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공존 /김슬기

김슬기 2024. 1.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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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생동하는 아침엔 승환이 죽을 것 같지 않았다
핸드백 속 전화벨이 울린다 승환의 처다 “방금 갔어요”
고모는 나이 많은 푸들을 보러 집에 다녀오겠다 했다
모두가 떠난 집을 지킨 고모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형님, 오늘을 넘기기 어렵답니다.

승환의 처가 짧은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회신을 보낼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지 못하고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주방으로 향했다. 물 끓는 소리가 들린 지 꽤 되었다는 생각에서였다. 커피포트는 마트에서 처음 일하게 된 날 세일 품목에 있어 샀던 것이었다. 소비자 정가 5만 원, 세일가 2만 9천 원.

내일은 없어요, 이 가격!

조바심이 났다. 그 길로 커피포트를 사서 퇴근길에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첫 월급을 받을 즈음, 커피포트는 초특가 파격 세일을 해 2만5000원이 되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는데, 고작 그런 것 하나 맞추지 못하고 사는 나 자신이 싫었다. 4천 원을 손해 본 커피포트는 꼬박 8년 동안 제 몫을 성실히 해내고 얼마 전 고장이 났다. 지난달이었다. 여느 날처럼 머그컵에 인스턴트 스틱 커피 두 개를 까 넣고, 커피포트에 물을 넣고 전원을 켜두었다. 바글바글 물 끓는 소리가 들려올 때쯤 잠시 공과금 용지를 살폈다. 2만 원 정도 나오던 수도요금이 5만 원이나 청구돼 있었다. 혼자 사는 집에 가당치 않은 요금이었다. 용지 아래에 적힌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통화량이 많아 상담원 연결까지 예상 대기시간은 15분입니다.

안내 멘트 한 번, 제목을 모르는 클래식 음악 한 번, 안내 한 번, 클래식 한 번…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상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담원 김지선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랜 기다림 끝에 들려온 목소리지만, 나는 ‘도와드릴까요’ 하는 물음이 낯설게 느껴져 머뭇거렸다. 마트에서 일하면서, 나 또한 매일 습관처럼 하던 말이었는데도 그랬다. ‘다른 게 아니고 제가…’ 하고 입을 떼어내는데 부엌에서 타는 냄새를 맡았다. 놀라 전화를 끊고 부엌으로 향했다. 수증기로 눅눅해진 공기를 헤치고 커피포트 쪽으로 갔다. 물이 없는데도 커피포트의 끓음 버튼에 빨갛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전원을 뽑았다. 커피포트는 바닥이 조금 그을렸을 뿐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키친타월로 그을린 곳을 닦아 내고 한 컵 반 정도 되는 물을 부었다. 이번엔 식탁 의자를 당겨와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렸다. 물이 끓는데도 커피포트는 멈추지 않았다. 무한히 끓고 또 끓었다. 커피포트가 언제 초특가 파격 세일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중요했지만 사소해진 고장에 적응하며, 나는 오래된 커피포트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날들을 이어 나갔다.

한 매니저님. 오늘 출근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유: 동생의 위독)

커피포트 앞에 서서 승환의 처에게 회신하는 대신 마트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썼다. 얼마 전 새로 부임한 젊은 한지원 매니저에 대한 평가는 ‘호’와 ‘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편이었다. 방학 기간만 파트타임 캐셔 일을 했던 대학생이나,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4시간 동안만 물품 정리 일을 맡은 3개월 차 직원들은 그의 번듯한 외모,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했다. 마트에서 적게는 2년 많게는 10년 이상을 일해 온 사람들은 달랐다. 구 매니저가 불미스러운 일로 마트를 떠난 뒤 부임한 한 매니저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비상계단, 창고 등 한 매니저가 없는 자리가 곧 그의 흉을 보는 최적의 장소였다. 기생오라비같이 생겨 눈빛이 거슬린다, 너무 딱딱하고 융통성이 없다, 연장자에 대한 공경심이 눈곱만큼도 없다 등. 이유도 다양했다. 언젠가 한 번은 한 매니저가 개인 사유를 들어 연차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는데, 구석진 곳에 숨어서 수군덕거리던 직원들이 계산대와 매대 같은 듣는 귀가 많은 곳에서 큰 목소리로 그의 흉을 봤다.

“나는 말이야, 10년 일하면서 교통사고 났을 때 딱 한 번 쉬었어. 젊은 사람들이 대학 나오고 좀 배웠다고 덜컥 매니저로 부임하면 이게 문제야. 본인 생각 밖에 안 하는 거.”

