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반환까지 40분…돌려받은 금액은 ‘300원’ [심층기획-脫플라스틱 시대]

이민경 2024. 1. 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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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플라스틱 제로 선언 제주 가 보니
생수병 35%가 무라벨 … 섬유로 용기로 ‘업사이클링’
‘탄소 없는 섬’ 표방해 재사용 UP
제주삼다수 “CO₂ 배출량 70t이나 줄여”
버릴때 라벨 떼는 번거로움 없애 편리
국내 생수업계 첫 ‘재활용 페트’ 도입도
일회용품 보증금제 시행엔 ‘균열’
업체 97% 참여·회수율 90% 넘었지만
규제 유예 이후 반환율 80%로 떨어져
업주들 “보증금제 계속 해야할지 고민”
정부 ‘일회용품 규제 완화’ 후폭풍
정책 전환 두 달 지났지만 여전히 혼란
서울 등 일부 지자체 자체 감축 나서고
다회용품 생산·판매 업체는 존폐 위기
전문가 “모니터링 토대로 방향 고민을”
‘일회용컵 수거함 찾기→자원순환보증금 애플리케이션(앱) 다운로드→앱 회원 가입→이체 계좌 등록→수거함 기기에 앱 내 소비자 바코드 인식→수거함 기기에 컵 바코드 찍기→수거함에 컵 반환.’ 2300원(일회용컵 보증금 300원 포함)짜리 커피가 담겨 있던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반환하기까지 거친 과정이다. ‘탄소 없는 섬’을 표방하며 ‘플라스틱 제로’ 정책을 추진 중인 제주에서도 일회용 플라스틱 컵 반환 절차는 쉽지 않았다.
제주 국제공항에 마련된 일회용컵 회수함의 모습. 사용한 일회용컵을 회수함에 반납하면 보증금 3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제주=이민경 기자
일회용컵 수거함을 찾기 위해 카페 3곳을 방문했고 20분이 걸렸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자원순환보증금 앱’을 설치하고 회원 가입해 계좌를 등록하는 데는 10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컵에 붙은 바코드 스티커를 수거함 앞 기기에 인식하고 컵 반납을 완료하기까지 총 40분이라는 시간을 써야만 했다. 그렇게 돌려받은 금액은 고작 ‘300원’이었다.

보증금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기자를 보던 카페 사장은 “손님 입장에선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라며 “컵에 부착된 바코드 스티커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기기가 컵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컵에 묻은 물 때문에 바코드 스티커가 망가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히 보관하는 노력까지 필요한 것이다.

제주도는 2020년 50.8%인 폐플라스틱 소각·매립률을 2040년까지 제로(0%)화하는 등 플라스틱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제로’(0)화하겠다는 내용의 ‘2040 플라스틱 제로 제주’ 정책을 지난해 9월 발표했다. 1년 넘게 세종특별자치시와 함께 전국 최초로 시행 중인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카페 등에서 일회용컵을 사용할 경우 300원의 보증금을 내고 반납할 때 돌려받는 제도다.
국내 플라스틱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에서 발생한 일상 폐기물 중 분리 배출된 폐합성수지류(플라스틱) 규모는 2019년 131만t에서 2021년 279만t으로 증가했다. 무게가 14g 정도인 500㎖짜리 빈 플라스틱 생수병으로 추산하자면 2021년 한 해에만 약 2000억개의 생수병이 버려진 셈이다.
가볍고 사용 간편한 플라스틱은 의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에 파고들었지만, 폐플라스틱 양 또한 증가해 환경과 인간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 플라스틱 감축 우등생으로 꼽히는 제주특별자치도를 찾았다.
지난 2023년 12월 11일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제주삼다수 공장에서 무(無)라벨·무색캡·무색병 등 이른바 ‘3무 생수병’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이동 중이다. 제주삼다수 제공
◆‘3無 생수병’ 생산… 섬유 등으로 재사용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제주도개발공사 제주삼다수공장. 지난달 11일 찾은 공장 생산라인 컨베이어벨트 위로 생수병들이 줄지어 나온다. 생수병들은 라벨이 없고 뚜껑과 병에는 색깔을 넣지 않은, 이른바 ‘3무(無) 생수병’이다. 무색캡(뚜껑)과 무색병은 시판되는 다른 생수병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하지만 무라벨은 그렇지 않다. 생산 제품을 눈에 띄게 포장해 소비자 눈길을 끌어야 하는 게 상품의 속성이어서다.

무라벨 생수는 플라스틱 사용량 절감을 위한 선택이었다. 제주삼다수는 무라벨 생수병인 ‘제주삼다수 그린’을 2021년 처음 생산했다. 현재는 전체 생산량의 35%가 무라벨이다. 제주삼다수 측은 무라벨 생수병 생산량을 점차 늘려 2025년에는 전체의 50%, 2026년에는 10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제주삼다수 관계자는 “처음에는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을 잘 알아보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플라스틱 절감을 위해 도입했다”며 “요새는 라벨을 떼어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줄어 오히려 분리 배출하기 편하다는 고객도 많다”고 전했다.

