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의 새해 소망[박희숙의 명화 속 비밀 찾기](1)

2024. 1. 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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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희망’(1973~1977년, 베니어합판 유채, 맨체스터 아트 갤러리 소장)



종이 한 장의 차이는 별것 없지만, 12월과 1월의 달력 종이 차이는 엄청나다. 해가 바뀌었다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우선 새해를 맞이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지난해의 고통과 실패, 두려움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시작과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해를 맞아 가슴 깊은 것에서 희망이 부풀어 오를 준비를 하는 셈이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은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삶의 안정감을 선사하므로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

가족과 친구가 인생의 희망이라는 사실을 표현한 작품이 하워드 호지킨(1932~2017)의 ‘가정의 희망’이다.

검은색의 커다란 배경 한가운데 노란색, 녹색, 파란색, 오렌지색, 빨간색 등 형형색색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 다양한 색으로 채워진 공간에는 길고, 가는 선과 점 등 어느 하나 똑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없다.

검은색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다양한 색으로 채워진 사각의 공간이 집을 연상시키며 희망을 나타낸다. 바탕의 커다란 검은색 프레임은 삶의 고통과 불안 그리고 번뇌와 절망을 암시한다. 또한 어두운 영화관을 연상시킨다. 한가운데 형형색색의 사각 공간이 관객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 스크린 같은 효과를 준다.

호지킨은 이 작품에서 희망을 나타내고 있는 공간의 다양한 색들을 통해 그의 친구들을 추상화했다.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했던 순간들 속에서 느꼈던 강렬한 감정을 다양한 색과 선 그리고 점으로 표현했다. 각양각색의 색이 튀지 않고 서로 잘 어우러져 있는 건 친구들과의 친밀함을 나타낸다.

호지킨은 가정이 삶의 원천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검은색 테두리 안 사각 공간을 화려하게 묘사했다. 프레임 가장자리의 검정 뒤에 희미하게 쏟아져 나오는 색들은 친구들과 만남에서 나온 감정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호지킨의 그림은 서정적인 순수 추상화의 모습을 보이나 실제로 그의 작품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평상시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호텔 라운지나 여행지에서 자신과 타인에게 느꼈던 감정을 선명한 색채로 표현하곤 했다.

호지킨은 이 작품처럼 그림 속의 프레임을 최초로 그린 이젤 추상화가로 평가받는다. 인도 회화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색상과 거친 붓 터치가 특징이다. 1977년 예술 분야에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작 작위를 받았고, 1992년에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신은 희망이라는 마지막 희든 카드를 주었지만, 희망은 간사한 사기꾼과 같다. 현란한 말솜씨 때문에 사기꾼에게 현혹당하는 것처럼 희망만 품고 하늘에서 별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면 희망은 없느니만 못하다. 결국 희망은 신의 몫이 아니다. 인간 자신의 몫이다.

박희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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