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명예’가 국정과제인가…이미 역대기록 갈아치운 언론소송
발단은 2022년 9월이었다. 문화방송(MBC)이 미국 순방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 장면을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대통령실은 영상 내용을 부인하며 상황을 ‘진실 공방’으로 몰아갔고,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는 악의적인 행태”라고 규정했다. 취임 뒤 매일 출근길 약식 회견을 통해 기자들을 만나던 윤 대통령의 소통 행보는 곧 중단됐고,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 사안에 대해서만 문화방송 사장과 기자를 상대로 3건의 소송을 냈다.
해를 넘기면서 언론과의 전면전이 이어졌다. 2023년 5월2일 검찰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티브이(TV)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 사건으로 기소했고, 윤 대통령은 이를 구실 삼아 약 4주 만에 한 위원장을 면직했다. 정부는 새 방통위를 축으로 시행령 개정을 통한 티브이 수신료 분리징수, 공영방송 이사진 및 경영진 교체, 와이티엔(YTN) 민영화 등을 추진했다. 8월에는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까지 해촉되면서 문재인 정부 인사가 마저 정리됐다.
한편에서는 ‘가짜뉴스 퇴치’라는 구호와 함께 정권 비판 보도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벌어졌다. 지난 9월 갑작스럽게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보도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검찰은 이를 “대선개입 조작 사건”으로 보고 수사에 나서, 지난 석달여 동안 뉴스타파, 제이티비시(JTBC), 경향신문, 뉴스버스 등 언론사 사무실과 기자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혐의는 윤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방심위 역시 가짜뉴스심의센터를 출범시키며 장단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방심위는 권한에도 없는 인터넷언론사(뉴스타파) 심의를 강행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결국 뉴스타파 대신 뉴스타파를 인용보도한 지상파·종편 방송사에 과징금(총 1억2000만원)을 부과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중징계였다.
지난 19개월간 숨가쁘게 전개된 윤석열 정부의 언론 통제 논란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남달랐다. 미국 매체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 기간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언론 보도에 대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은 모두 11건이다. 이는 집권 반환점도 돌기 전에 전임자인 문재인(4회), 박근혜(8회), 이명박(7회) 정부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매체에 “(소송은) 언론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라 ‘가짜뉴스’에 대응하고자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의 해명과 달리 현장의 언론인들은 달라진 압력을 체감하고 있다. 지난 11월 발표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16회 언론인 조사’ 보고서를 보면 “언론 자유를 직간접적으로 제한하는 요인”을 묻는 항목(복수 응답)에 ‘정치권력’을 꼽은 비율이 50%로 광고주(62.3%)에 이은 2위였다. 이 통계는 현직 언론인의 설문조사를 취합한 리포트로 2년마다 발간된다. 광고주는 늘 이 분야 부동의 1위였으나, 정치권력이 2위를 차지한 것은 2013년(56.4%) 이후 10년 만이다. 2021년 조사(32.4%) 때보다는 17.6%포인트 늘었다.
매년 언론자유의 날(5월3일) 발표되는 국경없는기자회(RSF) 언론자유지수에서도 한국은 지난해 47위로 전년 대비 4계단 떨어졌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점수 75∼85점을 ‘양호한 상황’, 65∼75점을 ‘문제적인 상황’으로 분류하는데 2018∼2021년 75∼76점 사이를 오가던 한국은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2년 72.11점, 윤석열 정부 첫해 70.83점을 기록했다. 특히 정치적 자유 부분에서 1년 만에 7점 넘게 급락했다. 이는 앞서 소개한 ‘언론과 전면전’의 결과가 아직 반영되지 않은 결과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이례적인 ‘적대적 언론관’을 드러내고 있다는 데 동감하면서도 그러한 탄압을 가능하게 한 언론계의 구조적 요인을 놓쳐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전임 정권이 유리한 환경을 위해 언론을 관리·통제하려고 했다면 윤석열 정권은 언론의 공적재원·예산을 삭감하고, 방송의 공공성 제도, 공적 소유구조를 해체하려는 시도까지 나아간다”며 “대통령 개인을 봐도 역대 그 누구보다 적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언론관을 드러냈다”고 평했다.
다만 지금의 위기 상황이 과거처럼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한국 언론이 정치세력에 동조하며 신뢰를 잃은 탓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언론 자유’라는 기치를 특정 정권과의 투쟁으로 규정하는 한 일반 독자의 관심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찬 위원장도 “언론이 스스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엄격한 자기 규제로 독립성을 강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과도한 정파성을 추구하며 정치와 밀착했다”고 비판했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는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의 제도적 개선을 이뤄내지 못했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 처벌, 불안정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등 권력이 언론을 억압할 수 있는 구조적 요건을 방치해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언론이란 권력을 비판하고 압제에 저항하는 시민의 자유를 제도화한 것이다. 그 제도가 관행처럼 굳어져 운영되는 모습 자체가 그 사회의 민주주의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선언만 할 것이 아니라 (언론 자유를) 제도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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