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운동권’[오늘을 생각한다]

2024. 1.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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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처음 ‘운동권’이란 단어를 접했을 때, 그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나 도시빈민 생존권 등 타인의 착취와 억압에 귀 기울이는 집단의 이름이었다. 머지않아 많은 사람에게 ‘운동권’이란 단어가 환멸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됐다. 아마 한 번의 사건으로 이뤄진 건 아닐 것이다. 특히 2000년 5월 우상호와 송영길 등 86세대 정치 지망생들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전야제 직후 광주 시내의 한 유흥주점에서 여성 종업원들을 대동하고 술을 마신 사건이 폭로됐을 때, 이들이 기성 정치인과 똑같은 모습을 보일 때마다 ‘운동권’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상이 누적됐고, “너희도 그놈들처럼 정치하려고 하는 거지?”라는 시선을 피하기 어려웠다.

물론 ‘진짜 운동권‘의 목소리가 언제나 지지를 잃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가령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노동법 개악에 반대할 때, 이라크 전쟁 파병에 반대할 때,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증진을 위해 함께 싸울 때, 상가주택 세입자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낼 때, 홈리스의 주거권을 위해 싸울 때 그런 활동들은 적지 않은 지지와 박수를 받았다.

애석하지만 학생 시절 깔짝 ‘운동’에 발을 담갔던 이들의 기만적인 행보는 ‘운동권’이라는 이름으로 상징화된다. ‘운동권’이라는 기표에 담긴 이런 부정성을 확대재생산 하는 것은 대체로 보수언론이지만, ‘운동권 출신 정치인’으로 호명되는 민주당 86세대 인사들의 행보가 경멸스럽게 보였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여전히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들에게 ‘운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런 경계는 항상 무시된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권’이란 기표의 지시대상은 불분명하고 부정확하다. ‘운동’이 포함돼 있지만, 정작 그것을 상징하는 인사들은 운동의 대의와는 멀어져 있거나 배반하기도 하고, ‘내로남불’을 시전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운동권’이라는 호명은 제도정치 내에서 이전투구의 도구로 활용되거나, 사회운동을 싸잡아 억압하기 위해 악용될 뿐이다.

지난해 12월 26일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민주당 86세대 정치인들을 거론해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하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했다. ‘운동권’이 활동가 집단을 지칭하는 기의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의미로 차용된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당적을 유지한 채 새로운선택 창당 대열에 합류해 비난을 사고 있는 류호정 의원 역시 한 라디오쇼에 출연해 ‘운동권 정치 청산’을 하나의 과제로 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정파를 가리지 않고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허수아비 때리기의 효과는 86세대 정치인들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에 선 한동훈과 류호정 등 정치인들의 기만적 행보를 포장할 뿐이다.

돈도, 명예도 없이 몫 없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권리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사회운동은 한국사회의 위기만큼 위태롭지만, 착취와 억압을 견디며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에게 여전히 필요하다. 은폐되고 왜곡된 사회운동의 진의를 살려야 할 이유, ‘운동권’이라는 기표를 불태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최근 120여명의 활동가에 의해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가 출범했다. 다양하게 흩어져 구심력을 잃고 있는 사회운동을 재구성하고, 사회운동의 진의를 묻기 위한 시도다. 내로남불 정치를 일삼는 정치인들의 기만에 맞설 우리의 새로운 길은 이런 시도를 통해 피어나지 않을까? 우리에겐 여전히 사회운동이 필요하고, 그것은 잘못된 세상을 뒤바꾸는 활력으로 재구성돼야 한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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