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현차우를 찾아라 /서미경
“친구가 오제 강아지를 잃어버렸어요… 도와주세요”
“나 북한서 태어났어” “그랬구나 차우 찾아줘서 고마워”
사실을 밝히면 무서운 일 생길줄 알았는데… 편안했다
두만강을 먼저 건넌 엄마가 강기슭에 없었다. 세찬 물소리를 뚫고 가느다랗게 들리는 내 이름. 나는 또 울다가 깼다. 집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워 밖으로 나왔다. 열두 살이 되었어도 꿈에 두만강만 보이면 발각될까 벌벌 떠는 열 살이 되었다. 골목길을 걷다 보니 두만강 꿈이 조금씩 지워졌다.
툭 투두둑.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가까운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편의점 진열대 맨 아래 칸에서 탄탄면이 눈에 띄었다. 중국에서는 한 입 먹고 뱉었는데 여기서 다시 보니 반가워 잽싸게 집었다. 탄탄면을 들고 일어서다 옆 사람과 부딪쳤다.
“리현옥. 좀 조심해! 컵라면 다 떨어질 뻔했잖아.”
돌아보니 유준이었다. 나도 한마디 쏘아붙이려다 말았다.
“너 때문에 떨어진거니까 니가 정리해.”
내가 말만 하면 유준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중얼중얼 내 말투를 따라했다. 처음 그럴 때는 울컥 눈물이 났다. 나를 앞에 두고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았다. 요즘은 유준이 앞에서 말을 안 하거나 유준이를 피했다. 떨어진 컵라면을 올려놓고 유준이와 반대쪽으로 갔다.
출입문에 달린 종이 세차게 흔들리더니 중국어 통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점점 커졌다.
“강아지 사료 2키로 29,000원. 배변패드 100개가 30,000원. 이번 달 생활비가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곧 화난 목소리가 스피커 폰에서 왕왕 울렸다.
“보라색 혓바닥으로 절뚝이는 다리를 핥는데. 그럼, 못 본 척하냐…….”
무슨 일인지 궁금해 집중해 듣게 되었다.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는데 유준이가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1+1으로 반띵하자니까. 치사하게 못 들은 척하냐.”
유준이가 뭐라 했는지 못 들었다. 유준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들었던 음료를 제자리에 놓고 홱 나가 버렸다.
내가 탄탄면과 음료수를 계산대 위에 내려놓자 편의점 직원이 후다닥 전화를 껐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스피커폰으로 통화했던 거였다.
“3400원입니다.”
방금 전까지 중국어로 통화하던 편의점 직원의 한국어 실력이 제법 능숙했다. 탄탄면 용기에 따뜻한 물을 붓고 편의점 창가에 앉았다. 엄마가 집에 올 때가 거의 됐다. 어두운 창 너머로 엄마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자리를 바꾸는 날이다. 승혜가 내 뒷자리를 뽑았다. 승혜는 나를 슬쩍슬쩍 챙겨줬다. 놀이 방법을 몰라 내가 쭈볏거릴 때도 승혜는 31을 먼저 부르면 지는 거라며 알려줬다. 31은 베스킨로빈슨 아이스크림 놀이였다.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 아뿔사 유준이가 승혜 짝이 되었다.
자리를 옮겨 서랍을 정리했다. 뒤에서 승혜와 유준이가 하는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김승혜. 내가 짝 돼서 싫어? 나도 별로거든. 표정이 왜 그래.”
유준이는 말을 툭툭 내뱉었다.
“그게 아니라. 주말에 나 때문에 강아지를 잃어버려서 그래.”
승혜가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아지를 잃어버려서 아침부터 계속 시무룩했구나. 유준이와 마주치기 싫어서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그랬냐. 어쩌다.”
“할머니가 수술하느라 강아지 데리고 속초에서 내려오셨어.”
승혜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집이 1층이잖아. 학원 가면서 내가 현관문을 덜 닫았나 봐. 엄마가 할머니 입원시키고 집에 오니 현관문은 열려있고 강아지는 없더래. 엊저녁 내내 찾아다녔는데 못 찾았어. 할머니 찾아 나간 거야. 새끼 때부터 할머니가 키우셨거든. 할머니도 수술만 아니면 떼놓지 않을 텐데…….”
“쯧쯧. 좀 조심하지 그랬냐.”
“이미 혼났는데. 유준이 너까지 그럴래.”
“아니 뭐. 전단지는 붙였…….”