나 또한 마트에서 꼬박 8년을 일하며 한 번도 연차를 쓰지 않았다. 아니, 쓰지 못했다는 편에 가까웠다. 승환이 처음 병원에 입원한 날도 정시 퇴근을 했다. 병원에 도착한 때는 면회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병원 뒷문으로 조심스럽게 입원실까지 올라갔다. 피곤할 텐데 집으로 바로 가지, 이렇게 늦게. 약 때문에 잠이 많아진 것 같다며 부스스 일어난 승환이 내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급하게 오느라 봉투에 담지 못한 돈뭉치를 꺼내 누워 있는 승환의 허리 밑에 찔러 넣었다. 얼마 안 된다. 병원비에 보태. 얼굴 봤으니 됐다. 많이 자야 빨리 낫는다. 나는 근무를 하며 초조한 기분이 들 때마다 떠올렸던 말들을 승환에게 순서 없이 쏟아냈다. 애써 작은 목소리를 내었지만, 6인실 다른 침대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승환의 손을 슬며시 뿌리쳤다. 깜깜한 병실에서 놓아둔 가방을 손으로 더듬어 찾아 집어 들었다. 가볼게. 언제 또 와. 자주 올 거야. 너무 자주는 오지 마. 많이 자, 최대한 많이.

확인했습니다. 다음엔 미리미리만 알려주세요. 근무표에 이상 생깁니다.

한 매니저다운 답장이었다. 나는 냉동 만두 코너를 담당하는 박영금 여사가 이 문자를 보았다면 무어라 말했을지 상상했다. 울림통이 큰 그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한 매니저는 무당이라도 되냐. 배탈 나는 것도, 사고 나는 것도 어디 한 번 본인은 미리미리 잘 알 수 있는지 두고 보자. 굴러온 돌 주제에 매니저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게 아주 재수가 없어. 나는 잠시 박영금 여사의 마음이 되었다가, 그가 보낸 메시지를 여러 번 곱씹어 읽었다. 사실 별다른 악의가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오히려 해석하기에 따라 선의일 수 있는 말이었다. 미리 알려주기만 하면, 어떤 사유든 보장된 연차를 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트 명절 행사로 많은 물품을 나르고 처리해야 했던 날이었다. 밤사이 심한 열몸살을 앓았다. 병원에 갈 생각도 못 하고, 가을 이불 속에서 떨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식은땀으로 베개가 흥건히 젖어 있었다. 몸을 일으킬 정도는 되었지만, 온 몸의 마디가 다 쑤셔오는 것만 같았다. 38도가 표시된 체온계를 손에 쥐고, 나는 당시 매니저였던 구찬역에게 보낼 메시지를 고민했다. ‘몸살이 있어…’, ‘열이 끓어…’, ‘급히 병원에 가야…’ 등으로 시작하는 내용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출근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다 젖은 베갯잇을 빼어 빨래통에 넣고, 물을 끓이고 믹스 커피를 타 마셨다. 마트에 도착했을 땐 출근 시간이 10분 지난 때였다. 마트의 올바른 질서 정립을 입버릇처럼 말하던 구 매니저는 내 급여에서 30분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하는 게 맞겠다고 말했다. 이래야 본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지각을 쉽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고 말하면서.

마트 출근 대신 병원으로 향하는 길. 내 앞에 멈춰 선 택시를 보내고, 정류장까지 걸어 버스를 탔다. 예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지난번엔 새벽에 연락을 받았다. 승환이 고비를 넘기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병원까지 택시비가 2만 원이 나왔는데, 승환은 내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을 쉬며 잠들었다. 의사는 승환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기적을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시름 놓고 나자 돌아가는 택시비를 부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트에서 다리가 퉁퉁 붓도록 서서 2시간은 꼬박 일해야 하는 돈이었다. 병원 로비 의자에서 쪽잠을 자며 첫 차를 기다렸다. 그날은 근무하는 동안 몇 번이고 무릎이 꺾였다. 오늘 병든 닭같이 왜 그래. 내가 조느라 놓친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며 미영 씨가 핀잔을 주었다. 병든 건 승환인데.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오늘은 그날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도 충분할 것 같았다. 차가운 새벽이 아닌 모든 것이 깨어나 생동하는 아침이었다. 아무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여러 해 동안 병들어 고비를 지나온 승환이, 이 아침엔 도무지 죽을 것 같지 않았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었다. 버스의 진동이 느껴졌다. 거리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들 모두 버스의 진동만큼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핸드백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방금 갔어요, 10시 30분. 버스는 길성병원 정류장에 10시 50분에 도착했다. 해가 떠 있는데, 부슬부슬 부스러진 비가 내렸다. 승환이 아직 누워 있는 병실까지 이어진 언덕은 높았다. 속절없이 비를 맞았다.

