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고려의 이순신, 양규 장군
또다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나 보다. 여야가 내놓는 대국민 선거 쇼맨십은 이제 진부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혁신위, 비대위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들고 참신한 쇄신의 목소리를 내놓는가 싶더니 결국 돌아가는 속내는 내부 분열로 인한 신당 창당의 동력을 꺾고, 시대정신의 봇물을 일시적으로 피하려는 미봉책으로 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기득권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는 치졸한 응수이고 참 오래된 정치권의 히트치지 못하는 레퍼토리다. 국민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늘 그대로인지 아니면 개혁이라는 프레임으로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술수인지 그저 목불인견이다.
필자는 혁신이란 희생과 동의어라고 생각한다. 기득권의 포기가 전제돼야 한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가 신선함을 잉태한다. 대선 승리의 공신들은 알량한 정치생명 운운하며 버티고 패배한 야당은 한 줌의 권력 씨앗이라도 확보하려고 춘추분당시대를 반복 선언한다. 이런 사람들은 미래지향적 파워시프트 인재도 아닐 뿐더러 절대 대의를 생각하고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지도자의 깜냥도 가지지 못한다.
요즘 고려거란전쟁 드라마가 인기다. 1009년 ‘강조’의 정변으로 고려 7대 임금 목종이 폐위되고 현종이 옹립되자 요나라(거란) 황제 ‘성종(야율융서)’이 이를 명분으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는 제2차 여요전쟁이 스토리 배경이다. 이때 제일 먼저 막아선 장수가 흥화진을 지키던 ‘양규”다. 일주일간의 맹공을 방어해내자 성종은 여러 가지 회유책까지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이에 거란은 군사를 반으로 나눠 주둔과 남하 공격을 동시에 펼친다. 이후 진격하는 거란군에 의해 남쪽 고려 30만 주력군은 처참히 도륙당해 와해되고 서경까지 함락된다. 당황한 고려 신하들은 현종에게 항복을 주청했으나 홀로 항전을 외친 장수가 귀주대첩으로 유명한 강감찬이다.
일단 현종은 전라도 나주까지 도망가는 신세로 몰리고 고려 국운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전쟁의 흐름을 바꾼 이가 또 한 번 양규 장군이다. 양규는 7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나와 잔류 중인 거란 병사를 전멸시키고 수많은 고려 백성을 구해낸다. 거란 대군의 중간 보급기지를 압박했으나 성종은 회군하지 않고 오히려 수도 개경으로 곧장 진격하는 전법으로 응수하며 무자비한 약탈을 자행했다. 뒤늦게 현종의 피란 사실을 알게 되고 고려 사신(하공진)의 위계에 넘어가 철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상황으로 몰리자 그제야 본국으로 말 고삐를 죄는데 돌아가는 길은 역시 양규 장군이 준비한 피의 레드카펫을 밟지 않을 수 없었다. 요나라 본대와의 일전은 전력의 압도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종일 사투로 역전했다. 격전이 장기화되자 군사와 화살이 다 떨어져 모두 진중에서 전사했다(고려사 양규열전).
그런데 양규는 끝까지 퇴각하지 않고 부하들이 전멸할 때까지 무리하게 전투를 벌인 이유가 감동이다. 포로로 붙잡혀 있던 고려의 백성들이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그랬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양규는 원군도 없이 한 달 사이에 일곱 번을 싸웠으며 3만명의 포로를 구출했다. 본인의 사지가 눈앞임을 알았을 텐데 자신의 몸을 옥쇄해 가며 나라와 백성을 살린 진정한 영웅, 또 한 명의 성웅 이순신이다. 우리 정치판에서의 양규 장군은 진정 없는 것인가? 아무도 양규가 물러서지 않았던 지옥을 마주하려 들지 않고 오직 꽃길만 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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