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길은 내야" 양평道 공회전에 속타는 주민들…사업 향방은?
"조용히 있어야"…양평주민들 사업 재개 기대
총선 앞두고 양평고속도로 이슈 재점화 가능성도
국토부 "갈등 해소로 재개"vs경기도 "예타안이 적절"
전투, 휴전 반복 속에서 사업 재개는 기약 없어
"이제는 종점을 어디로 해야 하냐는 주제로 싸우는 것도 지쳤어요. 하루 빨리 서울-양평고속도로가 개통되는 게 중요하죠."
1일 오전 서울-양평 고속도로 대안노선의 종점 인근에 있는 양평군 강상면 병산리 주택가.
윤석열 대통령 처가 특혜의혹이 제기된 지난해 중순 무렵부터 주민들과 보수 시민단체가 내걸었던 대안노선 추진 촉구 관련 현수막은 더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병산리 주민 김모(56)씨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이슈가 이어지는 게 싫었는지 군청에서 현수막을 전부 제거했다"며 "주민들도 가만히 있어야 사업이 하루빨리 재개된다고 판단해 조용히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양평군청에는 예타 노선과 대안 노선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군청 앞 인도에 설치된 천막에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국정조사, 특검. 윤석열 탁핵'이라고 적힌 현수막과 천막 농성 기간을 표시한 안내판이 놓여 있었다.
이 곳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최재관 전 여주시양평군 지역위원장은 "대안노선으로 사업을 추진하려고 군에서 쉬쉬하고 있지만, 하루 빨리 의혹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천막 농성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金여사 일가 의혹에 양평道 '공회전', 주민들 "정쟁 희생양"
2조 원 규모의 국가 예산이 드는 서울-양평고속도로가 윤 대통령 처가 특혜의혹에 발목 잡히면서 십수 년간 사업을 염원해오던 양평지역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총선 국면에 정쟁 재점화로 공회전이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반면, 국토교통부는 신임 장관 취임을 계기로 사업 재개 의지를 내비치며 갈등을 풀 실마리를 찾는 데 고심 중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민주당 소속인 김동연 도지사가 이끄는 경기도가 기존 예타 노선안에 힘을 싣는 본격 행보를 보이면서, 사업 추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양평고속도로는 경기 동부권 일부 구간의 극심한 교통정체 해소를 위한 국책사업이지만, 김건희 여사 의혹으로 국민적 이목이 쏠리면서 답보 상태다.
양평군은 두물머리 등을 품은 경기도의 대표 관광지로, 휴일마다 수도권 일대에서 몰려드는 차량들로 주변 국도는 마치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인근을 지나는 서울-춘천고속도로가 있지만, 이 역시 양평 부근 전후로는 상습정체 구간으로 악명이 높다.
서울과 직결되는 양평고속도로가 국가예산으로 첫 단추를 꿴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런 광역화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게 예비타당성조사(예타)에도 반영된 사업의 주요 목적이다.
양평고속도로는 지난 2017년 국토부의 고속도로 건설 5개년 계획에 반영된 뒤 2021년 기획재정부 예타를 통과하며 본격 시동이 걸렸지만, 2년쯤 흐른 지난해 여름 급제동에 걸렸다. 지난해 5월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 결정내용이 공개되는 과정에, 양서면 종점의 예타안이 아닌 강상면 종점안이 등장한 배경을 놓고 논란이 일면서다.
본사업타당성조사(본타)로 넘어가던 중 예타안의 종점을 바꾼 위치가 김 여사 일가 소유의 땅들과 인접한 사실이 알려지자 '땅값을 올리려는 것 아니냐'는 특혜의혹이 불거진 것.
이에 당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김 여사를 악마로 만들기 위한 민주당의 가짜뉴스 프레임을 말릴 방법이 없다"며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고, 사업은 좌초 위기를 맞았다.
이후 원 장관의 국토부와 국민의힘 소속 전진선 양평군수가 이끄는 양평군은 범군민 서명운동과 반대 여론 차단하기 등 여론전을 펼치며 변경안의 당위성을 앞세우기 위한 전선을 넓혔다.
