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 땐 귀여워도 달릴 땐 살벌한 ‘빙판 승부사’
1999년생 토끼띠인 김민선(25)은 계묘년(癸卯年)인 2023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2022-2023시즌 ISU(국제빙상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여자 500m 종목에서 1~5차 대회를 석권, 종합 우승 트로피를 들며 ‘올림픽 2연패(連覇) 레전드’ 이상화(35)의 뒤를 잇는 ‘신(新) 빙속 여제’의 탄생을 알렸다. 이상화가 짧은 순간 폭발적으로 힘을 끌어올리는 근력과 순발력을 앞세워 세계를 제패했다면, 김민선은 탁월한 코너링 기술과 레이스 막판까지 빠른 스피드를 유지하는 지구력을 자랑하며 최강자로 올라섰다.
지난달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만난 김민선은 “어렸을 때부터 ‘제2의 이상화’란 수식어에 단련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여제란 말도 크게 부담스럽진 않다”며 “내 우상인 상화 언니에 이어 그렇게 불리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빙판을 지배한 김민선은 올 시즌엔 다소 부침(浮沈)을 겪고 있다. 2023-2024시즌을 맞아 스케이트화를 바꿔 신고 나왔는데 월드컵 1차 대회 여자 500m 1·2차 레이스에서 5위와 7위로 부진했다.
그는 월드컵 2차 대회에서도 1차 동메달, 2차 은메달로 정상 등극에 실패하자 지난달 3차 대회에선 원래 신던 스케이트화를 다시 착용하고 출전,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이어진 4차 월드컵에서는 1·2차 레이스 금·은메달을 따내며 올 시즌 월드컵에서 3차례 우승한 에린 잭슨(31·미국)의 뒤를 이어 월드컵 랭킹 2위를 달린다.
김민선은 “시즌 초반 새 부츠(스케이트화)에 적응하지 못해 아쉬운 성적이 나왔다”며 “지난 시즌 좋았던 감각을 되찾기 위해 옛 부츠로 돌아오긴 했지만, 다음 시즌엔 새 부츠로 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카본 재질 스케이트화의 수명은 보통 5~6년. 김민선의 스케이트화는 올해로 5년째를 맞아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까지 끌고 가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김민선 소속 팀 의정부시청의 제갈성렬(54) 감독은 “부츠를 바꾼다면 충분한 적응 기간을 거치고 올림픽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다음 시즌 개막과 함께 새 스케이트화를 테스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민선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7위를 하고, 바로 다음 시즌 월드컵 챔피언에 올랐다.
그는 “시기적으로 올림픽이란 큰 무대에 맞춰 기량이 좀 더 일찍 올라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허리 통증으로 막막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 아프지 않은 몸으로 빙판을 누빌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행복하다”고 말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열흘 앞두고 훈련 도중 허리가 아파 주저앉고 말았던 그에게 이후 2년여 시간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다. 뚜렷한 치료 방법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근력 보강에 매달렸고, 결국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힘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허리에 덜 무리가 가도록 스케이팅 기술을 발전시킨 것도 더 큰 꿈을 꾸는 원동력이 됐다.
제갈성렬 감독은 “민선이는 상화와 심장이 닮았다”며 “갖은 부상에도 세계 정상을 지킨 상화처럼 민선이도 선수 생활을 위협한 고질적 허리 통증을 이 악물고 이겨내며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김민선은 “스피드스케이팅은 오롯이 내 힘으로 노력한 결과를 기록이란 숫자로 증명할 수 있어 좋다”며 “빙판을 가를 때 쾌감을 여전히 사랑하고, 아직 달성하지 못한 목표가 많아 여전히 빙판에서 설렌다”고 했다.
일단 그의 눈앞엔 2월 캐나다 세계선수권이 있다. 작년엔 월드컵 5연속 우승 쾌거를 달성하고도 시즌 막판 체력이 달려 4위에 그쳤다. 생애 첫 세계선수권 우승을 이룬 다음 2026년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쉼 없이 전진한다는 것이 올해의 계획.
웃으면 ‘반달 눈’이 되는 귀여운 외모의 그는 빙판에 서면 눈빛이 돌변하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다.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선수치고 키(166㎝)가 작은 그는 “어떤 분야가 됐든 자신이 약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작은 체구에도 서양 선수들과 당당히 겨루는 저를 보고 힘을 얻어 새해엔 더 씩씩해지셨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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