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거짓말 - 박서현[2024 신춘문예]
노아는 인공 피부조직 밑에 혈관처럼 보이는 미세관까지 뚫어 넣었지만,
그 밑은 차갑고 딱딱한 금속이었다. 그럼에도 코코는 노아 곁에 있었다.
“나는 냄새는 모르지만 그립다는 건 알아. 너도 그러니?”
겹겹이 쌓인 이불 아래에서 코코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우리 평생 함께 있자. 코코. 내가 너의 가족이 되어줄게.”
해일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시스템을 멈추시겠습니까?
유리돔에 시끄러운 비상음이 울렸다. 반투명하게 비치는 붉은 경고 메시지를 마주한 노아는 그대로 멈춰 섰다. 이미 바깥은 비가 매섭게 퍼붓고 있었다. 시스템을 멈추면 유리돔은 그저 두꺼운 유리에 지나지 않았다. 무너지진 않더라도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가혹한 환경으로 변할 게 뻔했다. 노아는 코코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코코가 영하의 기온을 견뎌 낼 수 있을까?
그 순간 희미한 송출 신호가 다시 잡혔다. 노아는 반사적으로 출입구 개폐 버튼을 눌렀다. 주위는 순식간에 어둠으로 뒤덮였다. 활짝 열려버린 출입문으로 비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노아는 앞으로 달려 나가 바위기둥을 끌어안았다. 폭우로 쪼개진 크고 작은 돌멩이가 무서운 기세로 노아의 몸을 치면서 날아갔다. 노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두꺼운 돔을 벗어나자 드디어 선명한 신호가 노아에게 전해졌다.
―G17 행성―착륙 허가―응답 바란다.
G17 행성은 새로운 항성 글리제에서 열일곱 번째로 작은 별, 델마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델마라의 유일한 주민 노아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휴머노이드였다. 우주선을 향해 착륙거부 신호를 보냈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곤 깨닫는다. 해일을 겪어 본 사람이 아니구나. 델마라의 해일은 행성 밖에서도 관측이 가능했다. 오늘 같은 날 착륙을 시도하는 우주선에 가족들이 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우르릉 쾅. 번쩍하더니 가까운 바위에 천둥이 내리꽂혔다. 그 충격으로 날아온 돌멩이가 노아의 관자놀이를 때리고 떨어졌다. 그때, 우주선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내려왔다.
―불시착한 탈출선을 찾고 있다. 불시착한 탈출선이 있다면 응답 바란다.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우주선의 신호는 완전히 끊어졌다. 암흑 속에서 폭포 같은 빗소리만 가득 울려 퍼졌다.
노아의 가족은 델마라의 첫 이주자였다. 박사님은 해일이 끝난 직후, 티끌 한 점 없는 델마라의 하늘을 보고 이주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보름 간격으로 해일을 겪는 델마라의 토양은 영양소가 풍부하고 질 좋은 유기물이 충분했다. 하나뿐인 딸과 한적한 일상을 보내기 딱 좋은 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노아의 쓰임은 초기 정착으로 바쁜 박사님을 대신해서 소이의 보육과 가사 전반에 맞춰 있었다. 소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노아는 이상하게 바빠졌다. 소이는 날마다 매뉴얼에 없는 반응을 추가했다. 덕분에 박사님은 주기적으로 노아를 업데이트했다. 오로지 소이를 위해, 소이를 위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완벽한 계산으로 업데이트된 노아는 점점 가족들을 닮아갔다. 때에 따라 언니가 되기도 하고 친구나 동생이 되기도 했다. 노아는 가족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랑받을 수밖에 없도록 가족에게 맞춰진 휴머노이드. 그게 노아였다.
그런 노아의 일상은 여섯 살 소이의 팔뚝에 작은 반점이 생기면서 달라졌다. 고작 작은 반점이었다. 그 작은 반점은 무서운 기세로 소이의 몸을 집어삼켰다. 소이의 피부조직에서 발견된 익숙한 이름의 박테리아는 델마라의 질 좋은 토양에서 오래전부터 서식하던 생명체였다. 박사님은 신속한 이주를 주장했다. 정착 회사는 몇 번의 위약금 협의 후 델마라에 우주선을 보급했다. 하지만 인간형 로봇이었던 노아는 위약금 지급 대상이 아니었기에 터무니없는 이주 비용이 책정됐다. 박사님은 선택해야만 했다.
