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마주했기에, 물러설 수도 돌이킬 수도 없었기에”
# 시 부문 박유빈
- 법의학자 꿈꾸다가 문예과 지망
- 운명같은 문학 산책하듯 거닐 것
# 단편소설 부문 김슬기
- 소설은 감정을 단련하는 체육관
- 글 쓰며 자유·해방감·확신 느껴
# 시조 부문 조은정
- 당선은 아픈 어머니께 드릴 선물
-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글 쓰고파
# 동화 부문 서미경
- 초등교사라 이야기의 힘 잘 알아
- 장편동화 적어도 3편 내고 싶어
2024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응모자는 시 부문 397명(전년도 400명), 시조 부문 133명(전년도 137명), 단편소설 부문 244명(전년도 173명), 동화 부문 159명(전년도 152명)에 이르렀다. 예술 창작을 통해 새로운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보겠다는 전국 응모자의 열정은 뜨거웠다. 등단이라는 과정을 거쳐 문인이 되고 문학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겠다는 마음 온도는 여전히 높다.
단편소설 부문은 응모가 전년도보다 크게 늘었고 동화 부문은 여전히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 시와 시조 부문은 전년도와 비슷했는데, 이 또한 문학 영역 취재 경험이 없는 동료 기자들이 “이렇게 문학 지망 열기가 높은 줄 몰랐다”고 감탄할 만큼 강렬한 흐름이다. 2024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인 네 명을 지난달 하순 국제신문에서 만났다. 올해 당선인 4인을 인터뷰하며 문학의 힘, 예술의 큰 쓸모를 선명하게 느꼈다.
▮시의 박유빈
시 당선인 박유빈(24) 씨는 “오는 2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다”고 했다. 경남 양산에서 2000년에 태어나 줄곧 살며 양산제일고를 졸업했다. “문과로 갈 생각이 없었어요. 꿈은 법의학자였고요. 계획성을 중시하고 충동에 따르는 행동을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전공을 택할 땐….” 찾아온 충동을 밀어내지 않고, 순식간에 결정했다고 한다. 스위치를 딱 누르면 불이 탁 들어오는 것처럼, 문학으로 통하는 연결선은 이미 있었을 것이다.
“시는 승화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면에서 제가 심란하거나 힘겨웠을 때 시는 함께해줬습니다.” ‘중2병이 고교 때 왔다’고 떠올릴 만큼 쉽지 않았던 청소년 시절 시를 써 블로그에 올리며 방향을 잡아나간 경험이 그에게 있다. 더 거슬러 가면 “여덟 살 때 말도 느리고 받아쓰기도 못 하던 제게 엄마가 노트를 주시며 ‘너, 시를 써 보렴’ 하신 게” 처음이었다.” 그때 쓴 평범한 동시 ‘풍선’을 엄마는 듬뿍 칭찬했다.
대학 시절은 치열하고 풍성했다. 특출한 재능을 가진 학우들과 부대끼며 “현란한 합평” 시간을 보냈다. 대학에서 만난 여러 스승에게 특별히 고맙다고 했다. “문학과 인연을 맺었고, 돌이킬 수도 물러설 수도 없고, 최대한 나답게, 산책하듯, 오래 시를 쓰고 싶어요.” 젊은 시인 박유빈의 보기 좋은 ‘야심’이다. 산책하듯, 꾸준히, 줄곧 질문하며, 나답게.
▮단편소설의 김슬기
“소설은…체육관, 우리 감정을 단련하는 곳.” 단편소설 당선인 김슬기(35) 씨의 이 말은 잡념이 달아날 만큼 좋은 비유였다.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우리 삶 이야기. 그게 소설의 원천이잖아요. 다채로운 감정이 거기 담기고요. 저만의 체육관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소설을 즐겨 읽으면 공감력이 확 올라간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는 강연을 들어봤다. 복잡하고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꼭 필요한 게 공감의 힘이라는 주장도 많다. 김슬기 씨는 소설의 힘과 쓸모를 설득력 있게 들려줬다.
