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만 대선 큰 변수… “韓기업, 對중국 전략 개편 필요”

베이징=이윤정 특파원 2024. 1.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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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올해 미·중 갈등 최소 현상 유지” 전망
대만·美 대선에 운신 폭 제한… 국내 정치 집중
”中 세계 진출 대비해 핵심 소재·부품 장악해야”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의 발목을 잡아 온 미·중 갈등이 올해만큼은 확전을 자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재설정할 변수인 대만 총통 선거(대선)와 미국 대선이 올해 중 예정돼 있어 각자 국내 정치에 집중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돌발 변수는 최소한에 그칠 것으로 예견되는 만큼, 이번 기회에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은 고속 성장 시대를 끝낸 중국 경제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그래픽=손민균

◇ 미·중 갈등 극대화한 2023년… 中 진출 韓 기업들, 실적 악영향

지난 2023년은 미·중 갈등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해였다. 2월 미국에서 중국의 스파이 풍선이 발견되면서 양국 관계가 급격히 경색됐다. 미국 내에서 중국 바이트댄스의 ‘틱톡’ 금지 열풍이 거세게 부는 가운데 중국은 7월 미국을 겨냥, 반도체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양국은 고위급 소통을 이어갔고, 결국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두 정상이 관계 안정화에 합의했지만, 이달 들어 또다시 갈등이 재점화됐다. 미국이 중국산 저가 범용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내자 중국이 첨단산업 필수재인 희토류의 가공 기술 수출을 금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의 경영 불확실성도 극대화됐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508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국 진출 기업 경영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대외 환경 중 가장 민감한 요인으로 ‘미·중 갈등’이 ‘한반도 이슈’와 함께 공동 1위(31.5%)를 차지했다. 1년 전 조사 당시 20.0%에서 11.5%포인트 급증한 것이다.

실제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은 지난해 내내 미·중 갈등에 끼어 살얼음판을 걸었다. 양국이 집중적으로 마찰을 빚고 있는 반도체 분야가 대표적이다. 중국이 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대응해 지난해 5월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를 금지하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사이익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미국 하원은 “마이크론이 빠진 자리를 한국이 채워서는 안 된다”며 압박해 우리 기업들은 숨을 죽여야 했다. 화웨이가 지난 8월 미국 제재를 뚫고 출시한 5G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에 SK하이닉스 메모리칩이 탑재된 것이 알려지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우리 거래선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미·중 갈등은 중국 경제 회복세를 주저앉히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이같은 경기 침체는 중국 진출 한국 기업 실적에 악영향이다. 한 재중 경제인은 “지난해 중국 경제 성장률이 5%를 넘는다고 하지만, 체감되지는 않는다”라며 “업황이 좋지 않아 생산 규모를 계속 줄여야 했던 만큼 연간 실적도 위축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실제 산업연구원이 중국 현지에 진출해 있는 기업 23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3분기 매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91로, 7분기 연속 긍정·부정 기준치인 100을 하회했다. 4분기 전망치 역시 95로 매출 부진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로이터 연합뉴스

◇ 美, 대선 앞두고 中과 갈등 악화 기피… 中 성장 집중 여력↑

하지만 올해는 미·중 갈등이 현 수준에서 적어도 심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오는 13일 예정돼 있는 대만 총통 선거가 양국 관계의 첫 번째 분수령으로 꼽히는데, 이 역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독립 성향) 민진당이 정권을 유지할 경우 미·중 관계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고, (친중국 성향) 국민당이 집권할 경우 중국이 미국을 대할 때 보다 자신감 있게 나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민당이 집권한다 해도)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을 키우기보다 대중국 제재 해제 등 미·중 관계 정상화를 강하게 요구하는 선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역시 미·중 갈등을 억제하는 요인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관계를 악화시켜 경제적 타격을 받을 경우, 이는 대선에 치명적”이라며 “지난해 미국이 고위급 인사들을 베이징에 수차례 보내 중국과의 소통에 힘쓴 것도 대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소장은 “미국과 중국은 여전히 추가적인 첨단기술 제재·자원 수출 통제 카드를 쥐고 있지만, 미국 대선 전까지 무리해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내부에서도 올해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양국 간 갈등이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왕쥔셩 중국사회과학원 아태글로벌전략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사무소가 개최한 한·중경제포럼에서 “(지난해 11월) 미·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단기간 내 양국 관계는 안정을 유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단기간 내’는 미국 대선 전까지를 뜻한다.

미국과의 갈등이 적어도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올해 중국 정부는 경제 회복에 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재중 경제인은 “오는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의회) 전후로 부양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하반기쯤 중국 경제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사업 전략을 수립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중 경제인 역시 “성장률 자체는 지난해보다 높게 나온다고 보기 어렵지만, 위축됐던 경제 심리는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고려해 사업 목표치도 지난해보다 높게 잡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 “中 성장 단계 맞춰 새 사업 고민 필요”

수년간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의 최대 리스크였던 미·중 갈등이 당분간 안정적으로 관리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때 전략 재편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먼저 중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전 소장은 “중국 산업계의 경쟁력이 향상되면서 이들이 중국 시장 밖으로 나올 때가 됐다”며 “한국이 일본에서 반도체와 조선, 기계를 가져오면서도 관련 소재·부품·장비는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는 것처럼, 우리도 중국이 세계 시장에 진출할 때 꼭 필요한 파트너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 경제가 고속 성장 시대를 끝낸 만큼, 새로운 대중국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경제가 안정적 성장 국면에 접어든 점을 고려해 우리 기업은 새로우면서도 장기적인 사업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중국이 각종 첨단 산업에서 자립자강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니 구조적이고 정책적인 방향과 관련된 기회를 차분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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