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인플레’ 진정세… 연착륙 신호인가 장기침체 서막인가 [2024 신년기획-세계 경제 전망]
국제유가 안정… 美 2024년 초 물가 2%대 전망
10% 달한 유로존도 1년 만에 2%대로 ‘뚝’
금리 인하 가능성에 뉴욕증시 상승 랠리
옐런 美재무 “경제 연착륙 길 가고 있다”
디플레·경기 둔화 우려 여전
IMF 등 새해 세계 성장률 2%대 점쳐
긴축 장기화로 가계소득 약화 불안요인
유럽 각국 고금리·감세 등 부양책 병행
“저성장에 섣부른 조기 긴축 완화 위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종료 뒤 2년여 이어진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2024년 세계 각국 경제 성적표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경제국 미국이 2023년 말 인플레이션 둔화(디스인플레이션)를 공식 선언했고 다른 주요국에서도 일제히 물가 상승률이 감소하고 있어 이것이 경기 연착륙의 파란불인지 경제 침체 늪의 서막인지를 두고 전망이 갈린다. 또 침체 장기화 등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한 주요국 대응도 더욱 분주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주요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하락세다. 미국의 지난해 11월 CPI는 전년동월 대비 3.1% 상승하며 시장 예상치를 유지했다. 지난해 1~2월 CPI 상승률이 6%대로 높았고, 최근 국제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선 아래로 안정화한 것을 고려하면 올해 초엔 CPI 상승률이 정책 목표치인 2%대로 무난하게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1월 유로존(유로화 사용지역) CPI 추정치도 전년동월 대비 2.4% 상승한 데 그쳐 10월 10.6%에서 꾸준히 하락했다. 같은 기간 중국 CPI도 근 3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금융시장은 이미 올해 미국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선반영한 상황이다.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예상대로 금리를 동결하자 이날 뉴욕증권거래소 다우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3만7000선을 넘어섰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지수도 같은 날 일제히 급등했다.
이날 미 연준은 2024년 금리 인하 신호를 보내면서 연착륙을 향한 자신감을 보였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인플레이션 감소와 소비자 실질소득 증가가 함께 이뤄지고 있다며 “미국 경제는 연착륙의 길로 가고 있다”고 자신했다.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도 19만9000건 늘어나 예상 평균치를 18만건 상회한 것으로 나타나 연착륙 전망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달 14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는 연준이 올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80.8%로 내다봤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해 11월 펴낸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의 급격한 경기 둔화는 예상되나 경제 침체는 없을 것”이라며 미 경제 회복세에 주목했다. 피치는 연준이 2024년 재정 완화 정책을 재개할 가능성이 큰 점, 소비자들의 초과 저축 의지가 높은 점, 민간 부문의 견고한 재정을 그 근거로 들었다. 피치는 연준의 긴축 통화 정책이 2024년에 시간차 효과를 발휘해 가계·실질소득을 약화시키겠으나, 2024년에도 미국이 여전히 플러스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적으로도 2024년은 디스인플레이션이 돋보이는 해가 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주요 국제 금융기구는 2024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2000∼2019년 연평균 성장률인 3.8%를 크게 밑돌 것으로 내다봤다. IMF는 2024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9%,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7%, 피치는 2.1%로 예상했다.
하지만 경기 둔화는 신흥 시장과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주로 선진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IMF는 분석했다. 미국이 선진국 중에서는 소비와 투자 회복으로 깜짝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유로 지역 성장률은 1.5%로 전반적으로 하향 조정됐다. 이는 2023년 강세를 보였던 서비스 산업이 2024년에는 침체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프랑스, 스페인 등의 경제 전망이 약화했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의 여파가 유로 지역에서 유독 컸기 때문이라고 IMF는 분석했다.
부동산 위기로 디플레이션 위기에 처한 중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신흥 시장 경제는 상당히 탄력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IMF는 2024년 개발도상국과 신흥국 성장률을 4.0%로 전망했다. 특히 OECD는 인도의 성장률이 고공 행진하며 2023년 6.3%에서 2024년 6.1%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공공투자 증가가 인도 경제를 견인하고 있고, 물가상승률도 하락 중이라 소비자 구매력 회복이 눈에 띈다는 분석이다.
IMF는 특히 2025년까지 실업률이 3.6%에서 3.9%로 매우 완만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을 필두로 세계 경제 전망이 올해 연착륙 시나리오와 점점 더 일치하고 있으며, 여러 위협이 제기된 유럽조차도 인플레이션이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연착륙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OECD도 세계 경제성장률이 2023년 2.9%에서 2024년 2.7%로 둔화하다가 2025년 3.0%로 회복하며 경착륙 시나리오에 손을 들어줬다.
경기 둔화가 눈에 띄게 진행 중인 유럽을 중심으로 긴축 정책과 경기 부양책을 병행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금리 동결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5.25%의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은 경기 침체 대응책으로 내년 4월1일 회계연도부터 법인세 총 270억파운드(약 44조원)를 감면할 예정이다. 영국 정부는 이 제도로 3년간 연간 3%의 투자 증가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독일도 지난해 8월부터 2024년까지 연간 70억유로(약 9조원)의 법인세를 감면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감세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위험이 있는 만큼 영국은 2022년 12월 10.5%에 달했던 물가상승률을 지난 10월 4.6%까지 줄이고 나서 이 같은 감세 정책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세계 주요국은 대부분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2년 가까이 긴축적 통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IMF도 지난 10월 발표한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조기에 긴축을 완화할 경우 지난 18개월 동안 달성한 효과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며 디스인플레이션을 달성하기 전까지 섣부른 통화 정책 변경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IMF는 저성장 시기에 국가 재정 여력이 감소하면서 구조 개혁이 핵심적인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신중한 구조 개혁을 통해 녹색 전환과 같은 장기적인 가치가 높은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2023년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의 정책 변화로 원유 가격이 급등했던 점을 지적하며 “지정학적 분열은 자제하고 글로벌 공동 번영을 촉진해야 한다”며 국제사회 신뢰 회복과 투명성 확보를 촉구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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