대적’인 것을 ‘우호적’으로 해소하면 될 일이다. 누구 주도로 통일할지 논의는 잠시 미뤄두고 서로 위협하거나 간섭없이 지내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앞으로도 한미연합훈련 등을 핑계로 자신들의 군비 확충을 정당화하면서 평화 분위기를 훼손할 것이다. 그래서 남북 관계 개선은 힘든 것이다. 그래도 새해에는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무익한 군비 경쟁을 지양하고 조용히 공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잉태됐으면 한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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