승혜가 째려보며 목소리를 높이자 유준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부스럭거리며 승혜가 전단지를 꺼내는 것 같았다. 전단지를 보려고 고개를 돌리다 유준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유준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인상을 썼다. 승혜의 눈꼬리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선생님은 서랍 정리를 했으면 모둠 이름을 정하고 모둠 구호를 연습하라고 했다. 우리 모둠은 3대 1로 ‘5학년 센스만점 티니핑’을 줄여 ‘오센티’로 모둠 이름을 정했다. 유준이가 계속 궁시렁거렸다.
“오센티 오센티 오센티 파이팅.”
모둠구호를 삼삼칠 박수에 맞춰 연습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 유준이가 갑자기 나를 향해 소리 질렀다.
“현옥아. 으센찌가 아니라 오센티라고.”
얼굴이 벌개진 나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때마침 울린 쉬는 시간 종소리에 나는 얼른 화장실로 숨어버렸다.
수업이 모두 끝났다. 집에 가려다 청소당번인 승혜를 기다렸다. 뒷문을 열고 나오는 승혜에게 다가갔다.
“기다렸어?”
승혜가 웃으며 물었다. 고개만 끄덕이려다 유준이가 없다는 생각에 승혜에게 말했다.
“응. 같이 갈까 하고?”
“현옥아. 나 전단지 붙여야 하는데. 같이 붙일래? 너는 몇 시에 학원 가?”
“나 오늘 학원 ��어. 전단지 보여줘.”
승혜가 건낸 전단지를 찬찬히 봤다. 전단지 속 강아지는 짧고 하얀 털이 풍성했다. 거칠어 보이는 짧은 털은 만지면 왠지 부드러울 것만 같았다. 두툼한 목둘레 털이 사자의 갈기를 닮았다. 중국에서 안아줬던 차우차우가 생각났다.
“잃어버린 강아지 견종이 혹시 차우차우?”
“맞아. 차우차우에서 2글자 할머니 성에서 1글자. 현차우. 도대체 어디 있는 거니? 차우야! 현차우!”
승혜가 허공에 현차우를 불렀다. 승혜가 차우를 계속 부르자 세찬 물소리를 뚫고 가느다랗게 내 이름이 들렸다. 엄마가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 없는 낯선 곳에서 말 못하는 차우는 얼마나 무서울까? 현차우를 꼭 찾고 싶다.
우리는 교문을 나서며 전단지 붙일 장소를 찾았다.
“승혜야 조기.”
버스정류장 통유리 위에서 종이 전단지들이 바람에 나풀거렸다. 내가 통유리 위에 전단지를 대자 승혜가 투명테이프를 뜯어 전단지 네 귀퉁이에 붙였다. 버스를 기다리던 아저씨가 다가와 전단지를 유심히 쳐다봤다.
“혹시, 본 적 있으세요?”
승혜는 뭐라도 찾으려고 아저씨에게 차우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했다.
“그런데 언제 잃어버렸니?”
“어제요.”
“3일 안에 못 찾으면 못 찾더라. 3일이 골든타임이야. 유기견보호소에서 10일 지난 유기견은 안락사시키는 거 알지. 유기견 보호소도 꼭 연락해 보고.”
빠르게 말을 마친 아저씨는 멈춰 선 버스를 타고 가 버렸다. ‘안락사’라는 말에 승혜는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나는 승혜 손을 잡고 서둘러 길 건너 ‘멍냥이네’ 가게로 갔다. 아저씨는 동물병원이랑 반려용품가게에 꼭 붙이라고 알려주셨다.
“안녕하세요. 오제 강아지를 잃어버렸어요. 전단지 좀 붙여도 될까요? 도와주세요.”
울고 있는 승혜를 대신해 내가 빠르게 말했다. 아줌마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그런데 너 어디서 살다 왔니?”
아줌마의 질문에 나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갑자기 얼음이 되었다. 느닷없는 검문에 걸린 줄 알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강원도에서 왔어요.”
승혜가 대신 말했다. 잠깐, 여기는 남한이다. 더 이상 발각될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말투는 남한에서 나를 자꾸 북한 사람으로 분류했다. 남한 사람처럼 살고 싶어 말투를 꼭꼭 숨겼는데.
“그럴 줄 알았어. 같은 강원도 사람이네. 난 강원도 삼척이야.”
아줌마는 쾌활하게 승혜 손에서 전단지를 가져가 바로 유리창에 붙여주셨다.
“강아지 찾으면 우리 가게 꼭 데리고 와라. 강원도 사람인데 할인 많이 해줄게.”
꾸벅 인사를 하고 우리는 가게를 나왔다. 가게에서 몇 발짝 떨어지자 내가 말을 꺼냈다.
“승혜야. 내 말투가 이상해?”
“글쎄. 좀 다르긴 한데. 강원도에서 살았으니 그렇지. 난 속초 할머니 생각나서 좋아.”