승환의 첫 죽음이지만, 그의 마지막 머무를 곳은 일사천리로 마련됐다. 승환의 처는 엉덩이 한 번 붙일 시간도 없이 분주하게 오가며 일 처리를 했다. 마트에서 처음 일하게 된 날처럼, 그녀 옆에서 어떤 일이든 도울 일이 없을지 서성였지만 내가 손에 쥘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승환의 처가 몇 가지 서류를 손에 쥐고 눈을 비비다가, 눈꺼풀을 느리게 끔뻑였다. 손에 든 짐이라도 들어주려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승환의 처가 작은 핸드백에서 인공눈물을 꺼냈다. 고개를 젖히고 왼쪽과 오른쪽 눈에 번갈아가며 떨구었다. 눈가에 넘친 인공눈물이 새어 나올 때쯤, 막 병원에 도착한 그녀의 여동생이 다가와 들고 있던 짐들을 뺏듯이 가져갔다.

“언니, 형부 때문에 고생 많았어. 울지 마, 힘 빠져. 산 사람은 살아야지.”

10년의 결혼 생활 중, 4년은 아픈 승환과 살았던 승환의 처였다. 서른여덟에 병 수발을 들기 시작해, 마흔둘 남편을 잃기까지.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는 언니를 동생이 걱정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승환의 죽음은 그녀의 동생에겐 안타까운 일이라기보다 문제의 해결, 언젠가 닿아야 할 결말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나는 승환의 오랜 병이 미안했다. 지금의 결말이 다행인 것처럼 느껴졌다.

일회용 그릇에 든 밥과 국이 앞에 놓였다. 병원에 오기 전 마신 믹스커피가 오늘 먹은 것의 전부였다. 배가 고팠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밥 반을 떼어 국에 넣고 말았다. 승환 처의 여동생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저 좀 봐요. 비닐이 깔린 테이블 위에, 일회용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여름인데도, 소복하고 눈 내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여자가 앞서고 내가 뒤를 따라갔다. 여자는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할 얘기를 하려는 듯 두리번거렸다. 아직 조문객이 오지 않아 빈소에서 얘기를 해도 되었는데도 그랬다. 여자는 복도를 살피다가, 신발을 고쳐 신느라 꿈지럭대는 내 앞으로 왔다. 조금 있으면 저희 집 쪽 문상객들이 오셔요. 나는 그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한숨 소리를 내며 신발을 벗고 다시 제 언니 곁으로 갔다.

가장 먼저 빈소에 도착한 사람은, 승환의 처가 쪽이 아니었다. 고모였다. 젊은 시절부터 화려한 색의 옷을 좋아하던 고모는 어두운 옷을 입고 낯설게 야윈 모습이었다.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묶은 사이로, 얇은 목주름이 드러났다. 그녀가 남들에게 보여주기 끔찍하게 싫어했을 그것. 고모는 영정 사진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승환의 사진을 한참이고 바라봤다. 나도 고모가 바라보는 쪽을 보느라, 승환의 사진과 오래 마주했다. 승환은 웃고 있었다. 고모는 다음으로 도착한 조문객이 신발을 벗고, 조의금을 내고, 고모가 앉은 모습을 보고 서성일 때까지 미동도 없이 멈춰 있었다. 고모가 두 손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할 때, 나는 고모 가까이 다가섰다. 고모의 오른손이 내 왼 손목을 잡았다. 고모는 힘겹게 몸을 일으킨 뒤, 나를 테이블이 있는 쪽으로 끌었다. 좀 전에 차마 먹지 못한 밥이 그대로 있는 자리였다. 고모는 쟁반에 새로이 떠온 국과 밥을 손사래 치며 물렀다. 대신 내 앞에 놓인 마른 밥 반 공기를 가져다 놓았다. 조용히 술잔을 채우던 고모가 말했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라.”

