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의 계절이 왔다. 양력과 음력의 시차 때문에 한 달 남짓 인사가 이어질 것이다. 이런 표현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스치듯 주고받는 의례적인 인사 속에 우리 모두의 강한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다.
새해에 우리가 받아야 하는 '복'은 과연 무엇일까. 동양 고전은 복에 대한 여러 해석을 일러준다. '복'(福)이라는 한자는 왼쪽의 '시'와 오른쪽 '복'이라는 글자가 더해져 만들어졌다. 오른쪽은 '배'를 뜻하는 '복'(腹)의 원래 글자다. 배가 두둑한 모습을 그렸다. '복'은 배가 두둑한 데서 시작한다.
'예기'는 '복이란 잘 갖추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또 '갖추다'라는 말을 '모든 일이 순조롭다'는 뜻이라고 풀어놓았다. 이렇게 보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새해에는 모든 일이 뜻대로 이뤄지세요"라는 말과 비슷하다. 만사형통에 대한 기원이다.
이런 풀이는 '복'을 물질적으로 이해하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한비자'는 복을 장수와 부귀라고 했다. '상서'에는 이른바 '오복'이 등장한다. 오복은 수(장수) 부(부귀) 강녕(건강과 안녕) 유호덕(덕을 좋아하기) 고종명(명대로 살다 편안하게 죽기)이다. 다섯 가지 가운데 수, 부, 강녕, 고종명이 건강과 장수, 부귀에 관한 항목이다.
이처럼 복은 사적이고 물질적인 충족의 상태를 일컫는 말이 됐다. 문제는 '복'이라는 한자의 왼쪽 글자가 '시'라는 점이다. '시'는 원래 신의 강림을 의미한다. 한자만 보면 충족의 상태는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이다. 사람은 제사를 지내 빌고 하늘이 그에 응답하는 구조다.
옛날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이 세상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복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그 결과를 맞이하는 과정이다. 복은 간절한 기원의 결과로 찾아온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는 쉽지 않다. 신의 강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은 함께 내리지 않고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는 말도 생겨났다.
해가 바뀌었다고 우리의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리는 없다. 저출생, 고령화, 빈부격차, 기후변화, 학교폭력, 세대갈등, 젠더갈등, 물가상승, 경제불황, 지방소멸, 인권착취, 실업과 자살, 난민과 이주민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는 새해에도 더욱 심화할 것이다.
올해는 총선을 앞둬 이런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정치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반목과 충돌이 이어질 것이다. 너나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새해가 되려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 모여야 한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힘을 내야 한다.
오복 가운데 유호덕은 덕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덕은 '크다'는 뜻이다. 덕은 사적이고 물질적인 게 아니다. 덕을 좋아한다는 말은 세상이 두루 평안해지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더 큰 세상을 꿈꾸는 새해에 복을 많이 받으려면 무엇보다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받아야 하는 복은 인간 주체의 적극적인 노력과 환경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과정이자 결과다. 때로는 제도를 바꾸고, 때로는 사상을 채우고, 때로는 관습을 세우고, 때로는 정서를 돌봄으로써 노력을 거듭할 수 있다. 복을 개인의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나의 배만 부른 상태가 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배가 부른 상태가 복이다.
'순자'는 '비슷한 이들이 함께 도리를 따르는 일'을 복이라 했다. 복에 관한 가장 추상적인 풀이다. 그래야 새해, 새 희망이 생겨난다. 희망은 복이 찾아오기를 더불어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자 노력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곱씹어 보면 그저 그런 의례를 넘어 간절한 바람을 담은 다짐이 될 수 있다.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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