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당선자들이 말한다 ‘나에게 신춘문예란… ’ [2024 신춘문예]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내 어린 시절의 꿈은 소설가가 아니었다.
신춘문예를 통과하고 난 뒤 나는 그간 보낸 무의미했던 시간들이 지닌 의미를 알게 됐고, 소설가가 되는 것이 오랜 시간 내가 염원했던 일임을 깨달았다.
12년 전 신춘문예 당선 통보를 받고 내가 처음 떠올린 말도 '됐다'였던 것 같다.
나는 그것을 매번 겨울에, 신춘문예의 계절에 확인하곤 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치 루카치의 별처럼 길 밝혀줘
2008년 소설 등단 - 정소현
내 어린 시절의 꿈은 소설가가 아니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줄도 모른 채 늘 무용한 것에 빠져들어 인생을 낭비했다. 아무 책이나 읽고 아무 음악이나 들으며 아무 버스나 타고 아무 곳에나 내려 정처 없이 걸었고, 하지 않았다면 더 나았거나 별 의미 없는 일들을 경험했으며, 직업과는 관계없이 쾌락만을 위해 공부했다. 암흑 속을 배회하던 나에게 신춘문예는 마치 루카치의 별처럼 나침반이 되어주고 길을 밝혀주었다. 신춘문예를 통과하고 난 뒤 나는 그간 보낸 무의미했던 시간들이 지닌 의미를 알게 됐고, 소설가가 되는 것이 오랜 시간 내가 염원했던 일임을 깨달았다. 비로소 나는 진짜 소설가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
두돌 아이가 “됐다” 하듯 꽉찬 기분
2012년 평론 등단 - 신샛별
나는 요즘 육아 중이다. 두 돌이 된 아기는 말을 배우느라 바쁘다. 최근 애용하는 단어는 ‘되다’인데, 밥을 다 먹고 칭찬을 기다릴 때도, 옷 입기 싫다고 손사래를 칠 때도 늘 ‘됐다’고 한다. 오늘 아이가 새 용례를 보탰다. 무릎에 책을 얹고 “같이”라고 하길래, “나란히 앉아 책을 보자는 거야?”라고 물으니, 환하게 웃으며 “됐다”라고 한다. 12년 전 신춘문예 당선 통보를 받고 내가 처음 떠올린 말도 ‘됐다’였던 것 같다. 나의 책 읽기를 지켜봐 주고 또 함께해 달라고, 불완전한 말로 한 구애가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진 날이었다. 임신 이후 몇 년간 글을 쓰지 못했다. 지금 나는 차라리 신춘문예 응모자에 가까운 심정이다. 다시 ‘됐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희미한 풍경을 선명하게 만드는 일
2020년 시 등단 - 차유오
신춘문예는 언덕 같다. 언덕을 오를 때 끝에 대해 생각하게 되듯이 신춘문예를 준비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언덕을 오르며 스쳐 가는 사람들과 풍경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지만, 희미한 모습으로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시를 쓰는 일은 그런 희미한 모습들을 선명하게 만들어내는 일인 것 같다. 아름답고 이상한 풍경을 보여주는 언덕처럼 신춘문예는 내게 아름답고 이상한 풍경을 보여준다.
서로를 스쳐 가던 사람들이 또 다른 언덕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도 없는 언덕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는 언덕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어딘가에 쏠려있는 내 마음 확인
2021년 소설 등단 - 김화진
신춘문예에 여러 번 소설을 보냈다. 결과는 기대하지 않을 거야, 스스로에게 말했다. 기대를 내려놓자고 백 번쯤 되뇌면 기대감이 백 번쯤 솟아올랐다. 그런 나를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소설을 쓰는지 마는지 아무도 모르는데 혼자서 조용히 기대하고 낙심하고 우울하게 한 주를 보내는 내가. 당선 연락을 받지 못하는, 겨우 그런 일로 서글픈 게 우스운 기분이 들면 조금 더 서글펐다. 하지만 그런 울적한 순간은 내게 어딘가에 쏠린 마음과 예민하게 돋은 더듬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고, 그것이 좋았다. 내 사랑에 그런 우울함과 서글픔이 있다는 것이. 나는 그것을 매번 겨울에, 신춘문예의 계절에 확인하곤 했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고급차 모는 노인도 월 소득 213만 원 안되면 기초연금
- 탁재훈 “내가 외도로 이혼? 절대 아니다…복잡하다”
- [속보]“땅 흔들릴 정도의 폭발”…평창 LPG 충전소 폭발로 5명 중경상
- 북한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3사단 백골포병여단 새해 첫날 포탄사격 훈련
- “모욕적…” 프랑스 뉴스가 태극기를 표기한 수준
- 되살아난 동일본대지진 공포…2011년 이후 첫 ‘대형 쓰나미 경보’
- 신년 여론조사서 여야 총선 지지도 엎치락뒤치락…한동훈·이재명 대권경쟁도 치열
- ‘차기 대통령’ 한동훈 24% > 이재명 22%…한, 갤럽 조사에서 처음으로 이에 앞서
- ‘신도 9명 40여 차례 성폭행·추행’ 이재록 목사 형집행정지 중 사망
- 아기 안고 등장한 ‘이선균 협박 여성’이 마약 투약 제보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