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브리핑] "3, 2, 1"…'복불복' 같던 베이징의 카운트다운
백지시위 등 경험한 중국, 대규모 인파 운집 행사에 경계감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매년 12월 31일 자정, 전세계 곳곳에서는 한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한 해를 기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린다.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된 기자 역시 수일전부터 '카운트다운'가 열릴만한 장소 물색에 나섰다. 샤오훙슈, 웨이보 등 중국 주요 SNS에는 베이징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릴만한 장소를 질문하거나, 지난해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렸던 장소에 대한 정보 교환이 이뤄졌다.
그렇게 취합한 정보로 베이징 주요 상업지역 중 하나인 궈마오 인근 대형 쇼핑몰인 스마오톈제에서 새해를 맞이하기로 결정했다.
당국이나 쇼핑몰 측에서 공식 카운트다운 행사를 개최한다고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쇼핑몰 외부에는 길이 250미터, 폭 30미터의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초대형 LED 스크린이 있는 데다 게임사에서 주최하는 대형 행사가 같이 있어 새해 느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31일 밤 11시 40분께 도착한 쇼핑몰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카운트다운을 하기 위해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이 곳을 찾은 시민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대충 어림잡아도 1천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 머리 위에 자리한 대형 스크린을 주시했다.
0시에 가까워질수록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시민들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만연했으나, 전광판에는 카운트다운과 관련한 어떠한 안내도 없었다. 그 대신 안전요원들이 밀집된 시민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확성기를 통해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만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몰렸다는 것은 카운트다운을 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기대감을 보였지만 일각에선 "카운트다운 행사를 안할지도 모르겠다"는 실망감도 감지됐다.
카운트다운 행사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 일부 시민들은 11시 57분께부터 자신의 스마트폰을 켜 0시에 맞춰 육성으로 '카운트다운'을 할 준비를 했다.
다행인 것은 0시를 약 30여초 앞두고 대형 스크린이 카운트다운 모드로 전환돼 모두가 그 자리에서 '신니엔콰이러(新年快樂)'를 외치며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는 점이다. 게임사 행사가 동시에 열리지 않았다면 카운트다운 행사는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날 베이징 주요 명소에서는 카운트다운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렸다. 외국인 밀집지역인 산리툰의 한 쇼핑몰에는 저녁부터 많은 인파가 몰렸으며 저녁 부터는 밴드 공연도 어우러져 연말 분위기가 고조됐다.
그러나 밤 10시30분께 안내 방송에서 '오늘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는 열리지 않는다'메시지가 나왔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이 쇼핑몰에선 대형 전광판을 통한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렸었다.
일부 시민들은 발길을 돌렸으나 쇼핑몰을 꽉 채운 많은 시민들은 자신의 시계와 주변 사람들에 의존해 카운트다운 행사를 치렀다. 샤오훙슈 등에선 해당 카운트다운을 두고 '영문 모를' 또는 '바람맞은' 카운트다운이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영문 모를' 카운트다운 행사를 치른 곳은 이 곳 뿐만이 아니다. SNS에는 카운트다운을 앞두고 일부 쇼핑몰 대형 전광판이 갑자기 꺼졌다거나, 모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숫자를 외치며 새해를 보냈다는 영상과 글이 다수 올라왔다.
어쩌면 이와 같은 '영문 모를'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는 예견됐는지도 모른다.
이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중국 광저우, 청두, 난징 등 일부 지역에서는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맞이해 공식적으로 대규모 활동을 개최하지 않는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물론 중국 전역의 카운트다운 행사가 금지된 것은 아니다. 베이징에서도 외곽 스징산의 옛 철강단지를 개조한 셔우강위안에서 2020년 이후 3년만에 공식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린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 당국이 시민들이 모이는 대규모 활동에 경계감을 보이는 것은 가뜩이나 경제가 부진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대거 몰릴 경우 '백지시위'와 같은 반정부 움직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 이브 등과 같은 서양식 기념일을 배척하는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많은 젊은이들은 지난 3년간 제로코로나 방역 통제에 막혀 제대로된 '새해 기분'을 내지 못했던 한을 풀 듯 거리로 나왔으나 여러 이유로 많은이들이 기대했던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던 카운트다운 행사는 만끽하지 못했다. 그러나 희망찬 한 해를 맞이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발걸음까지는 돌리지 못했다.
ejju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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