*

아버지는 타이밍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의 생활용품 만드는 공장의 물건을 저렴하게 떼어오는 중개사업을 하거나, 국내의 생선이나 양말 도매업 같은 소위 ‘돈 된다’는 것들에 뛰어들었다.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복잡한 계산보다는 직감을 중시했던 아버지는, 돈으로 타이밍을 사는 쉬운 방법을 택하곤 했다. 여러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잔뜩 손해 보고 빠져나오기를 여러 번. 아버지의 추진력만 믿고 투자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미로 같은 골목 끝, 칠이 벗겨진 파란 양철 대문이 우리가 사는 집이었다. 대문 너머로 매일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수야, 집에 있는 거 안다. 덕수야, 우리 애들이 너희 집 애들하고 나이 같은 거 알제. 덕수야, 내 돈 먼저 가만히 돌려주면 안 될까. 때론 낯선 사람들이 대문을 열고 들어와 집 곳곳을 뒤지기도 했다. 돈 될 만한 물건은 이미 다 가져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늘었다. 승환은 자주 소리 내 울었다. 어른들이 소리치고, 애원하고, 화내는 것은 괜찮았지만 승환이 우는소리는 듣기 싫었다. 작은 지물포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친구는 승환의 옷장을 뒤져 승환의 낡은 겨울 점퍼와 쓸 만한 스웨터까지 모두 가져갔다. 우리와도 짜장면을 같이 먹은 적 있던 그의 아들은 승환보다 두 살이 어렸다. 그날 승환은 오래도록 울었다. 나는 달래지도 다그치지도 않았다. 부모 둘 다 없어지면, 내가 동생 엄마고 아빠인 거다. 어른들의 말을 되뇌었다.

아버지가 떠나고, 일주일 되던 늦은 밤.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 알루미늄 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큰 소리를 냈다. 승환은 내 뒤로 숨어,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얇은 티셔츠 사이로 눈물일지 콧물일지 모를 축축함이 번져 왔다. 나는 팔꿈치로 승환을 밀어냈다. 승환은 멀어지지 않고 더 가깝게 몸을 붙였다.

“고모다. 문 열어.”

집 안에 들어선 건 사람보다 냄새가 먼저였다. 담배와 술, 향수가 뒤섞인 역한 냄새가 났다. 나는 옷소매로 코를 틀어막았다. 고모가 휘청휘청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고모는 봉투에서 라면 세 개를 꺼내 냄비에 넣고 끓여 식탁에 올렸다. 승환은 제 얼굴만 한 그릇에 덜어진 라면을 금세 비우고, 더 덜어 먹었다. 나는 얼마 먹지 않고 젓가락을 내려놨다. 라면에서 향수 맛이 나는 것 같았다. 고모는 나를 힐끔 보더니 별말 없이 국물을 들이켰다.

우리가 학교에 가는 아침에도 죽은 듯 잠을 자던 고모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쯤 외출했다가 늦은 밤 돌아왔다. 매일이 다른 역한 냄새들과 함께였다. 그 냄새엔 도무지 적응하기 어려웠다. 머리가 아팠다.

“고모가 엄마 해주는 거야?”

나는 승환의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으려다 말았다. 어른인 고모가 엄마를 해주면, 내가 승환의 부모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뭐지. 학교 숙제로 창문이 있고, 파란 대문을 가진 집을 도화지에 그리며 생각했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승환과 문 앞에 서서 고모를 반갑게 맞이해보기로 다짐했다. 그래 봐야 만화영화에서나, 어린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을 따라 한 것에 불과했지만. 문이 열리고, 고모가 들어오자 우리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멀찍이 떨어져 있을 땐 역하게 느껴졌던 냄새들이, 코를 박고 맡으니 그리 나쁜 것 같지 않았다. 피곤한 얼굴을 한 고모가 나와 승환의 팔을 떼어내며 말했다.

“이런 짓은 네 애미, 애비한테나 해라.”

고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

“승환이 이놈은 사내놈이 되어갖고 눈물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고모는 남은 맥주를 마저 컵에 따르며 말했다.

“저 죽을 날은 안다던데. 승환이 걔는 눈 감기 전에도 애처럼 엉엉 울었을 거다. 내 말이 맞지? 보나마나 뻔하지.”

고모는 승환이 열여덟 살 때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오른팔에 크게 화상을 입었던 날의 기억을 꺼냈다. 고모는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고모가 일을 마치고 들어온 새벽이었다. 승환의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모른 체할까 하다가 마음이 쓰여 문을 벌컥 열었다. 어둑한 방에 승환이 구석에 앉아 울고 있었다. 한겨울인데도 반팔을 입고 덜덜 떨면서. 뭐 하러 궁상을 떨고 있냐 물었더니 승환이 팔을 고모 앞으로 내밀었다. ‘일하다 숯을 엎어 데었어요’. 고모는 승환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흉내 내듯이 말했다. 고모는 자신의 왼팔에 손가락으로 승환이 화상 입은 부분을 지도 그리듯 그렸다. 고모는 승환에게 물었다. 왜 병원엘 안 가고 이러고 있느냐고. 승환은 그 말엔 대답을 안 했지만 고모는 그놈 속이 뻔하지 했다.

