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반환까지 40분…돌려받은 금액은 ‘300원’ [심층기획-脫플라스틱 시대]
생수병 35%가 무라벨 … 섬유로 용기로 ‘업사이클링’
‘탄소 없는 섬’ 표방해 재사용 UP
제주삼다수 “CO₂ 배출량 70t이나 줄여”
버릴때 라벨 떼는 번거로움 없애 편리
국내 생수업계 첫 ‘재활용 페트’ 도입도
일회용품 보증금제 시행엔 ‘균열’
업체 97% 참여·회수율 90% 넘었지만
규제 유예 이후 반환율 80%로 떨어져
업주들 “보증금제 계속 해야할지 고민”
정부 ‘일회용품 규제 완화’ 후폭풍
정책 전환 두 달 지났지만 여전히 혼란
서울 등 일부 지자체 자체 감축 나서고
다회용품 생산·판매 업체는 존폐 위기
전문가 “모니터링 토대로 방향 고민을”
보증금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기자를 보던 카페 사장은 “손님 입장에선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라며 “컵에 부착된 바코드 스티커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기기가 컵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컵에 묻은 물 때문에 바코드 스티커가 망가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히 보관하는 노력까지 필요한 것이다.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제주도개발공사 제주삼다수공장. 지난달 11일 찾은 공장 생산라인 컨베이어벨트 위로 생수병들이 줄지어 나온다. 생수병들은 라벨이 없고 뚜껑과 병에는 색깔을 넣지 않은, 이른바 ‘3무(無) 생수병’이다. 무색캡(뚜껑)과 무색병은 시판되는 다른 생수병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하지만 무라벨은 그렇지 않다. 생산 제품을 눈에 띄게 포장해 소비자 눈길을 끌어야 하는 게 상품의 속성이어서다.
무라벨 생수는 플라스틱 사용량 절감을 위한 선택이었다. 제주삼다수는 무라벨 생수병인 ‘제주삼다수 그린’을 2021년 처음 생산했다. 현재는 전체 생산량의 35%가 무라벨이다. 제주삼다수 측은 무라벨 생수병 생산량을 점차 늘려 2025년에는 전체의 50%, 2026년에는 10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제주삼다수 관계자는 “처음에는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을 잘 알아보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플라스틱 절감을 위해 도입했다”며 “요새는 라벨을 떼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줄어 오히려 분리 배출하기 편하다는 고객도 많다”고 전했다.
매출량이 늘수록 생산에 필요한 플라스틱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 모순된 상황 타개를 위한 제주삼다수의 해결책은 플라스틱병 생산량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이다. 제주삼다수는 국내 생수업체로는 처음 ‘재활용 페트’(CR-PET)를 도입했다. CR-PET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친환경 소재로 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 용기로 사용할 수 있다.
제주도는 배출된 플라스틱병을 섬유 등 새로운 소재로 재사용하기도 한다. 제주삼다수공장 직원들이 입고 있는 남색 작업복은 제주 도내에서 운영 중인 ‘페트병 자동수거보상기’에서 수거한 투명 페트병을 주된 소재로 삼아 업사이클링(재사용)한 제품이다.
“환경부 (일회용품 규제 유예) 발표가 나오고 규제가 너무 애매해 보름 전부터 보증금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11일 제주시청 인근의 한 포장 전문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은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이탈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친환경 제주’를 대표하는 제도다. 도내 업체의 높은 참여율과 컵 회수율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모범이 되고 있기도 하다. 제주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시행 초반 57.6%에 불과했던 일회용품 보증금 참여 업체는 2023년 9월 기준 96.8%까지 치솟았다. 주간 일회용품 회수량이 90%가 넘을 정도로 제주에선 일회용품 보증금제가 거의 안착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환경부가 지난해 11월7일 일회용품 규제 유예를 발표하자 환경 우등생 제주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규제 유예 발표 약 4일 후 도내 커피 판매 매장 등의 일회용컵 반환율이 80.8%로 10% 가까이 하락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형평성’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됐다. 일회용컵 보증금제에서 이탈한 제주 시내 한 업체 사장은 “나와 같이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들이 모인 단체방에서 다 같이 보증금제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과태료를 내라고 하면 그냥 내고 말겠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 중인 또 다른 업주는 “아직 일회용품 보증금제를 하고 있긴 한데 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며 “주변에서 오락가락한 규제로 ‘제주가 만만하냐’는 불만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일회용품 관리 정책을 ‘과태료 부과’가 아닌 ‘자발적 참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일회용품 사용 감축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과태료 없이도 관리가 가능하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오락가락한 정책으로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 줄이기에 동참하려 했던 시민들도 오히려 참여를 꺼리면서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환경부 정책 변화가 나온 지 약 2개월이 지났지만, 현장 혼란은 여전하다. 규제에 맞춰 종이 빨대와 다회용컵 생산·판매 준비를 하던 업체는 존폐 위기에 몰렸고 길거리에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회용품 관련 환경부의 규제 완화로 현장 혼란이 가중되고 플라스틱 감축 의지에 대한 의문이 쏟아지자 지방자치단체·시민이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정책을 곧바로 뒤집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규제 완화 결과를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 소장은 “환경부 발표 이후 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모니터링해 그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규제 유예 이후) 열심히 일회용품 감축을 위해 노력하는 제주도에서도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폐지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등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며 “종이컵 같은 경우에는 법 개정을 통해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는데 이 부분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주=이민경 기자 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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