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이공계 대학 ‘5년제’ 되나
올해 중3이 되는 학생이 치르는 2028학년도 수능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같은 시험을 본다. 문·이과 구분 없이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를 모두 응시하고, 수학은 ‘미적분’과 ‘기하’ 선택과목이 없어지고 현재 문과 수학 수준의 범위로 줄어든다. 교육부는 수능 과목을 단순화해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가 생기는 것을 막고, 다양한 과목을 배운 융합형 인재를 기르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주 발표된 대입 개편안을 두고, 수학계뿐 아니라 대학가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한 공과대학 교수는 “앞으론 이공계열도 건축학과처럼 ‘5년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이과 수학이 고등학교 과정에서 빠진다면, 대학에서 1년 정도는 학과 공부에 필요한 수학을 가르쳐야 정상적인 대학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은 국가 핵심 산업인데, 응용기술의 기초인 미적분과 기하 공부를 덜어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응도 많았다. 이공계 교수 대부분이 ‘대학교육 붕괴’까지 거론하는 것을 보면, 지금 상황이 일부 학과의 ‘밥그릇 챙기기’를 위한 걱정만은 아닌 것 같다.
이번 개편안의 주된 목표 중 하나는 사교육비 경감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능의 영향력이 현재처럼 큰 상태로 남아 있는 이상, 시험 범위 줄이기만으론 사교육 억제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기 위해선 ‘대학 간판’의 영향력이 여전하고, 명문대에 입학하려면 결국 누군가보다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는 모든 학생들이 고1 수준의 ‘통합 과목’으로 보게 되는데, 다양한 과목을 배우며 융합적 사고력을 기르기보단 고등학교 3년 내내 수능을 대비한 문제 풀이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공부 범위가 줄어들면 사교육 시장은 “한 문제도 놓쳐선 안 된다”는 학생들의 불안감을 다시 파고들 것이다.
최근의 입시는 제도의 공정성을 높이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정부는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16곳을 대상으로 수능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정시 비율을 40%로 다시 늘렸다. 점수로 당락을 결정하는 정시가 수시보다 공정하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공정을 좇는 과정에서 교육의 수월성은 외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대입에선 수상 실적은 물론 자기소개서∙독서활동 등 학생의 전공 적합성을 확인할 수 있는 평가 요소는 대부분 빠졌다.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기보다 ‘5지선다’로 돌아선 것은 분명한 퇴보다.
그동안 입시 정책은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더는 방향으로 바뀌어 왔지만 ‘입시 지옥’은 사라지지 않았고 사교육비는 오히려 증가 추세다. 이번 개편안 역시 입시 경쟁은 그대로 남고, 대학에선 학생들의 부족한 기초 실력을 메우기 위해 다시 시간과 재원을 들여야 할 우려가 크다. 과연 누구를 위한 개편안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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