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 빚 2000억’에 긴장한 산은...경매 넘긴 빚도 ‘1780억’[공성윤의 경공술]

공성윤 기자 2024. 1. 2.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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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부터 매각기일 잡힌 산업은행 경매물건 13건에 설정된 근저당액 총 1785억원
경매 불황에 전액 회수 사실상 불가능...‘유찰·낙찰가 하락→산은 수익 악화→세수 감소’ 우려돼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편집자주] 무협지를 탐독하신 분들은 '경공술(輕功術)'에 익숙하실 겁니다. 몸을 가볍게 해서 땅이나 물 위를 날아다니는 기술이죠. 그 경지에 오르면 시공간을 초월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를 공부하는 분들도 이처럼 누구보다 더 빨리,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에도 경공술이 있습니다. '경매와 공매의 기술'입니다. 무협지는 그 터득 방법을 알려주지 않지만, 꼼꼼한 현장 취재로 경공술을 발굴해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도급순위 16위의 대형 건설사 태영건설이 지난 12월28일 PF(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갚지 못해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국민 세금으로 막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일고 있다. 그 배경에는 태영건설의 주채권은행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란 사실이 깔려 있다. 정부는 '세금 지원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작년 들어 경매시장에 나온 산업은행의 채권 규모만 1000억원이 넘어 정부 차원에서 일부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사옥 건물 전경 ⓒ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은 법원경매정보 등을 통해 매각기일(법원이 부동산에 대해 실제 매각을 실행하는 날) 설정일을 기준으로 2023년 1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산업은행이 경매에 내놓은 물건을 살펴봤다. 채권자인 산업은행이 취하한 건수를 제외하면 모두 13건의 부동산이 경매시장에 나왔다.

여기에 묶여 있는 산업은행의 근저당액, 즉 담보대출액(공동담보 포함) 규모는 채권최고액 기준으로 총 1785억으로 집계됐다. 매각이 결정됐으나 기일이 잡히지 않은 물건 또는 채무자의 요청으로 유예된 물건 등을 포함하면 실제 대출액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고려하면 산업은행이 태영건설에 대해 보유한 채권 규모에 육박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해당 채권 규모는 PF대출 1292억원과 단기차입금 710억원 등 2002억원이다.

산은 대출 부동산, 채권단 협의 실패하면 경매行

경매는 은행권이 채권을 돌려받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통한다. 일반적으로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사업을 벌린 기업이 부실 징후가 보이면 주채권은행은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한다. 그 중 하나가 워크아웃 제도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주채권은행이 소집한 채권자협의회에서 채권단의 75%가 워크아웃에 찬성하면 빚 상환 시기를 미뤄주거나 채무를 일부 탕감해준다. 하지만 75%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채권단은 담보물 압류나 경매 등 법적 절차를 진행한다. 즉 산업은행의 경매 물건은 채권단과의 협의에 실패해 매각을 결정한 부동산이라고 볼 수 있다.

산업은행이 경매를 통해 1785억원 규모의 채권을 전액 회수하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 금리 인상과 경기 악화로 경매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의 경매 물건 중 과반인 8건은 공장이다. 경매 데이터 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2023년 전국 공장의 평균 매각가율은 75.7%로 나타났다. 감정가 100억원짜리 공장이 경매에 나오면 75억7000만원에 팔린다는 뜻이다. 공장 업주가 감정가에 육박하는 돈을 산업은행으로부터 조달했다가 경매 절차를 밟는다면, 공장이 싸게 팔릴수록 산업은행 몫의 배당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산업은행은 경매에서 손실을 봤다. 경매 13건 중 매각이 이뤄진 경우는 대지와 공장 등 4건인데, 여기에 설정된 근저당액은 567억원이다. 반면 매각가는 199억원에 불과했다. 실제 대출액이 근저당액의 약 80%인 점과 일부 빚 상환이 이뤄진 점을 감안해도 매각가와 비교하면 최소 백억원 대의 채권 미회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채무자의 다른 재산을 압류해서 채권 회수에 보탤 수는 있겠지만 부도 위기에 처한 채무자의 경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전망했다.

산업은행의 경매 물건 중 근저당액 규모가 가장 큰 부동산은 전남 진도군의 41만여㎡에 이르는 임야다. 여기에 설정된 산업은행의 근저당액만 456억원이다. 그런데 감정가는 그 절반도 안 되는 226억원으로 책정됐다. 경매가 시작하기도 전에 손실이 확정된 셈이다. 2021년 3월 경매에 올라온 해당 임야는 2년 넘게 주인을 못 찾고 있다.

산업은행이 경매에 내놓아 2023년 5월 매각된 경남 진주시의 한 공장. 산업은행은 여기에 설정한 근저당액은 367억여원이고 배당 청구한 금액은 314억원이다. 이 공장은 결국 감정가의 41%인 126억원에 매각돼 산업은행은 그 차액인 188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보게 됐다. ⓒ 네이버 캡처

산은에 세금 투입은 없지만 돈 못 벌면 세수 결손 발생

경매에서 회수하지 못한 채권은 산업은행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일각의 우려처럼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건 아니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지만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대출이나 채권 운용, 파생상품 판매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돈을 벌고 있다. 이렇게 번 돈의 일부는 지분 100%를 보유한 정부에게 배당금으로 돌아간다. 이는 세수 확충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2021년 배당금 규모는 8331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수입이 감소해 배당금이 줄어들면 정부 입장에서는 그만큼 세수 결손이 생긴다. 2022년 배당금 규모는 1647억원으로 대폭 쪼그라들었다.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81% 가량 급감한 탓이다. 이런 구조에 비춰보면, 산업은행이 채무자 지원책을 내놓을 때마다 나오는 "혈세로 부실기업 살린다"는 비판은 일견 타당한 측면도 있다.

이번 태영건설 워크아웃 때도 같은 비판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권대영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은 "워크아웃 자체에는 절대 세금이 들어가지 않는다"며 "다만 그 과정에서 정부가 시장 안정을 위해 정책금융기관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금융당국은 태영건설에 강도 높은 자구책을 주문할 예정이다. 그간 태영건설은 계열사 태영인더스트리를 매각하고 소유 골프장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하는 등 1조원 이상의 자구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건설은 추가로 오너 일가의 사재(私財) 출연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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