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고성능 GPU로 4개 국어하는 ‘디지털 휴먼’ 구현”… ‘AI 칩’ 절대강자 美 엔비디아 본사 가보니

샌타클래라(미국)=최지희 기자 2024. 1. 2.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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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실리콘밸리 본사가 AI 핵심 기지 역할
3만5000평짜리 ‘협업·개방’의 AI 우주선
본사가 사무실이자 공장… AI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
차세대 AI 기술 개발 박차… “개방·수평이 핵심 철학”
개발자 400만명, 기업 4만개 모인 플랫폼은 확장 중
지난해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1조달러 돌파
엔비디아의 3차원 컴퓨팅 플랫폼 '옴니버스'를 활용해 만든 AI 디지털 휴먼 다이애나가 말하는 모습./엔비디아

“안녕, 다이애나라고 해. 난 엔비디아 옴니버스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의 최신 업데이트 버전이고, 최근 중국어 실력을 확 높였어.”

지난달 1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엔비디아 본사. 거대한 우주선처럼 생긴 AI 기지 안 데모 룸에 들어서자, 동양인 모습을 한 ‘디지털 휴먼’이 영어와 중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그는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환하게 웃었다. 여러 명의 얼굴 이미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AI 모델 다이애나는 4개 이상의 다국어를 구사하는 동시에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영어 음성 파일을 프로그램에 넣으니 다이애나는 이를 텍스트로 전환한 뒤 즉각 원문에서 감정을 유추하고 중국어로 번역해 표정을 바꿔가며 말했다. 실제 사람과 비교하면 표정이 아직 어색한 감이 있었지만, 실시간 통역에 감정을 실어 대화가 부드럽게 이어졌다.

공장을 따로 갖고 있지 않은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엔비디아는 실리콘밸리 심장부에 있는 본사가 사무실·회의실이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테스트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일종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GPU(그래픽처리장치)뿐만 아니라 AI 가속기 시장에서도 90% 이상의 점유율을 독식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회사 주가는 지난해 1월 초 143.15달러에서 지난달 29일 기준 495.22달러로 한 해에만 약 246% 폭등했다. 대만계 미국인 젠슨 황이 회사를 세운 지 30년 만인 지난해 5월 엔비디아는 반도체 기업 중 유일하게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했다.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모든 산업에 AI가 적용될 것이며, AI의 근간엔 엔비디아 기술이 있다”면서 “엔비디아의 생태계엔 400만명이 넘는 개발자와 전 세계 4만개 이상의 기업, 스타트업 1만4000개가 모여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엔비디아 본사 보이저(voyager) 건물 내부에서 바라본 전경./최지희 기자

◇ “우린 AI 플랫폼 회사… 신기술 빠르게 시장에 내놓는 게 임무”

이날 만난 직원들은 엔비디아가 더 이상 반도체 회사가 아니라 AI 플랫폼 회사라고 말했다. 이들은 플랫폼을 ‘협업의 장’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AI 훈련 전 과정을 지원하는 ‘플랫폼 전략’과 ‘소프트웨어 중심 접근법’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했다. 이런 플랫폼 전략을 구사한 결과, 고객들은 단순히 GPU 제품만이 아닌 엔비디아의 가치 사슬을 구매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TSMC, 어도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엔비디아의 AI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 황 CEO는 “생성형 AI를 마주한 전 세계 기업들은 파괴되지 않기 위해 회사를 디지털화하고 소프트웨어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하려 경쟁하고 있다”며 “이들 기업과의 협업으로 엔비디아 플랫폼은 계속 확장되고 있다”고 했다.

엔비디아는 새로운 기술이나 AI를 사전에 명확히 시뮬레이션해보고 가능한 한 빨리 시장에 내놓는 것이 더 나은 플랫폼을 구축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날 데모 룸에서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를 기반으로 구동하는 3차원 가상 현실 컴퓨팅 플랫폼 ‘옴니버스(Omniverse)’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검증 무대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었다. 디지털 휴먼 다이애나도 이 플랫폼을 활용한 결과물이다.

옴니버스 AI 컴퓨팅 시뮬레이션을 적용한 기업들의 제조 공장 모습도 데모 룸 화면 곳곳에 보였다. 독일 BMW는 헝가리에 새로운 제조 공장을 짓기 전, 잠재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한 가상 공장을 만들어 미리 가동했다. 공장에 디지털 휴먼을 투입해 실제처럼 교육하고, 생산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AI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은 창고에 투입할 로봇의 훈련과 AI 학습을 실제와 동일한 가상현실에서 먼저 진행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했다.