매출량이 늘수록 생산에 필요한 플라스틱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 모순된 상황 타개를 위한 제주삼다수의 해결책은 플라스틱병 생산량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이다. 제주삼다수는 국내 생수업체로는 처음 ‘재활용 페트’(CR-PET)를 도입했다. CR-PET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친환경 소재로 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 용기로 사용할 수 있다.

제주도는 배출된 플라스틱병을 섬유 등 새로운 소재로 재사용하기도 한다. 제주삼다수공장 직원들이 입고 있는 남색 작업복은 제주 도내에서 운영 중인 ‘페트병 자동수거보상기’에서 수거한 투명 페트병을 주된 소재로 삼아 업사이클링(재사용)한 제품이다.

제주삼다수 관계자는 “3무 생수병, 섬유 업사이클링 등의 방법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70t이나 줄였다”며 “제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러한 플라스틱 저감 노력을 이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삼다수 공장에서 투명 페트병을 섬유소재로 재사용한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제주삼다수 제공
◆환경 우등생 제주에 생긴 미세한 ‘균열’

“환경부 (일회용품 규제 유예) 발표가 나오고 규제가 너무 애매해 보름 전부터 보증금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11일 제주시청 인근의 한 포장 전문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은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이탈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친환경 제주’를 대표하는 제도다. 도내 업체의 높은 참여율과 컵 회수율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모범이 되고 있기도 하다. 제주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시행 초반 57.6%에 불과했던 일회용품 보증금 참여 업체는 2023년 9월 기준 96.8%까지 치솟았다. 주간 일회용품 회수량이 90%가 넘을 정도로 제주에선 일회용품 보증금제가 거의 안착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환경부가 지난해 11월7일 일회용품 규제 유예를 발표하자 환경 우등생 제주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규제 유예 발표 약 4일 후 도내 커피 판매 매장 등의 일회용컵 반환율이 80.8%로 10% 가까이 하락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형평성’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됐다. 일회용컵 보증금제에서 이탈한 제주 시내 한 업체 사장은 “나와 같이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들이 모인 단체방에서 다 같이 보증금제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과태료를 내라고 하면 그냥 내고 말겠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 중인 또 다른 업주는 “아직 일회용품 보증금제를 하고 있긴 한데 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며 “주변에서 오락가락한 규제로 ‘제주가 만만하냐’는 불만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제주도의회는 지난달 12일 중앙정부의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철회 방침에 반대하며 ‘일회용컵 보증금제 형평성 해소를 위한 전국 시행 촉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도의회는 “제주는 제도 정착 단계에 이르렀지만 정부의 시행 철회 논란으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회용 컵 보증금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선 시행 초기부터 지적되었던 형평성 문제를 우선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도내 매장들의 혼란 해소와 시·도 간 형평성 있는 정책 추진을 요구했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한 종이빨대 제조업체 대표 등이 정부의 플라스틱 빨대 규제 무기한 연기에 항의하며 종이빨대 완제품을 바닥에 쏟고 있다. 뉴시스
◆“자발적 참여론 한계… 구체적 대안 내놔야”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일회용품 관리 정책을 ‘과태료 부과’가 아닌 ‘자발적 참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일회용품 사용 감축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과태료 없이도 관리가 가능하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오락가락한 정책으로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 줄이기에 동참하려 했던 시민들도 오히려 참여를 꺼리면서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환경부 정책 변화가 나온 지 약 2개월이 지났지만, 현장 혼란은 여전하다. 규제에 맞춰 종이 빨대와 다회용컵 생산·판매 준비를 하던 업체는 존폐 위기에 몰렸고 길거리에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회용품 관련 환경부의 규제 완화로 현장 혼란이 가중되고 플라스틱 감축 의지에 대한 의문이 쏟아지자 지방자치단체·시민이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일회용품 감축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2022년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이 무산된 이후 보증금제를 자율적으로 실시하는 매장에 다회용컵 세척, 물류 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울산시는 지난달 시청 인근 카페 13개소와 함께 ‘순환 컵 서비스’를 도입했다. 카페 영업주들이 스스로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고안한 방법으로 고객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음료를 주문하면 된다. 앱 가입 시 지급하는 보증금으로 다회용컵을 빌리고 사용한 컵을 반납한 뒤 보증금을 반환받는 식이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뉴시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앙정부가 일회용품 사용 절감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20년 동안 텀블러 사용 캠페인을 (정부에서) 열심히 했지만, 여전히 텀블러 사용 비율이 매우 낮다”며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문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존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규제를 통해 전체 시스템을 만들어야 국민의 참여가 더 활성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발표한 정책을 곧바로 뒤집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규제 완화 결과를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 소장은 “환경부 발표 이후 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모니터링해 그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규제 유예 이후) 열심히 일회용품 감축을 위해 노력하는 제주도에서도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폐지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등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며 “종이컵 같은 경우에는 법 개정을 통해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는데 이 부분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주=이민경 기자 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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