“노아 평소처럼 지내고 있어. 꼭 데리러 올 테니까.”
수면 캡슐에 누워 비행 준비를 마친 박사님은 조용히 노아의 볼을 쓰다듬었다. 노아는 박사님의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동 시간만 3년이 걸렸다. 로봇은 남는 게 시간이었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박사님.”
우주선은 한 점 빛이 되어 노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날 이후 노아는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보는 날이 많아졌다.
해일이 밀려왔다. 예상대로 유리돔 기온은 무서운 속도로 떨어졌다. 노아는 정원 벤치 밑에서 덜덜 떨고 있는 코코를 찾아냈다. 출입구 근처에 있었는지 털이 쫄딱 젖어 있었다. 코코의 숨에서 새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노아는 코코를 끌어안고 2층 소이 방에 있는 나무 장롱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코코에게 필요한 건 몸을 감싸주는 푹신한 이불과 냉기를 막아주는 좁고 밀폐된 공간이었다. 거기에 온기를 줄 수 있는 작은 불씨까지 있으면 완벽했다. 노아가 아는 한, 그런 곳이 한군데 있었다.
오랜만에 들어 온 소이의 비밀장소는 여전히 비좁고 어두웠지만, 아늑했다. 소이는 자신의 작은 장롱에서 과자를 먹거나 동화책을 읽었다. 한 번은 장롱이 어둡다는 핑계를 대며 박사님이 아끼는 낡은 랜턴을 훔쳐 오기도 했다.
노아는 오래전 소이에게 해준 것처럼 랜턴의 유리 덮개를 열어 불을 붙였다. 작은 불씨가 선명하게 일렁이자 좁은 공간에 온기가 돌았다. 노아는 코코의 눅진한 털에 묻은 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문득 걸리는 느낌이 들어 손바닥을 들자 피부조직이 많이 찢어져 있었다.
“끼이잉-”
코코가 코를 살짝 들어 노아의 손을 찾았다. 노아는 코코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아프진 않아? 나한테 기대지 말고 이불로 들어가는 게 더 나을 거야.”
노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노아는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인공 피부조직 밑에 혈관처럼 보이는 미세관까지 뚫어 넣었지만, 그 밑은 차갑고 딱딱한 금속이었다. 아까의 충격으로 관자놀이 쪽 금속 신경까지 손상된 모양이었다. 차가운 금속은 코코에게 체온을 나눠줄 수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코코는 노아 곁에 있었다.
그래서 네 가족이 너를 찾는 걸까?
노아는 코코를 태운 비상 탈출선이 델마라의 하늘을 가르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벌써 두 달이 흘렀다. 그날은 해일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해일이 지나간 하늘은 구름이 높이 떴다. 박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하늘이었다. 집 앞 벤치는 시야가 환하게 트여 하늘을 구경하기 제격이었다. 종종 박사님과 함께 앉아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감상했다. 혼자 남은 후에도 노아는 꾸준히 벤치를 찾았다. 텅 비어버린 별에서 어쩌면 들려올지 모르는 소리를 찾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메마른 흙을 밟을 때 나는 버석이는 소리 말고. 마른걸레로 물건을 닦을 때 나는 조용한 마찰음 말고. 노아가 내지 않은 어떤 소리라도 괜찮았다. 그러니 때마침 들려 온 굉음에 노아가 반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탈출선은 불길에 휩싸인 작은 유성처럼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 불덩이 안에서 희미한 생체신호가 감지됐다. 노아는 무작정 탈출선이 떨어진 방향으로 달려가 불타는 철판을 뜯어내고 가수면 상태로 잠들어 있는 코코를 끄집어냈다. 작은 생명체가 노아의 품에서 옅은 숨을 몰아쉬었다.
코코는 열기에 노출된 탓에 한참 동안 앞을 보거나 냄새를 맡지 못했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붉은 진물은 털에 뒤엉켜 찐득하게 굳었다. 노아는 매일같이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갈았다. 가끔 정신을 차린 코코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식식대는 소리를 냈다. 그러다 어느 밤, 어두운 방 안을 비척거리며 걷고 있는 코코를 봤다.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코코는 몇 번 앓는 소리를 내다가 자리로 돌아와 노아의 냄새를 한참이나 맡았다.