이때 관변단체에 '중복서명도 가능하다'는 안내를 하고 강하IC를 포함한 사업 추진, 즉 김 여사 의혹이 촉발된 변경안을 전제로 서명을 유도하는 등 '여론 왜곡' 논란이 일기도 했다.
더욱이 양평고속도로 '일타 강사'를 자처한 원 장관은 투명한 사업 추진을 내걸어 국토부 홈페이지에 사업문서들을 공개하는가 하면, 대안노선(변경안)과 예타노선의 경제성(B/C) 비교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객관적 근거에 기반한 사업 재개를 자신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일부 자료의 누락과 종점 변경안을 내놓은 본타 용역사가 분석한 결과라는 사유로 "믿을 수 없다"는 야권의 재반격에 부딪혀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한 실정이다.
결국 사업은 '총사업비 협의'와 '설계'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본타 과정에서 멈춰버린 상황. 애면글면 고속도로 신설을 기대해 온 주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양평주민 박모(48)씨는 "종점을 두고 싸우는 건 정치권과 강상면, 양서면 주민들"이라며 "일반 양평 주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양평고속도로가 개통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의혹 3대 키워드 '시점·주체·목적'…'스모킹건'은 어디에
양평고속도로를 둘러싼 의혹의 키워드는 노선 변경 절차와 관련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종점 변경의 '시점'이다. 본타 용역 착수 50일 만에 발주처인 국토부와의 협의에서 과업지시서와 예타에서도 거론되지 않은 강상면 종점안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예정된 과업일정대로 용역 2개월 차부터 대안노선 검토를 시작했다면, 변경안을 제안하는 데 20일도 채 걸리지 않은 셈이었다.
교통수요와 경제성 분석 등의 공정을 앞두고 노선 대안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거쳐할 시기가 남아 있는데, 한두 차례 현장 점검만으로 종점이 바뀐 새 노선안부터 등장한 데 대해 야당의 의문제기가 계속돼 왔다.
또 노선 변경안이 등장할 무렵이 윤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 기간인 데다, 과거 윤 대통령이 양평군을 관할하는 여주지청장 시절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김선교 당시 양평군수가 국토교통위 국회의원으로서 역할을 했을 가능성과,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같은 당 전진선 군수가 변경안 추진을 내세우고 있는 정황 등도 의문을 더하는 요소로 지목됐다.
다음은 종점 변경 결정의 '주체'다. 현재까지는 업체가 변경안을 먼저 제안해 국토부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돼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허나 이는 통상적이지 않다는 게 야당과 업계 일각의 시각이다. 업체 측이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는 국토부에게 용역을 착수하자마자 노선의 상당 부분을 트는 계획을 먼저 제안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은 애초 사업 '목적'과의 부합성이다. 장래 노선축(춘천고속도로)과의 연결 가능성에 관한 내용으로, 이를 전제로 하면 양서면을 종점으로 한 당초 예타안 노선이 춘천선 수도권 구간 정체 해소 등의 본래 사업 목적에 더욱 부합한다는 게 요지다. 이는 CBS노컷뉴스의 단독보도를 통해 처음 공론화된 관점이다.
실제 본타 용역사 관계자도 국감 답변에서 "장래 노선축을 고려하면 예타안이 더 유리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같은 양평고속도로 의혹들은 모두 사업 추진 절차에 관한 것으로, '현 정권 윗선의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 등에 대한 명확한 증거나 증언 등 '스모킹 건'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야당이 국감에서 양평고속도로로 화포를 집중하고도, 감사 종료 후 사정 당국 등의 후속 조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민주당이 '양평고속도로 특혜의혹 국정조사'를 촉구하며 수일간 국회 앞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데도, 언론에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명품가방과 주가조작 의혹 등에 관한 특검 이슈에 밀린 측면도 있겠지만, 양평고속도로 의혹 제기의 동력이 어느 정도 소진된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여·야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증거 등이 나오지 않는 한 국정조사가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계 안팎의 관측이다.
국민의힘 측은 "민주당이 특검이나 국정조사로 조사하고자 하는 사안은 모두 수사 중이거나 이미 수사한 내용, 또는 단순 의혹에 불과한 것"이라며 "민주당이 특검과 국조를 강행하려는 것은 극한 정쟁을 유발해 정치적 이득을 얻겠다는 목적밖에 없다"고 맞서고 있다.
