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용 죽겠지
[똑똑! 한국사회] 방혜린ㅣ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으레 이 시기가 되면 지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기대와 설렘으로 북적여야 할 텐데, 어째 심란한 마음뿐이다. 올해가 용띠 해라는 사실도 며칠 전에야, 사람들이 자꾸 연말 인사에 용 그림을 함께 보내는 통에 알게 되었다. 연말, 갑진년 새해를 준비하며 기사를 보는 동안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문장. 그것은 바로 ‘용용 죽겠지’였다.
지난 12월 한달 어떤 뉴스가 있었는지 톺아본다. 7일에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사망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이 원청업체 관계자들의 무죄를 확정했다. 결국 산재로 사망한 김용균씨와 관련해 실형을 받은 이는 아무도 없게 됐다. 같은 날, 지난여름 수변 수색 중 순직한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수사책임자였던 박정훈 대령의 항명죄 1차 공판이 진행됐다. 채 상병 소속 부대인 해병 1사단의 사단장이었던 임성근 장군은 자신에겐 수색작업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없기에 사고에 관여할 수 없었다며 버티고, 되레 사고 경위와 책임 관계를 파헤친 수사단장인 박 대령이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꼴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 죽음 역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18일에는 혹한의 날씨 속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오체투지 행진에 나섰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었으나 여당 반대로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고, 통과가 요원한 상황이다. 그사이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은 기각되었고, 서울경찰청장은 1년이 넘어가도록 기소조차 되지 않았으며, 용산구청장 등은 보석으로 풀려났다. 수도 도심 한복판에서 길 가던 사람이 159명이나 숨졌지만 이 사건 역시 책임지는 이는 없다.
23~25일 성탄절 연휴에는 각지에서 인명사고가 속출했다. 세종시에서 연말 묵은 때를 벗기고자 목욕탕을 찾았을 할머니들이 감전 사고로 숨졌고, 서울 도봉구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는 화마를 피해 아이를 안고 뛰어내린 30대 아버지가 목숨을 잃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연휴 동안 노동자 3명이 추락사고로 사망했고, 그에 앞서 22일엔 전국 공사 현장 등에서 중대재해 사고로 무려 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7일에는 배우 이선균씨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마약 혐의와 관련해 약물검사 결과 음성으로 확인되었음에도 세차례 소환에 19시간 넘는 무리한 수사가 진행됐고, 비공개 조사마저 거부됐다. 더구나 수사 정보는 물론 혐의사실과 무관한 개인 사생활을 담은 대화 녹음본까지 무분별하게 보도되고 퍼져나갔다. 외신에서는 이선균씨 사망 소식을 보도하며 무리한 경찰 조사와 더불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윤석열 정부를 주목했다.
28일 고용노동부는 2023년 산재사고 사망자 수가 역대 최초로 500명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몇년 동안 600~700명대에서 유지되던 사고 사망자 수치가 낮아진 것이 ‘자기규율 예방체계’ 정책의 성과라는 자평이 뒤따랐다. 노동계에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줄고 있는 만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노동자의 불행한 죽음을 막는 주요 요인일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보고서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효과는 한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은 2년 추가 유예가 유력한 상황이다.
종합해보자. 온통 누군가 죽고 다치고, 그 책임을 찾아 헤매는 뉴스로 2023년 12월이 가득 찼지만, 반대로 누군가 이 책임을 통감했다거나 제대로 처벌받았다는 뉴스는 좀체 찾기 어려웠다. 사람이 죽었으나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은 채로 새해가 밝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불행히 죽을 것이다. 분하고 원통한 죽음 위에 또 다른 죽음이 쌓일 것이다. 하지만 약 오르게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만 같다. 용용 죽겠지. 지난 12월 소식들을 통해 본 우리의 어두운 새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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