코코 스스로 탈출선까지 걸어가는 데 꼬박 삼 주가 걸렸다. 가족들이 저온 창고에 두고 간 식재료는 코코의 양식이 됐다. 푸석했던 털에도 윤기가 돌았다.
철판 주변을 서성이던 코코는 잠깐 킁킁대더니 멀찍이 떨어졌다. 노아는 주변으로 튕겨 나간 잔해를 수습하다 코코의 귀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식 칩을 발견했다. 철판보다 더 검게 그을려 망가졌지만, 음각으로 박힌 코코라는 이름은 알아볼 수 있었다. 노아가 작게 읊조리자 코코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털을 흩날리며 달려왔다. 코코가 닿은 곳은 노아의 앞이었다.
노아는 그 순간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 작은 생명체가 자신의 코코가 되리란 걸 알았다.
장롱 속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이따금 땅을 울리는 진동으로 화들짝 놀란 코코를 진정시킬 때 빼고는 움직임도 최소화했다. 코코는 하루가 지나서야 축 늘어져 잠이 들었다. 사방이 적막했다. 노아는 장롱문을 살짝 열어 걸터앉았다. 정면에 있는 커다란 통창은 하얀 성에가 서려 밖이 보이지 않았다. 코코는 만족스러운 꿈을 꾸는지 한 번씩, 푸르르 입을 털며 입맛을 다셨다. 노아는 코코의 꿈을 응원했다. 꿈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특권이었다. 로봇은 꿈을 꾸지 않았다. 간혹 눈을 감으면 특정 장면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었지만, 박사님은 그걸 기억의 잔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소이는 추억이라고 말했다. 노아 또한 그날 이후로 추억이라고 불렀다. 노아는 장롱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코코를 바라봤다. 순간 코코의 코가 움찔하더니 불빛이 일렁이는 검은 눈으로 노아를 응시했다. 코코는 노아 쪽으로 몇 번 킁킁하고는 안심한 듯 눈을 감았다.
“저번에도 궁금했었는데, 나한테는 어떤 냄새가 나? 나는 슬픈 상황에서 울 수도 있고 화가 나면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지만 냄새는 맡을 수가 없거든. 박사님도 냄새까지는 어떻게 못 했을 거야. 소이가 말해줘서 알았어. 엄마에게는 엄마 냄새가 있다며. 그래서 그 품이 못 견디게 그리울 때가 있대. 나는 냄새는 모르지만 그립다는 건 알아. 너도 그러니? 나지도 않는 냄새를 맡으면서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야? 나한테 가족을 찾는 거야?”
노아는 이불을 코코의 귀까지 끌어올리고 그 위를 살포시 감싸 안았다. 겹겹이 쌓인 이불 아래에서 코코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우리 평생 함께 있자. 코코. 내가 너의 가족이 되어줄게.”
해일이 끝나고 회백색 하늘을 뚫고 개인 우주선이 나타났다. 우주선은 잔잔해진 바닷가 근처 평평한 바위에 착륙했다. 우주선에서 나온 모녀는 유리돔을 향해 걸었다. 노아는 햇살을 받아 성에가 걷힌 2층 창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아이가 울퉁불퉁한 자갈에 걸려 넘어질까 봐 조심시키고 있었다. 노아는 장롱 안에서 푹신한 쿠션에 싸여 깊게 잠든 코코의 등을 두어 번 쓰다듬고 1층으로 내려갔다.
“델마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노아는 그들이 정원에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문을 활짝 열고 매뉴얼 대로 인사했다. 여자는 팔을 펼쳐 아이를 막았고 아이는 제 엄마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노아는 아이가 들고 있는 종이를 응시했다.
“사람…. 아니지?”
“휴머노이드야, 세상에. 원래 상태였으면 정말 사람인 줄 알았겠다.”
여자는 경계를 풀었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을 공격할 수 없었다. 몇 세기 전부터 인간과 로봇 사이에서 지켜지는 불문율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규칙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였다.
“아, 다름이 아니라 이것 때문에 왔어요. 여러 번 메시지도 보냈는데 날씨 때문에 답을 못 받아서. 여기로 비상 탈출선이 떨어지지 않았나요?”
