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12] 로런스 위너의 태양 아래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4. 1. 2.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로런스 위너, 태양 아래, 1999/2000, 언어 + 언어가 가리키는 재질, 가변 크기, 서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커다란 전시실 벽 전면에 걸쳐 맑은 빨강으로 세 개의 영어단어 ‘UNDER THE SUN(태양 아래)’이 쓰여 있다. 어제가 1월 1일이었으니, ‘태양 아래’라고 하면 자연스레 해맞이와 새해 소망, 결심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만약 봄날이라면 따뜻한 태양 아래 만물이 소생하는 기운을 느낄 테고, 한여름엔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 아래 무더위가 지긋지긋할지 모른다. 환경 문제에 민감하다면 태양 아래 신재생에너지나 지구온난화를 떠올릴 것이고, 이도 저도 아니라면 ‘태양 아래 새로운 게 없다’ 같은 관용어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태양 아래 같은 사람이 없으니, 이처럼 단순 명료하기 그지없는 말을 듣고도 사람들이 저마다 떠올리는 광경과 느끼는 감정은 무수히 많다.

대표적인 미국의 개념 미술가 로런스 위너(Lawrence Weiner·1942~2021)는 작품을 만들 때 유화나 대리석 같은 전통적인 미술 재료가 아니라 언어와 그 언어가 가리키는 대상의 성질을 쓴다고 했다. 만약 작가가 태양을 그려 전시한다면 관람자들은 작가가 보고 해석한 태양만을 보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위너는 보편적 언어를 통해 개념만을 제시한다. 관람자들은 이를 각자의 경험과 지식에 비춰 해석하고 성정과 취향에 맞춰 심상을 떠올리는데 이게 곧 작품이다. 그러니 위너의 작품 앞에서는 누구나 작가가 되어 자기만의 ‘태양 아래’를 상상해 홀로 감상해야 한다. 결과물을 남과 비교할 수 없으니 우열이 없고 옳고 그름도 없다.

위너는 누구든 자기 작품을 아는 이가 그 소유주라고 했다. 아무리 작가라도 남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을 가져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태양 아래’는 여러분의 소장품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