“수십 개씩 불판 닦고, 숯 나르고… 돈 벌어 보니 병원비 내는 게 덜컥 아까웠던 거지. 근데 불에 데인 게 밤 되면 더 아파. 엄살쟁이인 그 녀석은 오죽했겠냐. 뭐 어째. 우는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새벽에 끌고가다시피 응급실에 갔지. 낮에 갔으면 몇 천 원이면 될걸, 20만 원을 썼다. 내가 내고, 다음 달 아르바이트 비 나오는 대로 그대로 받아냈다. 제 아버지처럼 손 벌리며 사는 거 버릇될까 봐.”

고모는 옆 테이블에 놓인 새 맥주를 집어다 본인 앞에다 놓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한 쪽 무릎은 누이고, 한 쪽 무릎은 세웠다. 고모는 예전에도 그런 자세로 밥상에 앉아 60분짜리 TV 드라마를 보곤 했다. 일주일에 두 번 방영하는 수목드라마였는데, 한 여자를 둘러싼 매력적인 남자 넷이 나오는 시시한 연애 드라마였다. 고모는 드라마 한 회에 소주 딱 반병을 마셨다. 수요일에 새것을 까서 마시고, 목요일에 완전히 비웠다. 고모는 그중 가장 말 없는 남자가 여자 주인공과 잘 되길 응원했다. 고모 뒤에 앉아 과자를 집어 먹던 내가 말했다. 고모, 그 사람보다는 카페 사장인 남자가 낫지요. 고모가 눈을 흘겼다. 골라도 꼭 제 애비 같은 사람을 고르는구나. 나는 그 말에 퍽 기분이 상했다. 입을 오리처럼 내밀고, 우적우적 과자만 씹어 먹고 있는데 고모가 말했다. 네 애비도 20대 초반에 다방 일 도왔던 거 알고는 있냐. 아뇨. 그러니까 카페 사장 좋다는 소리를 쉽게 하지. 다방이랑 카페랑 다르잖아요.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커피 먹는 데가 뭐 그렇게 다르겠냐. 근데 고모 카페 가보기는 했어요? 안 가봐도 척하면 척이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니.

승환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웬일로 책상 앞에 앉아 참고서를 보고 있는 승환의 뒤통수에 대고 고모가 말했다. 쓸데없이 학교 다니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만두고 일해서 돈 벌으라고. 고모 말이면 네, 하고 군말 없이 잘 따르던 녀석이 그날은 고모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내가 조카 아니고 친자식이었어도 학교 그만두고 돈 벌어오라고 했을까요. 고모는 기가 막히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 저번 중간고사에서 뒤에서 2등 안 했냐. 성적표에 부모님 사인을 받아오라는 담임선생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고모의 사인을 받아 갔던 승환이었다. 그게 학교 다니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승환이 눈을 부릅뜨고 얘기했다. 네 애비도 너처럼 공부 못하는데 호사스럽게 학교는 다 나왔어. 고모가 오래된 TV 장 서랍을 열어 귀이개를 꺼냈다. 두루마리 휴지 한 칸을 뜯어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고, 귀를 파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네 애비처럼 한량같이 살고 싶으면 다니시든가.

승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처음엔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나중엔 주물공장에 정식으로 취업했다.

“승환이 그놈은 월급날 ‘고모 용돈 하세요’ 하고 봉투 한 번을 안 가져다 줬어. 내가 은혜를 모르는 놈이라고 쏴붙이니 뭐라는지 아니. 제 애비도 애미도 아닌데 뭔 이유로 힘들 게 번 돈을 갖다 주냐 그러는 거지. 내가 기가 막혀 일을 하다가도 그 말만 생각하면 깔깔거리며 웃었다. 참, 둘이 공장 앞에서 기다리다가 승환이 미행한 거 기억나냐.”