노아가 종이를 받았다. 코코를 찾는 전단이 맞았다. 검은 털이 빛나는 코코의 사진 아래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품종과 이름, 나이까지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천천히 종이를 읽어보던 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전 오랜 시간 혼자였어요.”
노아는 진실을 말했다. 기대를 품었던 아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어쩌다 잃어버렸나요?”
“가족한테 돌아갈 시간이야. 코코.”
여자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노아를 쳐다봤다.
로봇이 거짓말을 하는 상황은 상상해본 적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내 전원을 꺼주세요. 이제는 무서워요.”
노아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조금 망설이던 여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면 상태에 있던 다영이 체온에 문제가 있었어요. 가벼운 오류였죠. 아무래도 오래된 우주선은 그런 일이 종종 있잖아요. 그걸 해결하던 차에 혼자 있던 다영이가 코코를 깨우려다 버튼을 잘못 누르는 바람에….”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아이를 슬쩍 곁눈질한 여자는 노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저는 거의 포기했는데 아이가 힘들어하네요.”
노아는 눈을 한번 깜빡이고 의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늦어도 다음 행성, 어쩌면 오늘을 끝으로 코코를 찾는 일을 포기할지도 몰랐다.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대화 좀 나눌래요? 저는 행성 여행가예요. 아이랑 여기저기 다니면서 행성 책자를 만들고 있어요. 이곳도 좌표에 넣었으면 싶은데, 여기에 대해 설명 좀 해줄래요?”
여자는 온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별을 둘러보며 빙긋 웃었다. 노아는 휴머노이드 시스템에 어긋나지 않을 만큼 정중하게 그들을 안으로 이끌었다. 집을 둘러보던 여자는 벽에 걸린 박사님의 독사진을 보고 멈칫했다.
“여기가 거기 맞구나. 이주 실패 행성. 그나마 휴머노이드라도 남아서 이정도 유지가 됐나 보네.”
이주 실패 행성은 흔히 통용된 델마라의 다른 이름이었다. 여자는 별을 둘러보던 표정으로 집 안도 신속하게 살폈다. 소파, 티비, 식탁, 의자. 싱크대 위에 놓인 그릇. 바닥에 깔린 주황색 카펫. 모든 물건은 가족들이 떠나기 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노아가 하루도 빠짐없이 쓸고 닦은 덕이었다. 여자는 노아의 노고를 알고 있다는 듯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 돌아가실 때 같은 행성에 있었거든요. 로봇의 어머니가 우주로 돌아갔다고 한창 시끄러웠어요.”
“네?”
노아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여자를 봤다. 순간 노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눈에도 자극이 느껴졌다. 여자는 당황하며 노아에게 다가섰으나 노아의 얼굴 근육 전체가 거세게 요동치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노아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였다.
“이마 센서가 망가져서 얼굴 근육이 가끔 이래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요.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여자는 더욱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때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이가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 여자는 곧장 아이에게 다가가 한참 동안 토닥여 주었다.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지만, 여자의 표정에서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 모습을 손가락 사이로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노아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조금 진정된 딸을 꼭 껴안고 자리에서 일어나 노아에게 다가왔다.
“아이들은 이별에 약하잖아요. 잠깐 혼자 있을 시간 좀 주게요.”
노아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슬쩍 올려보고 밖으로 나갔다. 주변을 둘러보던 여자는 앞장서서 벤치에 앉았다. 하늘을 올려보는 여자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여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코코는 아마 죽었겠죠? 생명 신호가 안 잡히는 걸 보면 큰 사고에 휘말렸을 거야. 차라리 다행이에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남아 봐요. 얼마나 무서웠겠어.”
대답을 바라는 질문이 아니었다. 조용히 혼자 읊조리던 여자는 코끝을 찡그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노아는 적당한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언제부터 혼자 지냈어요?”
이번 질문에는 얼마든지 답할 수 있었다.
“이십팔 년이요.”
“대단하네. 노력했나 보다. 아무리 휴머노이드라도 관리 안 받고 이십팔 년 버티기는 힘들었을 텐데.”
