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은 재벌들의 ‘한남동 땅사랑’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명희 신세계 회장 자택은 가장 비싼 집에 이름 올리기도
(시사저널=김경수·이석 기자)
한국 재벌들의 '둥지'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이태원동이다. 이 일대에는 현재 국내 굴지의 재벌 2·3세 회장들이 거주하고 있다. 국내에서 내로라할 재벌 가문이 한데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창업주 세대가 주로 서울 성북동에 삶의 터전을 잡고 기업을 성장시켰다면, 이들은 부모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후 한남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남동은 지리상 서울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강북과 강남 생활권을 쉽게 오갈 수 있는 사통팔달 지역이다. 특색 있는 상권도 발달해 있다. 그래서일까. 정관계 인사까지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 '그들만의 부촌'이 형성됐다. 한남동 땅을 두고 매입 경쟁 또한 활발하다. 대표적으로 삼성가와 LG가의 경쟁이 그랬다.
삼성-LG 일가, 일찍부터 자리 잡아
한남동 일대에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을 비롯한 범삼성 일가와 범LG 가문이 포진해 있다. 삼성은 고(故) 이병철 창업주 때부터 장충동과 한남동 일대에 살았다. 이 때문일까. 2·3세들 역시 자연스레 한남동에 모여 살고 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생전에 한남동에서 집중적으로 건물들을 매입했다. 이 선대회장과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뿐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자녀들까지 인근에 살고 있다. 홍 전 관장의 동생인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과 그의 아들인 홍정도 중앙홀딩스 부회장, 홍정혁 BGF 사장 등도 일대에 단독주택을 여러 채 보유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선대회장 집 주변으로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장남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딸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등이 자리해 있다. 최근 이명희 회장의 자택은 9년째 가장 비싼 집에 이름을 올려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4년 전국 표준주택·표준지 공시지가'에 따르면, 이명희 회장 자택(2861.8㎡)의 2024년 공시가격은 285억7000만원이다. 2023년(280억3000만원)보다 1.9% 올랐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선대회장의 자택. 이곳을 중심으로 삼성가의 직계 가족과 처가 등이 늘어서 있는 모양새다. 이 선대회장의 집무실이자, 내빈을 맞이하는 영빈관으로 사용된 '승지원'도 있다. 한남동에서 이태원까지 쭉 뻗은 이들의 자택은 흡사 하나의 마을처럼 보인다. '삼성 이씨의 집성촌' '삼성가족타운'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삼성가만큼은 아니지만, LG가도 한남동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은 2005년 중순까지 '고급 빌라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엔빌리지에 있는 단독주택에 살았다. 하지만 2002년 LG전자로부터 매입한 부지에 1680㎡ 규모의 자택을 새로 지었다. 이 집은 한남동 부촌의 중간에 있다. 현재 구 선대회장의 자택은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인 구연경·연수씨에게 상속됐다. 구광모 LG 회장도 한남동 소재 고급 아파트 단지인 '한남더힐'에 거주하고 있다. 구 회장 역시 인근에 집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몇 년 전에 권경훈 두산건설 회장에게 처분했다.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도 한남동 새로 입주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삼남 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딸인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도 최근 한남동에 새 보금자리를 얻었다. 구 부회장은 2021년 착공 허가를 받고 한남동 7XX-XX번지에 주택(1232㎡)을 신축했다. 지하 2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이다. 구 부회장의 신축 주택 인근에는 모친 이숙희 여사와 언니 구명진씨가 거주하고 있다. 이렇듯 구 선대회장을 중심으로 범LG가 인사들이 속속 하얏트호텔 아래에 새롭게 둥지를 틀면서 한남동에 새로운 LG타운을 형성하고 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재계 서열 2위를 꿰찬 최태원 SK 회장도 한남동 주민이 됐다. 원래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이 소유했던 집인데, 박 명예회장이 2005년 별세하면서 장남 박재영씨가 상속받았다. 이후 박씨가 2014년 그의 누나에게 증여했고, 2년 후인 2016년 2월 최 회장이 170억원에 토지와 주택을 모두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의 집은 구본무 선대회장 저택과 상당히 인접해 있다.
최 회장은 2021년 4월 이 집에 입주했다. 현재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이혼소송 중인 최 회장은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이곳에서 함께 살고 있다. 최 회장의 저택(2234㎡)은 언덕 경사를 이용해 지하를 4층까지 건축했다. 지상은 2층이다. 이 집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지하에서도 한강 조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는 주택, 지하 3층과 4층은 각각 미술관, 주차장, 기계·전기실로 사용되고 있다.
농심가(家) 오너 일가는 주로 이태원동에 단독주택을 여러 채 보유하고 있다. 고(故)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과 그의 쌍둥이 첫째아들 신동원 농심 회장은 삼성가족타운 바로 뒷집에, 쌍둥이 둘째아들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은 삼성가족타운 아랫집, 삼남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은 삼성가족타운 옆집에 각각 살고 있다.
신춘호 회장이 별세하자 저택은 신동원 회장이 소유권을 이어받았고, 신 회장의 저택은 현재 장남인 신상렬 상무(30)가 소유하고 있다. 신동윤 부회장의 저택 또한 최근 농심 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장녀 신은선씨(36)가 증여받았다. 그 아래쪽으로는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 정몽열 KCC건설 회장의 단독주택이 있다. 이 밖에도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과 허동섭 한일시멘트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허영인 SPC 회장 등도 인근에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반대로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은 구본무 선대회장 집 바로 맞은편에 자택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 집을 S중소기업에 처분하고 성북동으로 자택을 옮긴 상태다.
한남동이 재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한남동은 원래 성북동과 더불어 우리나라 전통적인 양대 부촌 자리를 지켜온 곳이다. 유엔빌리지 쪽을 중심으로 하는 한남1동, 하얏트호텔 부근의 한남2동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재벌들이 한데 모인 거주지다. '한남동=고급 주택' 등식은 더욱 굳혀지고 있다.
재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남동에 모여 사는 이유는 뭘까. 먼저 보안 때문이다. 한남동은 주변으로 대사관과 영사관들이 많이 모여 있다 보니 다른 지역보다 보안이 철저하다. 지형 특성상 높은 언덕도 많다 보니 폐쇄적인 분위기까지 더하면서 사생활 보호에 안성맞춤이다.
한남동은 또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다. 광화문까지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다. 강남도 한남대교만 건너면 된다. 서울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출퇴근에 최적화된 지역이 아닐 수 없다. 한남동에선 집회 및 시위가 불가능한 곳이 많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에 따르면 외국 공관 반경 100m 이내에서는 집회나 시위가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한남동은 풍수지리학적으로 굉장히 좋다. 남산을 등지고, 한강을 굽어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역이다. 배산임수는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베산임수의 조건을 충족한 곳은 부촌으로 거듭나는 경우가 많았다. 배산임수는 현대 주거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친자연적인 주거환경과 함께 수려한 조망까지 확보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지 조건 덕에 수요자들의 주거 선호도가 높다. 또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중심지로 빠르게 자리매김한다. 한남동은 이렇게 재벌가의 집성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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