나는 그때를 떠올리고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기억이 나지 않을 리 없었다. 고모는 몇 번이고 미행을 해 본 사람처럼 완벽한 차림새였다. 스카프로 머리를 감싸고, 선글라스를 낀 고모가 앞장섰고, 내가 뒤따랐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내가 묻자 고모는 이것이 승환의 돈과 인생을 지켜주는 방법이라 했다. 그때 네 애비를 말렸으면… 고모는 말끝을 흐렸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퇴근하고 공장 정문을 제일 먼저 나서다시피 한 승환이 메고 있던 백팩에 회색 공장 점퍼를 구겨 넣고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여자가 승환을 반겼다. 고모와 나는 얼마 따라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정육점에 들러 산 돼지고기 목살 반 근을 구워 먹었다. 한참을 먹고 있는데,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연기가 자욱한 집 안에 승환이 콜록거리며 들어섰다. 나는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8시 30분. 예상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승환은 손에 든 비닐봉지에서 맥주 몇 캔을 꺼내었다. 고모가 앞에 놓인 맥주캔을 따기가 무섭게 승환이 말했다. 저 내일부터 따로 나가 살려고요. 내일? 나는 놀라 되물었다. 고모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어차피 네 인생이니 네 마음대로 할 거 아니냐. 나가든 말든 잘 알아서 한 번 살아보라 말했다. 승환은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비장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누나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다고, 자신이 지켜주고 싶은 유일한 여자라고, 이게 사랑 아니겠냐고. 고모는 다 마신 맥주 캔을 찌그러뜨리며 말했다. 덕수가 너네 낳고 도망간 여자 만날 때도 딱 그런 소릴 하더라.

승환은 간단히 짐을 꾸려 만나는 여자 집에 들어가 살았다. 집에는 전화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러다 모아둔 돈마저 생활비, 데이트비로 박박 다 긁어 쓴 뒤에야 승환은 쫓겨나다시피 해 집으로 돌아왔다. 제 집에 자기가 다시 왔는데 뭐가 대수인가 하며 고모는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했지만, 승환은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칫밥을 혼자 먹었다. 그러다 새 여자가 생기면 신나게 집을 다시 나가 소꿉놀이하듯 원룸에 살림을 차리고, 헤어지면 돌아오길 몇 해나 반복했다. 고모와 나는 승환이 헤어지면 어련히 돌아오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여느 때처럼 현관문을 열고 태연히 들어선 승환을 향해 고모가 말했다. 기어 들어오는 걸 보니 헤어졌구나. 승환은 다짜고짜 상견례에 고모가 대신 나와 줄 것을 부탁해왔다. 고모는 싱크대 물을 틀며 ‘너는 내 결혼식 때 보태준 거 있느냐’ 했다. 승환이 놀라 동그래진 눈을 하고서 말했다. 고모 결혼하셨어요? 고모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지도 못하고 넌 늘 제 것 챙길 줄 만 알지. 그러니까 고모 결혼하셨냐고요. 결혼을 안 했으니 네가 보태준 게 없지. 승환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직 아가씨인 내가 양가 부모 자격으로 앉는다니 말이 되냐, 되기를.”

승환의 결혼식 날. 신랑 입장을 앞두고 혼주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하객석에서 웅성이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돌아봤더니, 입장을 앞둔 승환이 차렷 자세를 하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쑥덕거렸다. 신랑이 너무 운다. 어디 팔려 가는 것 아니냐.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한복을 입고 혼주석에 앉은 고모는 손수건을 얼굴에서 떼질 못했다. 고모도 울고 있는 것일까. 나는 고모의 어깨를 두드렸다. 손수건 사이로 고모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아무리 해도 틀어막을 수 없는 사람처럼 꺽꺽 소리를 냈다. 나도 목이 간질간질해지더니 이내 웃음이 났다. 거실 한복판에 걸린 승환의 결혼사진 속 우리는 귀가 빨갰다. 웃음을 참는 입꼬리가 사진 속에서도 씰룩이는 것 같았다.

*

“그러니까 제가 왜 그것까지 책임지냐고요.”