여자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노아의 행색으로 어렴풋이 짐작했을 것이다. 이십팔 년 동안 관리받지 않은 인간형 로봇은 인공 피부가 온전하기 힘들었다. 색은 탁해지고 여기저기 찢기고 기운 흔적이 보였다. 푸석한 머리카락과 닳아서 해진 옷을 보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노아는 이제 자신이 질문할 차례라고 느꼈다. 적당한 질문을 생각하던 노아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박사님이 언제 돌아가셨는지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있을까요?”
잠깐 멈칫한 여자는 수신기를 들었다.
“검색해볼게요. 꽤 오래전이라서. 우주를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의미가 없잖아요. 잤다 깼다를 반복하느라. 아, 찾았다. 이십사 년 전이네.”
이동 시간을 제외하면 겨우 일 년이었다. 새로운 별에 정착하기도 소이를 치료하기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정착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박사님도 아팠던 걸까. 다른 문제라도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소이는? 소이는 어떻게 됐을까…….
노아는 갑자기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을 때가 차라리 나았다. 노아는 지금껏 과거에 살고 있었다. 행복한 기억은 모두 과거에 있었다. 그래서 노아의 메모리 속 소이는 언제나 여섯 살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성장하지 않았다. 그게 행복인 줄 알았다.
“최신 기사도 있어요.”
여자가 송신기를 노아 쪽으로 건넸다. 조금은 피로해 보이는 여성이 정면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메모리 전부를 뒤져봐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사진 속 여성에게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여성의 뒤편에는 십 대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함께 있었는데, 익숙한 얼굴이었다. 노아는 송신기 유리판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사진 밑에 아주 작은 글씨로 추억이라고 적혀 있었다. 노아는 다시 여성의 얼굴을 확인했다. 노아는 여성의 미소를 메모리 깊이 새겼다.
“딸이 엄마를 따라 로봇공학자가 됐대요. 관련 기사도 찾아줄까요?”
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의아해하는 여자를 향해 노아는 작고 느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충분합니다. 그거면 충분한 것 같아요. 이제.”
짧게 고개를 숙인 노아의 시선은 다시 하늘로 향했다. 둘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말없이 같은 곳을 보았다. 잠시 후 아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는 코코를 찾는 전단이 들려있었다. 노아는 아이에게 다가섰다.
“많이 소중했나요?”
“가족이니까요.”
아이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노아는 떠나려는 여자와 아이를 붙잡았다. 아주 잠깐이면 된다는 말을 남기고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방문을 열자 깨어있는 코코가 고개를 돌려 노아를 쳐다봤다. 창가에 두 발을 대고 낮게 내려간 꼬리를 살랑대는 코코는 혓바닥을 길게 늘이고 헥헥- 숨을 고를 뿐 한 번도 짖지 않았다.
“코코, 이리 와.”
코코는 책상에서 훌쩍 뛰어내려 노아의 다리 주변을 빙글 돌았다. 노아는 자신의 작지 않은 털 뭉치를 품에 꼭 안았다.
“가족한테 돌아갈 시간이야. 코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지만,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 보였다. 계단 끝에서 코코가 고개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익숙한 냄새를 찾은 모양이다. 노아가 내려놓자마자 달려 나간 코코는 그대로 아이의 품을 파고들었다. 아이는 놀란 표정으로 코코의 얼굴을 확인했다.
뒤이어 노아가 다가서자 아이는 쏜살같이 코코를 끌어안았다. 여자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노아를 쳐다봤다. 로봇이 거짓말을 하는 상황은 상상해본 적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노아는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부탁이 있어요.”
아이가 자신의 엄마를 올려다봤다. 노아는 그들이 눈을 맞추는 순간을 틈타 입을 열었다.
“내 전원을 꺼주세요. 이제는 무서워요.”
노아가 여자를 올려보며 싱긋 웃었다. 그러곤 아이의 품에 안겨 신나게 꼬리를 흔드는 코코의 콧잔등을 쓸어주었다. 아이는 노아를 빤히 바라보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노아는 살짝 웃고 자신의 손목을 내밀었다. 휴머노이드의 전원은 사람의 지문에만 반응했다. 아이는 노아의 전원을 찾아 손을 올렸다. 노아는 아무도 남지 않은 행성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십구 년을 살았지만 남은 건 없었다. 노아는 몇 번째의 추억인지 모를 지난날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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