지구와 물리적으로 동일한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 미래 기후 변화 등을 예측하는 엔비디아의 '어스2' 프로젝트./엔비디아

이런 엔비디아의 플랫폼은 인류의 미래를 대비하는 데에도 쓰이고 있었다. 엔비디아는 ‘어스2′(Earth-2)라는 이름의 수퍼컴퓨터를 개발해 옴니버스 플랫폼에 지구를 그대로 본뜬 ‘디지털 트윈’ 지구를 만들고 있다. AI로 수십년 후의 기후를 시뮬레이션하고, 변화와 위기 상황을 예측해 대안을 미리 구축해 놓겠다는 취지의 대규모 프로젝트다.

엔비디아는 본사를 지을 때도 시뮬레이션을 위해 고유 소프트웨어를 활용했다. 건물에 빛이 얼마나 들어와야 업무에 적절할지, 전력을 덜 쓰고 어떻게 공기를 신선하게 순환할지 등을 정하는 데 자사 렌더링 소프트웨어 ‘아이레이(Iray)’로 정확한 계산을 거쳤다. 잭 달그렌 엔비디아 시니어 디자인 매니저는 “반도체 칩 제조 과정에서도 그렇듯 대부분의 분야에서 정확한 시뮬레이션은 좋은 결과를 끌어낸다”며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으면 원칙은 흩어지고 방향성을 잃는 경우가 많다는 걸 회사는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 수평·개방 강조하며 전방위 협업 일상화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플랫폼 회사를 지향하는 엔비디아의 철학은 본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약 11만6100㎡(약 3만5000평) 크기의 넓고 낮은 엔비디아 본사는 엔지니어가 상주하는 보이저(voyager) 건물과 마케팅 등 대외 사업부가 있는 엔데버(endeavor)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황 CEO는 엔지니어들이 한데 모여 광범위하게 협업할 수 있는 공간이 필수라고 여기고 지난해 자신의 협업 철학을 담은 보이저 건물을 지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퀄컴 등의 본사는 담당 부서에 따라 구획화가 명확한 반면 엔비디아는 수평과 개방성을 건물 설계에도 적용했다.

이날 엔비디아 엔지니어들은 사무실 책상 사이사이 놓인 화이트보드 수백개 앞에서 난상토론을 벌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엔지니어 1000여명 이상이 근무하는 2320㎡ 규모의 널따란 사무실은 벽이나 문 없이 탁 트인 공간으로, 엔비디아 직원이면 누구나 오가며 개발 상황이나 회의 내용이 적힌 화이트보드를 볼 수 있었다. 엔비디아가 강조하는 생성형 AI 시대 핵심 경쟁력 ‘소프트웨어의 개방성’이 회사의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엔비디아 본사 정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고 있다./최지희 기자

여기에 더해 황 CEO는 조직 계층을 최소화했다. 황 CEO는 회사 경영진 40여명에게 매주 각자 맡고 있는 5가지 주요 업무 목록 이메일을 받고 직접 소통한다. 그는 “CEO 직속 부하 직원이 많을수록 회사 내 계층이 줄어든다”며 “이로써 회사 내 정보는 유동적으로 흐르고, 구성원들이 쉽게 정보를 나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가 협력하고, 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든 구성원이 알 수 있도록 해 더 나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1만명이 함께 일할 수 있는 본사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도 개방성과 연관이 있다. 통상 회사 로비 한가운데 엘리베이터가 놓이지만, 이곳엔 넓고 낮은 계단이 놓여 수평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삼삼오오 함께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서 대화하게끔 설계됐다. 달그렌 시니어 매니저는 “엘리베이터에서는 모두가 입을 꾹 닫고 대화를 하지 않지만, 걸어 다니면 자연스럽게 동료를 마주치고 대화한다”며 “엔지니어 간 소통에서 혁신이 나온다고 회사는 보고 있다”고 말했다. 로비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개방된 공간에 술을 마실 수 있는 바(bar)가 나왔다. 직원들은 업무 후 술집에 가는 대신 오후 5시부터 운영되는 바에 모여 대화한다. 협업을 유도하는 문화가 본사 곳곳에 스며 들어있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엔비디아 본사 보이저(voyager) 내부 모습. 직원들과 그 가족·지인들이 로비 협업 공간에 모여 식사를 하거나 대화하고 있다./최지희 기자

황 CEO는 “엔비디아가 자체 구축한 AI 인프라를 다른 기업도 구축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 플랫폼에서 모든 구성 요소를 제공하고 있다”며 “우리는 지난 20년간의 투자로 구축한 방대한 소프트웨어 스택을 기반으로 혁신을 지속하고, 세상이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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