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과 다른 음료 나와도 괜찮아"...이 카페의 특별한 사연?

장자원 2024. 1. 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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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다는 건 발을 디디고 있던 땅이 무너지는 거예요. 어느날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내리면, 거기 앉아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죠."

"치매에 걸렸을 때 발 밑이 무너지는 느낌, 제가 제일 잘 알아요. 그럴 때 주저 앉아버리면 안돼요.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죠. 치매안심센터도 좋고, 주변에 찾아 나설 곳을 만들어서 돌아다닐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도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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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한독, 치매안심센터 ‘기억다방’ 운영
서울시 구로구 치매안심센터에 있는 '기억다방'의 이정순 바리스타. [사진=구로구 치매안심센터]

"치매에 걸린다는 건 발을 디디고 있던 땅이 무너지는 거예요. 어느날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내리면, 거기 앉아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죠."

서울시 오류동에 위치한 '구로구 치매안심센터(분소)'엔 특별한 카페가 있다. 이곳의 손님들은 음료 제조가 늦어져도, 주문한 것과 다른 음료를 건네받아도 화내는 법이 없다. 기억을 지키는 '기억다방'의 종업원들은 치매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기억다방은 2018년부터 서울시와 한독이 진행하고 있는 치매 환자 인식 개선 캠페인이다. 바리스타와 종업원을 맡은 어르신들은 경도인지장애나 경증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다. 기억다방의 기본 규칙은 '주문한 것과 다른 음료가 나와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것'이다. 약간의 배려만 더해지면 치매 환자들도 얼마든지 사회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메디닷컴은 '기억다방 구로점'에서 2년째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정순(77, 구로구 항동) 어르신을 만났다. 그는 8년 전 고대구로병원에서 경증 치매(자기요양 5급) 진단을 받았다.

"어느날 갑자기 내리려던 지하철 역이 전혀 생각이 안나고, 매일 걷던 골목길도 못 알아봤어요. 남한테 피해 안주고 살았는데 왜 갑자기 이런 병에 걸렸을까, 원망을 많이 했죠. 진단 초기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만히 앉아 울며 보냈어요. 다행히 처방받은 약을 먹으니 병이 더 악화되진 않았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치매안심센터를 찾아갔습니다."

치매안심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정순 어르신은 금방 활력을 되찾았다. 다만 한정된 인력과 환경에서 많은 환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센터 특성상 같은 프로그램을 매번 반복할 수는 없었다. 이에 센터 측에선 어르신에게 카페에서 일해볼 것을 제안했다.

"카페에서 일해보는 것이 어떻겠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겠다고 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어울리는 게 너무 설레죠. 저 같은 노인을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써 주겠어요."

어르신은 주 3회 카페에서 손님들의 키오스크 주문을 돕고 음료를 서빙한다. 그는 주변에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라고 자랑하면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출근하면 선생님들이 저를 알아보고 인사해주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날 정도예요. 누군가 나를 반겨주고, '이정순 여전히 쓸모있다'고 말해주는 건 참 벅찬 일이예요."

서울시와 한독은 올해도 기억다방의 확대를 이어갈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 구로구, 금천구, 동작구, 서대문구, 성북구, 마포구에 설치됐으며 은평구, 송파구, 강동구 등에도 추가 개소가 예정됐다. 한독 측은 "이후에도 더 많은 곳에서 기억다방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서울시와 협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개소한 마포구 치매안심센터 기억다방에서 주문 받은 음료를 준비하는 어르신 바리스타 [사진=한독]

구로구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기억다방은 센터에서 운영하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인기도 많고 참여자들의 반응도 좋은 캠페인"이라며 "활동하면서 자신감 있고 활기찬 모습을 회복하시는 것은 물론 병세도 안정화에 들어서는 분들이 많다"고 밝혔다.

이정순 어르신에게 마무리 멘트를 부탁하자, 한참 고민하던 어르신은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 한 마디 건네겠다고 나섰다.

"치매에 걸렸을 때 발 밑이 무너지는 느낌, 제가 제일 잘 알아요. 그럴 때 주저 앉아버리면 안돼요.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죠. 치매안심센터도 좋고, 주변에 찾아 나설 곳을 만들어서 돌아다닐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도 할 수 있어요."

장자원 기자 (jang@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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