정쟁 재점화 우려↑…"대통령 처가 리스크 '불씨' 중 하나"
하지만 새해 총선이 있는 만큼, 본선 무대에서 정권 심판론의 공격 소재로 양평고속도로 의혹이 재점화 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전문가들은 양평고속도로 의혹이 야당의 총선용 공격 소재로 쓰일 것이라면서도, 특검과는 별개의 전략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검으로 정면 승부를, 고속도로 의혹으로 측면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은 고속도로 관련 김 여사 의혹을 여당의 아킬레스건으로 보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것까지 특검을 하자고 덤비면 전선이 너무 확대되기 때문에 특검은 그대로 두고, 고속도로 의혹을 별도로 공격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판단했다.
김성완 시사평론가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인 특검에 넣기보다 국정조사로 밀고가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에 특검과 별건으로 논쟁이 불붙을 가능성이 있다"며 "단 국조를 하더라도 국토부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고, 여당의 정치적 상징성을 지닌 원 장관이 떠난 상태라 의혹 제기 시 야당에게 실익이 떨어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고 풀었다.
정쟁으로 사업이 계속 지연될 경우, 선거에서 지역 표심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향후 사업 향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양평지역의 한 정계 인사는 "한동안 이슈가 뜨거웠을 땐 찬반으로 나뉘면서도 '정쟁의 희생양'이 됐다는 피해의식으로 부정적 여론이 거셌지만, 요샌 다소 관심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라며 "어떤 형태로든 총선에서 고속도로에 관한 '진짜' 지역 민심이 표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토부 "갈등 해소로 재개"…경기도 '원안 추진 근거' 마련 변수
전투와 휴전을 반복 중인 공방전 속에서 어떻게 사업을 풀어갈지는 국토부의 과제다.
현재 국토부는 박상우 신임 국토부 장관 취임을 계기로 거듭 '재개' 의지를 내비치면서, 사업이 다시 탄력을 받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장관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일부 예산이 반영돼 있고, 갈등 해결의 방법론이 결정되면 투명하게 결론을 내야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쟁과 양평지역 내 갈라진 여론 등으로 인한 갈등 해소 방안을 모색함과 동시에, 일부 확정적인 노선 구간부터 순차적으로 사업을 재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정쟁 외에 또 다른 변수도 있다. 노선 지역을 관할하는 경기도의 반격이다. 도는 국토부와 달리, 본래 사업 목적에 맞춰 춘천고속도로와의 연계성을 고려한 자체 타당성조사를 하는 등 검증 절차를 통과한 예타안을 기준으로 한 신속한 사업 추진에 힘을 싣고 있다.
국토부의 사업 방향과 상반된 도의 연구용역 결과가 도출되면, 당위성 등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져 공회전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도로는 연결과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에 양평고속도로가 진화를 하게 되면 이번 도의 연구 자료가 국가도로망 확장 계획에 소중한 근거자료로 쓰일 수 있다"며 "설악 부근의 정체를 해소할 수 있는 도민을 위한 대안이자 양평고속도로 사업 재개를 위한 추가 노선 검토로, 수용 여부는 국토부가 키를 쥐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춘천선과의 연계성 등 장래 노선축 연결 계획은 공식화한 바 없고,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국토부와는 무관한 절차로서 이를 수용하거나 개입할 이유나 의무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양평고속도로 의혹에 관해서는 이미 충분히 해명이 이뤄졌으며, 객관적 근거 자료 등을 토대로 갈등을 풀어가며 정상적으로 사업을 재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연구하는 데 대해 (정부가) 가타부타 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며 "추가 노선 연장 계획이 없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장관도 새로 왔고 갈등 해결 방식 찾아서 심도 있게 국회와 소통하면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라며 "구체적인 갈등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염두에 둔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토부는 내년도 양평고속도로 예산으로 60여억 원 정도를 확보한 상태다. 당초 123억 원을 편성했으나, 노선이 확정되지 않아 구간별 예산 편성을 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지난달 국회 예산안조정에서 절반이 삭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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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준석 기자 lj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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