“강원도…….”
내가 살다 온 곳은 원산이다. 남한이 아니라 북한의 강원도다. 입국을 마친 후 더 이상 어디서 살다 왔냐고 묻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 강원도 속초에 있는 아바이마을에서 순대장사 하셨거든. 지금은 아파서 수술하시지만. 난 사투리 재미있고 좋아. 모둠 구호 할 때 유준이 때문에 속상했지?”
“응…….”
“걔 말하는 게 그래. 너무 마음에 두지 마. 난 너 사투리 쓰는 거 귀여워.”
나는 내 말투를 북한말에서 강원도 사투리로 바꿔봤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치만 승혜한테 말하지 못한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전단지 붙일 장소를 찾아 승혜와 전단지 30장을 거의 붙였다. 찝찝한 마음을 애써 떨쳐버렸다.
전단지가 마지막 한 장 남았다. 승혜가 편의점을 가리켰다.
“저기 붙이자, 그리고 뭐 좀 먹자. 내가 살게.”
꽤 많이 걸어서 힘들고 배도 고팠다. 승혜가 편의점으로 나를 끌고 갔다. 편의점 직원을 보는 순간 어제의 중국어 통화 내용이 생각났다.
중국에서 함께 지냈던 차우차우의 혓바닥이 보라색이었다. 전단지의 사진에서 혓바닥이 보이지 않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승혜가 진열장 앞에서 과자를 고르며 손짓했다. 나는 계산대로 가서 편의점 직원에게 전단지를 내밀며 물었다.
“저, 이 강아지 오제 본 적 있지요?”
편의점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는 기색이었다.
“승혜야. 현차우 찾을 것 같아. 이리 와 봐.”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멀뚱멀뚱 쳐다보는 승혜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편의점 직원이 휴대폰에서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었다. 승혜가 화면 위에서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오므렸다 벌렸다. 확대된 사진에서 강아지 콧등의 하트 무늬를 확인했다.
“우리 차우야. 현차우 맞아. 인식표 확인하면 돼.”
나와 승혜는 서로 끌어안고 팔딱팔딱 뛰었다. 드디어 현차우를 찾았다. 같이 사는 친구가 엊저녁 순댓국집 앞에서 현차우를 발견했었다. 갑자기 말을 멈춘 편의점 직원이 미안해 했다.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아 순댓국집 앞에 도로 갖다 뒀어.”
“그 순댓국집이 어디에요?”
승혜가 울며 물었다.
“그게 말이야. 나도 걱정돼 순댓국집을 지나 편의점에 왔는데. 없더라고. 미안하다.”
승혜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우는 승혜를 창가 의자에 앉혔다. 편의점 직원이 친구와 통화했다. 손은 승혜를 토닥이고 귀는 중국어 통화 내용에 집중했다. 둘은 통화 중 옥신각신 싸우는 것 같았다.
“승혜야. 친구가 차우를 병원에 입원시킨 것 같아.”
편의점 직원이 통화를 마치고 우리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성급한 마음에 직원은 중국어로 빠르게 말했다. 나도 중국어로 대답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만나 동물병원에 가기로 했다.
“현옥아. 중국어 언제 배웠어. 대단해.”
승혜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게 거짓을 말하는 것처럼 마음이 불편해졌다. 머뭇거리는 사이 승혜가 휴대전화에서 현차우 사진을 찾아 보여줬다.
“승혜야 ……. 나 북한에서 태어났어. 강원도 원산. 중국에서 좀 살았어.”
“그랬구나. 고마워 현옥아. 니가 나 살려준 거 알지. 퇴원 후 할머니한테 혼날 생각만 해도 아휴.”
놀란 승혜는 몸서리를 치는 시늉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말하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편안했다.
“뭐 먹자.”
승혜가 나를 진열대로 끌고 갔다. 내가 탄탄면을 집자 승혜도 따라 집었다.
편의점 출입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렸다. 유준이가 들어왔다. 유준이는 나와 승혜가 들고 있는 탄탄면을 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현옥아. 오늘도 탄탄면 먹냐.”
“그래. 내일도 먹어야지.”
내가 대답하자 유준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유준이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편의점 직원이 바코드로 탄탄면 2개를 찍자 편의점 포스기가 ‘2+1 상품입니다’라고 말했다. 유준이가 잽싸게 탄탄면을 집어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탄탄면 맛있지. 나도 같이 먹자.”
유준이 말에 나도 승혜도 피식 웃어버렸다. 우리는 창가에 앉아 편의점 직원의 친구가 오기를 기다렸다. 어두운 창 너머로 보이는 모습이 어제와 너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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