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2024]② 1800만 개발자에 인터넷 이용 1등… 웹3.0 신흥국 발돋움한 인도

벵갈루루(인도)=김태호 기자 2024. 1. 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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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블록체인 개발자 6년 새 200% 증가
3000만명이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 경험
정부도 규제 강도 풀며 산업 진흥 꾀해
그래픽=정서희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화 ‘세 얼간이’는 인도의 명문 공과대학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담은 코미디물이다.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대학은 가상의 학교지만 실제 촬영이 이뤄진 장소는 인도 공과대학원(IIM) 벵갈루루 캠퍼스다. 벵갈루루는 인도 카르나타카주에 있는 남부 도시로 정보기술(IT) 산업체가 집약해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지난달 6일(현지시각) 방문한 벵갈루루에선 ‘세 얼간이’에 나올 법한 유쾌한 성격의 인도 공돌이들이 한데 모여 교류의 장을 만들고 있었다.

이날 벵갈루루에선 블록체인·웹3.0 전문 벤처캐피털(VC) 해시드의 자회사 해시드이머전트가 개최한 인디아블록체인위크(IBW) 2023 본행사가 열렸다. IBW 2023 첫날에만 1342명의 참가자가 행사장에 운집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달리 배낭을 멘 개발자들이 많아 블록체인과 웹3.0을 향한 인도 개발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인도인 개발자 에이제이 포트니스는 “웹2.0과 웹3.0의 차이점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행사에 참여했다”며 “오늘 행사에서 많은 웹3.0 관계자들과 교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블록체인·웹3.0 잠재력 막강한 인도

인도는 떠오르는 블록체인 산업 신흥국이다. 수천만 개발자 군단을 보유한 IT 강국으로서 블록체인 산업 발전의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해시드이머전트에 따르면 인도 출신 개발자는 1760만명에 육박하며 전 세계 개발자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매년 인도에서 새로 배출되는 개발자 수도 150만명에 달한다.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중국 출신 개발자는 1150만명이고 미국 출신 개발자가 550만명으로 집계돼 인도 출신 개발자 수가 월등히 많다. 개발자 대군을 앞세운 인도는 2022년 기준 108개 유니콘 기업을 길러내는 등 IT산업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기존 인도 개발자들이 웹2.0 분야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이들 사이에서 블록체인 열풍이 불고 있다. 현재 인도인 블록체인 개발자는 1400명 정도로 추산되며 지난 6년 동안 200% 증가했다. 아직은 미국(6800명)에 비해 머릿수가 적지만 가파른 증가세를 바탕으로 글로벌 블록체인 산업에서 인도의 역할이 커질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탁근 해시드이머전트 대표는 “5년 후인 2029년쯤에는 전 세계 블록체인 개발자의 20% 이상이 인도 출신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픽=정서희

낮은 데이터 이용료를 바탕으로 인터넷 사용이 활발하다는 생활상도 인도의 웹3.0 대중화에 유리한 환경으로 평가받는다. 인도인이 하루에 소셜미디어 및 온라인 동영상 시청에 쓰는 시간은 글로벌 평균을 웃돈다. 아울러 매년 895억건의 간편 결제가 이뤄지는 등 온라인 경제에 친숙하다는 사실도 블록체인 기반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보급의 문턱을 낮추는 요소다. 해시드오픈리서치에 따르면 이미 3000만명의 인도인이 중앙화 가상자산 거래소(CEX) 이용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폴리곤 등 유력 블록체인 인도서 출시

비옥한 블록체인 산업 토양 위에서 유능한 인도 청년들은 블록체인 프로젝트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 결과 폴리곤, 샤디움 등 유명 블록체인 메인넷과 팔콘X와 같은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가 인도를 거점으로 세워졌다. 특히 폴리곤은 메인넷에 예치된 총자산(TVL)이 9억2574만달러(약 1조1924억원)에 달해 전 세계 메인넷 중 8위에 해당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국내에서는 SK텔레콤과 넥슨 등의 대기업이 폴리곤과 협업하고 있다.

성공 사례가 속속 나오자 글로벌 투자시장도 인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제2, 제3의 폴리곤을 찾아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산딥 네일왈 폴리곤 공동창업자는 지난달 7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폴리곤 창업 때만 하더라도 글로벌 VC에 거액의 투자를 받는 게 어려웠지만 폴리곤의 성공 이후 전 세계 투자자들이 제2의 폴리곤을 찾아 유망한 기업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7일(현지시각) 인도 카르나타카주 벵갈루루 쉐라톤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인디아블록체인위크(IBW) 2023 행사장에서 부스 관계자와 참가자가 대화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풍부한 잠재력을 갖춘 인도지만 그간 인도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자산을 구분하고 가상자산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적용해 왔다. 일례로 현재 인도 정부는 가상자산 거래 수익에 대해 30%의 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인도 정부가 가상자산에 강도 높은 규제를 적용하는 이유는 자본 이탈 등 금융 불안정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바짝 조인 규제 속에서 인도 청년들은 야심 찬 창업의 꿈을 접기도 했다. 디파이 기업 플린트를 운영하는 안슈 아그라왈 대표는 “가상자산 기반 인터넷 은행을 만들어 6개월 만에 이용자 20만명을 모을 정도로 초반 흥행에 성공했으나 무거운 과세와 라이선스 미발급 문제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사업을 접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다만 규제 일변도였던 인도 정부의 태도도 점차 바뀌고 있다. 가상자산에 대해서도 정돈된 규제 아래 산업을 육성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자얀트 신하 인도 의회 재무상임위원장은 “인도는 이미 가상자산 과세와 신고 요건 등 단계적 규제를 시행했으며 다음 단계는 국제 표준에 맞춰 가상자산 관련 법률의 조화를 맞추는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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