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사(士), 농(農), 공(工), 상(商) 그리고 천민(賤民)

김해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덕분석과학본부장 2024. 1.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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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덕분석과학본부장

불과 15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어린이의 미래 희망 직업 조사에서 과학자는 비교적 높은 순위의 희망 직업에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순위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직업이 됐다. 과학자라는 직업이 1970-1980년대만 해도 어린이 장래 희망 순위에서 늘 3위 안에 들었지만 요즘 어느 어린이들에게는 연예인, 운동선수, 크리에이터가 1순위의 희망 직업이고 그나마 과학과 관련된 직업으로는 돈 잘 버는 의사가 되겠다는 정도이다.

전 세계 모든 민족의 과학 기술을 돌이켜 볼 때 중국이나 아랍을 제외하고는 우리 민족만큼 과학 기술의 수준이 높았던 곳은 별로 없을 것이다. 15세기 무렵까지는 중국이 세계를 앞서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삼국시대,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5000년 이상의 기록으로 남은 역사를 통해 보아도 한국의 과학 기술 수준은 세계적으로 선진 위치를 지켜왔다고 할 수도 있다.

비록 조선시대까지 우리 민족의 과학기술사 대부분이 중국의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중국의 그것에 종속돼 버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 민족만의 독창성은 항상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우리 민족의 과학 기술 최전성기를 조선 세종대왕 시절로 말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글 창제와 장영실이라는 걸출한 과학기술자의 활약으로 앙부일구, 혼천의 등 우리만의 독창적인 과학 기술 제품을 만든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녀의 자식으로 태어나 동래현의 관노였던 장영실은 자신의 탁월한 재능 하나로 천인 신분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종3품의 직위에까지 올랐지만, 그가 지휘해 제작했던 국왕의 가마가 부러지는 사건으로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성리학에 기반을 둔 철저하고 강력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의 지배층에서는 장영실 같은 인물을 포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소실의 자식으로 태어난 서얼의 신분으로 우리나라 의학의 틀을 잡고 동의보감 편찬에 지대한 공을 세운 허준도 조선의 신분 사회에서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우리 한국의 과학사에서 근대 과학의 본격적인 출발점은 일제강점기 3·1운동 이후로 알려져 있다. 국권을 뺏긴 이유가 근대화에 뒤쳐졌기 때문이라는 사회적 공감대와 국민의 과학에 관한 관심은 보통교육의 확장과 고등 전문교육 기관의 설립 등으로 현대과학교육에 한 걸음 나아갔으나, 불행하게도 일제의 무단정치에 의한 억압적 교육, 신분 차별, 선진 서구문화에 접할 기회 상실 등으로 구한말에 보였던 의욕적인 면모를 찾을 길이 없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국민의 과학에 관한 관심 확대, 보통교육의 확장과 고등 전문교육 기관의 설립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친일파로 잘 알려진 윤치호와 개신교를 중심으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은 꾸준한 발전을 거듭해 왔다. 특히 현재의 몇몇 과학 기술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 과학을 선도하는 높은 수준의 연구와 혁신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바탕에는 정부의 과학 기술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 예산 증가와 과학 인프라 구축을 통한 최상의 연구 환경 제공,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기관들과 경쟁하며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피나는 노력과 열정, 국제 공동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협업할 수 있는 환경 구축, 기술 혁신에 대한 빠른 수용성 등의 요인이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연구기관들과 소속 과학자들의 피나는 노력, 열정과 헌신은 생각하지 않고 연구 카르텔이라는 생소한 천민 집단으로의 강등이 현실화 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과학자라는 직업은 존경은커녕 존중도 받지 못하는 직업이 됐다는 현실이 슬프다. 김해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덕분석과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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