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시대' 연 신세계 강남…10년간 한국인 소비 변화 들여다보니
생활 수준 높아지면서 일반 패션 매출 비중 줄고 명품 늘어나
식품 매출은 줄어들고 생활 관련 매출은 증가…브랜드 수도 확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국내 최초로 연간 매출 3조원을 돌파했다. 명품 브랜드를 대거 확보함으로써 VIP 고객층을 두껍게 하고, 점포 리뉴얼을 통해 2030 고객층을 확장한 결과다.
신세계 강남점은 2000년 개점했다. 당시만 해도 실적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같은 상권에서 4개월 앞서 오픈한 롯데백화점 강남점이 강남 상권의 신규 수요를 흡수하고 있었으며, 상류층 소비자들은 여전히 현대백화점, 갤러리아 백화점 등을 선호하는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세계 강남점은 오픈 초반 같은 상권 경쟁사의 60~70% 수준에 그치는 매출을 기록하는 등 고전했다.
이때 신세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점포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최고급 명품 백화점을 지향하는 만큼 단기 매출보다는 VIP 확대 등에 집중하겠다는 얘기였다. 신세계의 전략대로 강남점은 13년 만에 3조를 기록하며 매출 1등 점포가 됐다.
이 과정에서 달라진 것은 백화점 매출 순위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소득(GNI)이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졌고, 이로 인해 백화점에서도 고객들의 소비 패턴이 달라졌다. 지난 10년간 한국인들의 소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신세계 강남점의 매출 변화로 살펴봤다.
생활 수준 높아지자 ‘명품 매출’ 늘었다
매출 1조원 수준이었던 2010년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매출 구성비’다. 의식주 가운데 ‘의’는 일반 패션에서 명품 중심으로, ‘식’보다는 ‘주’로 소비 성향이 이동했다.
2010년 강남점 매출 가운데 패션이 39.7%로 가장 높았다. 식품(18.7%), 코스메틱·잡화(17.0%)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2023년 매출의 43.9%는 해외패션(명품)에서 발생했다. 구매력 있는 VIP가 늘어난 영향이다. 신세계 강남점 매출 가운데 절반(49.9%)은 VIP로부터 나왔다. 이는 신세계 다른 점포 평균(35.3%) 대비 월등히 높다. VIP는 연간 구매액이 3000만원이 넘는 고객을 말한다.
신세계는 명품 라인업 차별화를 통해 VIP를 확보했다. 강남점에는 에르메스(4개), 루이비통(3개), 샤넬(4개) 등 이른바 3대 명품인 ‘에·루·샤’를 비롯해 구찌(6개), 디올(4개) 등 럭셔리 브랜드들이 각각 패션·화장품·주얼리 등 카테고리별 세분화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0년 매출 1위였던 패션은 22.0% 비중으로 매출 2위로 내려왔다. 코스메틱(14.1%), 라이프스타일(10.1%) 등이 주요 카테고리로 올랐다. 식품 비중은 2010년 18.7%에서 올해 8.1%로 급감했다.
신세계백화점은 경제성장과 함께 한국인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1인당 GDP는 2010년 2만3083달러에서 2022년 3만2236달러로 성장했다.
백화점의 매출단가도 올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하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전체 백화점의 1인당 매출단가는 2010년 7만4987원에서 2023년 11월 12만5649원으로 증가했다.
고객 취향 ‘세분화’…전문 브랜드 관심 커져
10년간 고객의 취향도 세분화됐다. 생활 수준이 높아진 고객들이 여러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취향을 찾기 시작했고, 대중적인 국내 브랜드가 아닌 해외 전문 브랜드 등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매년 소비 트렌드를 예측해 온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역시 2020년부터 소비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소비자 취향이 세분화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100명이 있으면 100개의 시장이 있다’는 말도 과거가 됐고, 최근에는 100명의 고객이 있다면 시장은 1000개까지 확대됐다고 전했다. 현대 소비자들은 일관된 구매성향을 유지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취향을 바꾼다는 의미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유통·소비재산업에서는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가 화두”라며 “밀레니얼과 Z세대와 같이 ‘나를 위한’ 소비를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할 때는 기존의 매스 마케팅 방식으로는 의식주 브랜드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니즈를 파악하고 소비자 반응에 후행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며 “소비자 개인이 특정 상품이 필요하다고 인지하기 전에 해당 소비자에게 조만간 필요해질 상품이 무엇인지 선제적으로 파악하는 기업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세계백화점도 이 같은 수요를 잡기 위해 브랜드를 늘리기 시작했다. 강남점의 명품 브랜드는 2010년 58개(연간 매출 1억원 이상 브랜드 기준)에서 올해 126개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침대 브랜드는 5개에서 9개로 확대됐다.
또 국내 가구는 10개에서 1개(까사미아)로 줄어든 대신 수입가구는 4개에서 18개로 늘렸다. 생활가전은 8개에서 27개로 증가했다. 대형가전은 19개에서 20개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리빙 카테고리에서 해외 브랜드가 많아졌다. 고객들의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해외 유명 수입 가구에 대한 고객 니즈가 증가했고, 전문 브랜드 소비도 활발해졌다. 리빙 매장은 에이스, 나뚜찌소파, 시몬스침대 등에 그쳤던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나 USM(모듈가구), 허먼밀러, 해스텐스(침대), 에드라(수입가구), 로쉐보보아(수입가구), 스트레스리스(리클라이너) 등이 관심을 받고 있다.
생활가전 카테고리도 세분화됐다. 2010년 생활가전 브랜드는 필립스, 테팔, 브라운, B&O(음향), BOSE(음향) 등 8개에 불과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다이슨, 네스프레소, 로보락, 드리미, 발뮤다, 골드문트(음향), 제네바사운드(음향) 등 2010년과 비교해 장르가 세분화되고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했다.
강남점은 국내에 없던 테이블웨어, 인테리어 소품 등을 수입하면서 취향 세분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016년 에르메스의 테이블웨어(그릇, 도자기 등)와 에르메스 그룹의 크리스털 브랜드인 ‘생루이’를 직접 수입했다. 강남점에는 ‘에르메스메종’, ‘생루이’, ‘피숀’ 매장이 모두 입점한 상태다.
매출 3조 백화점, 해외서도 몇 없다
단일 점포에서 매출 3조원을 기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계 유수의 백화점 중에서도 영국 해러즈 런던(2022년 약 3조 6400억원), 일본 이세탄 신주쿠점(2022년 약 3조1600억원) 등 소수 점포만 기록한 드문 성적이다.
백화점 하루 영업시간 10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1초에 23만원씩 판매한 셈이며, 강남점의 2023년 영업면적 3.3㎡(평)당 매출은 1억800만원에 달한다.
신세계백화점의 매출 상승은 2024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2023년 하반기부터 약 3000세대의 ‘원베일리’, 약 6700세대의 개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등 배후상권 내 주요 아파트 입주가 시작돼 고가의 리빙, 홈스타일링 제품군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