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새해에는

경기일보 2024. 1.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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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헛된 바람일지라도, 가자지구 폐허 속에 낡고 허름한 일상이라도 복구되기를 바란다. 끊겼던 상하수도가 연결되고, 쓰러진 전주를 다시 세워 전기와 통신이 복구되고 헤어진 가족과 친구들의 소식이 서로 닿기를 바란다. 지뢰와 폭탄, 탱크가 헤집어 놓은 작은 평야에 다시 씨앗을 뿌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학교와 병원, 관공서가 다시 문을 열고 내일은 어떤 폭탄과 미사일도 날아들지 않을 거라는 확신과 안도로 하루가 잠들 수 있기를 바란다. 내일과 그다음 날들을 기대하고 내년을 계획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검고 기름진 평야에도 다시 세계의 식량창고를 채울 밀과 옥수수가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바람들이 공허한 것은, 비단 70%에 이르는 주택과 도시가 파괴되고 돌아갈 곳마저 사라진 가자지구의 현실 때문만은 아니다. 생사의 갈림길, 폐허와 공멸뿐인 전쟁의 실체보다 명분과 합리성을 포장하는 정치 언어가 의미 없는 주문처럼 횡행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고 겪고 있는 먼 나라의 총리, 대통령 등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전쟁 구호들의 공허함은 대부분 명분이 될 수 있는 상황의 통제나 관리 실패와 무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은 각자의 근본주의로 회귀할 것을 부추긴다. 한 번 시작된 전쟁은 이 허기지고 닿을 수 없는 명분을 채울 때까지 멈추지 못한다. 대부분 전쟁은, 전쟁을 일으킨 권력자들의 생존과 운명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쉽게 종결되지도 않는다. 이것이 전쟁체제가 당사자 국가와 국민들에게 씌우는 멍에다.

정치의 나태함과 무능은 불평등과 각자도생, 전쟁 등 극단적 상황의 자양분이 된다. 다시 그 위에 자유, 인권, 평화와 국익으로 위장해 세대와 남녀 시민들끼리 싸움을 부추기고 전쟁 불사를 부르짖는, 실제로 그런 위기 상황을 관리할 능력도 목적도 없이 오로지 권력만을 탐하는 극단적 정치세력이 등장한다. 전쟁 불사를 먼저 부르짖는 유능한 지도자는 없다. 이슬람국가, 유대국가, 나토의 동진과 러시아의 방어권, 이런 말들을 양극으로 밀어붙여 전쟁의 명문으로 삼는다. 이런 말들은 대체로 상대를 멸해야 이룰 있는 목적들이다.

이 전쟁을 보고 우리 정치인들이 어떤 진영에 속하든지 평화 공존의식으로 각성하기 바란다. 그래서 ‘체제 통일’과 ‘힘에 의한 평화’ 같은 모순된 정치 언어를 버리기 바란다. 전쟁 위기를 자신들이 권력을 탐하는 놀이쯤으로 여기는 세력이 발 붙일 수 없는 정치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탱크와 쏟아지는 포탄과 로켓, 미사일 아래서 죽음과 굴욕 외에 어떤, 살아남은 자들의 명분이 있는가. 전쟁이 가장 잘 안다. 인간이 만든 사회와 문명이 언제 가장 고통스러운지, 그래서 폭탄은 학교와 병원, 발전소, 교회와 사원, 곡물창고, 도로, 통신기지, 댐 위에 떨어진다. 제발 먼저 전쟁을 부르짖지 말고 만일의 하나라도 불씨가 될 명분과 물리적 상황을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유능함으로 경쟁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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