“1989년 울산 동구 화정동 출생”이라고 소개한 그는 울산 현대청운고를 나와 이화여대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했고 사회학을 복수전공했다. “언론 글쓰기는 남에게 많이 물어봐야 하는 점이 성격에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홍보·기획 분야 일자리를 택했다. “글은 쓰고 싶은데, 회사가 시키는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은 고단했다. 여러 번 이직하며 문화기획 일도 하게 됐다. 서울 용산구 노들섬 문화공간 꾸리는 일 등이었다. 6, 7년 전에는 독립출판 세계를 만났다.
퇴사한 뒤 독립출판사 암사자북스를 꾸려 책도 펴낸 그는 “글만 쓰는 삶을 2년째 사는데 자유·해방감·확신을 느꼈다”며 소설 쓰기 모임의 재미도 들려줬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즐겁게 쓰고, 쓰기를 통해 문화를 만드는 일의 매력을 나누고 싶어요.”
▮시조의 조은정
“엄마가 기다려주실까.” 조은정(55) 시조 당선인은 이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1969년 경기도 태생인데, 어머니가 8년 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병상에 계신다. 지난해에도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지만, 당선에는 이르지 못했다. “어머니께 뭐라도 하나 드리고 싶었어요.” 그 ‘무엇’에는 신춘문예 당선 소식도 들어있었다. 조은정 씨가 문학인의 운명을 타고났구나 싶은 느낌은 그다음 말에서 진하게 왔다. “병원에서 아픈 이들의 세상을, 아픔을 봅니다.” 세상의 아픔은 그의 문학으로 스몄다.
경기도 ‘완전 시골’이었지만, 권위가 있는 집성촌의 큰 집에서 자랐다. “자개장의 자개, 마당으로 지나가는 개미 떼, 할머니의 쪽 비녀, 조청과 다식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어린 시절을 그는 선명히 기억한다. 넋 놓고 관찰하는 소녀 모습이 떠올랐다. 도서관과 친했고, 아이 키울 때 최명희의‘혼불’에 흠뻑 빠졌고, 문학의 체계를 알고 싶어 방송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삶은 시조의 길로 이어졌다. ”생태·환경·생명·자연에 관해 공부하다 노자·장자를 만났고, 용인문학회에서 자연스럽게 시조를 만났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가 떠오릅니다. 자연과 생명에 관해, 나와 남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공감의 힘을 실감하는, 그런 시조를 열심히 쓰겠습니다.” 시조시인 조은정이 말했다.
▮동화의 서미경
동화 당선인 서미경(49) 씨와 이야기하는 내내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1975년 서울 태생인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다. 이야기의 힘을, 동화의 즐거움을 그는 잘 안다. “신참 교사 시절부터 ‘내가 좀 더 잘하는 것이 뭘까’ 질문하며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었습니다.” 서정오 선생의 옛이야기, 김용택 시인이 어린이와 함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쓴 글, 삶을 가꾸는 글을 좋아해 교원 연수에도 많이 참여했다. 그러면서 더 잘 알게 됐다.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아라, 효도하자, 학급경영을 잘해라 하고 말로 전하는 것보다 그때그때 필요한 옛이야기와 동화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훨씬 좋았어요.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컸고요.” 체계 있는 동화 공부를 한 지는 3년쯤 됐다고 한다. ‘동화세상’ 모임에서 이론도 배우고 강의를 듣고 직접 쓰는 활동은 큰 도움이 됐다. “첫째 아이는 책을 읽어주면 참 좋아했는데, 둘째 아이는 그렇지는 않았거든요. 근데 둘째가 울면서 끝까지 읽어달라고 한 책이 있는데 부산에 계신 배유안 동화작가의 ‘초정리 편지’였어요.”
서미경 동화작가는 “장편동화를 세 편 이상은 내고 싶고, 부산의 어린이·청소년서점 책과아이들 같은 공간 운영도 꿈꾸고, 경남 고성 동시동화나무의 숲에도 가보고 싶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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