마트 물류창고 뒤편에 있는 흡연구역에서 구찬혁 매니저는 세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그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커피/차 코너에서 일하던 젊은 여직원 하나가 자취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유서에 마트 직원 몇몇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같은 시간대 근무하던 직원들의 괴롭힘이 주원인이었다. 구 매니저의 이름이 직접 적혀 있진 않았지만, ‘여러 차례 관리자에게 근무표 조정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문구 때문에 그도 책임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유서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람들과, 마트에서 오래 일한 직원들은 구찬혁을 덮어 놓고 두둔했다. 그들의 말만 듣는다면 고인은 ‘본인밖에 모르는’, ‘우울증이 심각해 보여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 ‘마트에서 일하는 주제에 화장이 진한’, ‘괴롭힘을 당해도 마땅한’,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럴 거면 가만히 마트 일을 그만두거나, 조용히 혼자 죽을 것이지 왜 산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이 난리를 피우냐며, 큰 목소리로 흉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자의 연분홍 손톱을 떠올렸다. “이번엔 커피를 좀 천천히 드셨나 보네요. 저번엔 한 달 안 되어 새로 사시더니.” 다른 박스에 붙어 있던 증정 머그컵까지 떼어다 모아 붙인 100개 들이 커피 박스를 건네는 여자의 손엔 연분홍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언젠가 내가 일하는 코너의 세일품목이 나오면 알려주어야지. 생각만 하고 하염없이 미루어두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다. 이젠 세일품목을 알려줄 수도, 고마운 마음을 갚을 길도 없으므로 나는 적어도 연분홍 손톱의 여자를 흉보는 사람들의 말에 두둔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게 되었다. 눈치 빠른 직원 하나가 이를 알아채고 나를 흉보던 때도 있었다. 나는 자꾸 사람들이 모여 쑥덕거리는 자리를 피하게 됐다. 구 매니저를 포함해 사건과 관계된 몇몇 직원이 권고사직을 당한 뒤에도 그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한 매니저님. 내일도 출근이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유: 동생 장례)

마트에서 일하는 아무도 동생의 장례에 찾아오지 않았다. 사실 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마트 사람들에게 연락할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 부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만약 부고 메시지를 보낸다고 해도 ‘언제부터 우리랑 한 편이었다고’ 수군거리기만 할 것이 분명했다. 빈소를 찾는 대부분이 승환의 처나 친인척, 지인들이었고 개중엔 승환이 몇 년 전까지 다니던 공장의 마크가 새겨진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덤덤히 걸어 들어와 두 번 절했고, 일면식 없는 나의 손을 차례로 잡았으며 눈을 마주쳤다.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나는 말했다. 승환이 누나예요. 누나가 계셨구나. 그들이 과거형으로 대답하는 동안, 나는 이곳에 곤히 잠자듯 누워 있을 승환을 떠올렸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나는 잠시 바람도 쐴 겸 밖으로 향했다. 조용한 승환의 빈소와 달리, 다른 곳들은 울거나, 싸우거나, 웃거나 하는 소리들로 시끌벅적했다. 흡연구역으로 향했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워 갈 때쯤, 누군가 걸어왔다.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빈소에 안 계셔서, 회사 부의금만 전달하고 나오던 참이었습니다.”

한지원 매니저였다. 그는 내 옆에 나란히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차가운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며 나는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말했다. 그는 말없이 연기를 뿜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는 동생이 오래도록 아파왔는지 물어왔다. 4년이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고인 되신 분께서, 참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대부분 조문객들은 오랜 시간 병간호를 해 온 승환 처의 공을 치하하며, 앞으로는 고생하지 말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 또한 그 말을 부인하지 못하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는데, 한 매니저의 한마디에 무언가 가슴께에서 북받치는 것만 같았다.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체기 같은 감정을 누르기 위해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오늘 출근 안 하신 동안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창고에서요.”

그와 사무적이거나 형식적인 이야기가 아닌 얘기를 나누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는 나긋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내었다. 나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낯설게 그의 말을 들었다. 한 매니저가 창고에서 물품을 검수하고 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동물이 삑삑거리며 우는소리도 들었다. 쥐가 나타난 것이라면 큰일이었다. 방역 업체에 전화를 걸어두고, 한참 창고 안을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유정 메추리알이 있는 곳이었다. 얇은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갓 태어난 새끼 메추리가 울고 있었다. 그는 창고 한구석에 앉아 울고 있는 새끼 메추리를 바라봤다. 거기서 태어난 게 자기 책임인 것만 같더란다. 급한 대로 반려동물 용품 코너에서 햄스터용 케이지를 사고, 그 안에 알보다 더 쉽게 깨질 것 같은 새끼 메추리를 담아 두었다고. 그는 휴대전화에 찍어둔 새끼 메추리 사진을 내밀었다. 막 면도를 했는지 매끈한 얼굴의 그가 휴대전화의 파란 불빛에 비쳐 보였다. 이렇게 보니 마트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앳되어 보였다. 그는 소년 같은 얼굴로 햄스터장에서 울고 있는 메추리 얘기를 한참 동안 했다.

출근 가능한 일정만 미리 공유 주십시오. 한 매니저는 인사를 대신 해 격식을 차린 말투로 이 말만 전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멀어지는 한 매니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손가락을 꼽아 날짜를 헤아렸다. 쉬는 것도 쉬어본 사람이 요령이 있겠다 싶었다. 장례가 끝난 다음날은 근무 일정표상으론 내가 쉬는 날이었다. 이걸 빼고 생각해야 하나, 아니면 나 대신 일해야 했을 사람들을 생각해 얼른 출근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출근 가능한 일정만 알리면, 그는 어떻게든 공평한 근무표를 만들 것이었다.

빈소에 돌아온 나는 고모와 마주 앉아 다시 승환의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창 시절 달리기에서 꼴등을 해 우는 승환, 불편한 정장을 입고 공장에 출근했다가 관리자에게 혼쭐이 나고 집에 돌아와 서럽게 우는 승환,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고모나 내가 작게 다쳐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면 입원실에서 대성통곡을 하던 승환… 우리는 울고 있는 승환을 소리 내 웃으며 얘기했다. 몇몇 에피소드에서는 너무 크게 웃는 바람에 빈소를 찾은 조문객 몇이 우리가 있는 테이블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고모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한참을 얘기하고 있었는데, 주방 쪽에서 ‘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센 물소리도 들려왔다. 주방은 싱크대 쪽 파이프 하나가 터져 물난리가 나있었다. 국과 밥, 몇 가지 반찬들을 준비하던 상조 도우미가 이런 일은 처음인지 허둥지둥하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맨손으로 파이프 구멍을 막으려 했다. 상조 도우미의 머리카락과 옷이 물이 흠뻑 젖었다. 관리인 한 명이 달려와 사태는 금방 수습됐지만, 일회용 접시에 미리 소분해두었던 음식들이 물에 잠겼다. 상조 도우미가 아까워서 어쩌나, 하며 접시째로 쓰레기봉투에 넣으려는데 고모가 주방으로 들어섰다. 수육이 담긴 접시 몇 가지를 따로 빼내어 물을 따라내고, 고기만 건져 일회용 비닐에 넣었다.

“고모, 스티로폼 박스에 따뜻한 거 있으니까 그걸 가져가시지.”

“나 먹을 거 아니고 우리 푸들이 주려고.”

고모는 작은 꽃이 그려진 퀼트 가방에 비닐을 담았다. 고모는 잠시 집에 좀 다녀오마, 말했다. 집에 나이 많은 푸들 개 한 마리가 있는데, 고모가 없으면 밥도 물도 먹지 않고 똥도 오줌도 안 눈다고. 이웃에게 듣기로는 고모가 집을 오래 비울 때면, 혼자 늑대처럼 운다고도 했다. 고모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땐 마냥 집에 잘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신경이 쓰여 오래 집을 비울 때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고모는 물 갈아주고, 수육 몇 점 얹어주고, 오줌 누는 것만 보고 오면 두 시간이면 된다고 말했다. 고모는 내 앞에 펼쳐 보인 손가락 두 개를 천천히 접고, 뒤축이 조금 해진 구두를 신고 빈소를 나설 준비를 했다. 나는 장례식장 입구까지 고모를 배웅했다. 고모는 뒤를 돌며 말했다.

“눈 붙일 수 있을 때, 좀 자둬라.”

빈소 한편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나는 집어삼켜지듯 잠에 빠져들었다. 꿈을 꾸었다. 나는 어린 시절 살았던 파란 양철 대문 집에 누워 있었다. 옷가지들과 책가방과 참고서들이 옛 모습 그대로 널브러져 있다. 그 사이에 20대에 썼던 물건들도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나는 꿈에서도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지만 많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사라지길 반복할 때마다 옛 마음이 되어 초조했다. 누군가 덕수야, 하며 잊고 있던 아버지의 이름을 나에게 다시 일깨워 줄 것만 같았다. 불쑥 스무 살 승환이 빈털터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울 것도 같았다. 꿈속에서의 나는 작은 몸뚱이를 가졌다. 현관문이 잘 보이는 쪽으로 몸을 가볍게 뒤집었다. 나는 현관 너머로 들려올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빈 공간을 울리는 무수한 발소리 사이에서 고모의 것을 기다린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알루미늄 문이 열리고, 하루의 고단한 냄새를 끌어안고 돌아올 고모. 나는 고모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가 이내 나이가 지긋하게 든 고모를 떠올렸다. 푸들 밥도 주고, 물도 갈아주고, 오줌도 똥도 누는 것을 본 고모가 돌아오는 것 같았다가 곧 아닌 것이 되었다.

모두가 떠나는 그 집으로 고모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딱 손가락 두 개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고모는 내가 있는 곳으로 반드시 올 것이었다. 우리가 아직, 공존하고 있는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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