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을 흩어지는 공동체] 1. 춘천 망대 [Ⅰ] 망대 그리고 춘천

오세현 2024. 1. 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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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의 좌표 망대, 마을의 상징에서 철거까지
춘천 약사명동 우뚝 솟은 건물
화재 경보·통금 시간 알림 역할
과거 판자촌 즐비했던 망대골목
이웃간 인심 나누며 고된 삶 버텨
아파트 건립에 망대 철거 앞둬
시, 모양 본뜬 목조물 설치 계획
도시개발과 보존 사이 의견 분분

도시는 근본적으로 이분법적이다. 땅과 건물을 나누고 공간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도시개발은 사람들이 모이고 떠나는 흐름의 속도를 높여놨다. 마을 또는 공동체는 사라지고 있다. 평생을 터전 삼아 지내던 이들은 도시개발과 함께 나뉘고 흩어지고 고립되고 있다. 올해로 창간 32주년을 맞이한 강원도민일보는 ‘사라지는 마을 흩어지는 공동체’를 연재한다. 재개발을 앞둔 춘천시 일대를 1년 간 밀착 취재, 마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누군가의 삶의 한 켠을 채운 역사를 반추하는 작업이고 강원특별자치도민들의 생존을 위한 이주(移住)를 기록하는 일이기도 하다.
 

▲ 도시 재개발은 과거와 현재, 남는 자와 떠나는 자를 나눈다. 고층아파트숲은 개발의 상징이지만 형해화된 도시의 또다른 자화상이다. 재개발을 앞둔 망대마을 주위로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줄지어 서있다. 김정호

[사라지는 마을 흩어지는 공동체] 1. 춘천 망대 [Ⅰ] 망대 그리고 춘천

춘천 약사명동 한 가운데 우뚝 솟은 하얀 건물. 그리고 그 아래로 뻗어 내려오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 마주오는 누군가를 만나면 둘 중 어느 한 사람은 한 쪽으로 비켜서야 통행이 가능한 그 곳. 서로의 옷깃이 스쳐 인연이 되고 그렇게 쌓인 정이 동네를 이뤘다. 모두가 어려웠던 그 시절이었지만 연탄 한 장을 나눠 피우고,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눠먹던 그 따뜻함은 매서운 삶의 칼바람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

■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박영예·정명자 할머니

 

▲ 정명자 할머니

“집은 쓰러져 가도 그래도 여전히 북적거리고 이웃좋은 그런 동네가 망대골목이지.”(박영예) “10원 벌겠다고 방에 모여 고스톱을 하며 밤을 꼬박 샜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떨던 추억이 엊그제 같은데..”(정명자)

70년 인연을 맺던 이들이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지금이야 번듯한 건물도 여럿 들어섰지만 70년 전만 모두 힘들고 어려웠을 때에도 유독 작고 초라한 곳이 망대 주변이었다. 전쟁 직후 춘천이 38선 아래에 갇히면서 이 동네에 터를 잡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사는 게 급해 엉터리로 만든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집이라고 하기 보다는 집 형태를 갖춘 곳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곳도 있었다. 박영예(91) 할머니와 망대의 인연은 70년이다. 서울에서 춘천으로 넘어올 때가 1957년. 멀지 않은 곳에 관공서도 있고 상권이 형성돼 이 곳에 살림을 꾸리기로 했다. 1974년 이사를 가도 가게는 망대에 남겨뒀다.

한 집에 방 한 칸씩 세를 들어 살았다. 박영예 할머니는 공무원과 교사, 장사하는 사람들과 방 한 칸씩을 차지해 함께 살았다. 어렵고 팍팍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이웃 덕분에 버틸 수 있던 삶이었다.

박영예 할머니는 “먹고 살기 참 힘들었던 때였는데 그렇게 힘들었어도 이웃끼리 사이가 좋았다”며 “음식을 하더라도 서로 나눠먹고 방 하나에 연탄 하나씩 해서 북적북적하게 살았다. 집은 쓰러져 가도 이웃은 좋은 그런 동네였다”고 했다.

그렇게 정겨웠던 이웃들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 망대를 떠난 이들도 있고 이 곳에서 함께 살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도 적지 않다.

정명자(81) 할머니에게도 망대골목은 ‘판자촌이 즐비한 동네였지만 ‘인심이 좋아서’ 버틴 세월이다. 정명자 할머니는 “한 방에 한 가족이 연탄 하나로 지냈다”며 “살기 편한 동네는 아니었지만 인심이 좋아서 버텼다. 집집마다 다 아는 사람들이고 아침이면 애들이 와서 인사도 했다”고 했다. 10원 벌겠다고 방에 모여 고스톱을 하며 밤을 꼬박 샌 기억,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 떨면서 서로의 인생을 나눴던 추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정명자 할머니는 망대에서 삶을 마무리 하고 싶다고 했다. 정명자 할머니는 “오막살이도 내 집이라고 내 집에서 죽으려 한다”고 했다.

▲ 춘천시 약사동 망대 위치


■ 망대와 사이렌

망대의 역할을 다 한지는 이미 오래 전 얘기지만 망대는 그 자체로 춘천 구도심의 상징이다. 망대가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나와있지 않다. 다만 일제강점기 시절에 만들어졌다고 추측할 뿐이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인 망대. 일제강점기 탈옥수와 화재를 감시하는 용도로 쓰였으며 1981년 춘천교도소가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부터는 마을의 공지사항을 전달하거나 화재경보를 알리는 용도로 사용됐다. 양구출신 박수근(1914~1965) 화백이 머물렀고, 춘천고를 졸업한 조각가 권진규(1922~1973)가 3년간 하숙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춘천 전역에 쩌렁쩌렁 울려퍼진 사이렌 소리, 망대에서 내려다 본 춘천의 절경은 지금도 주민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망대 주변에서 만난 연병국(76)씨는 “망대는 춘천에서 봉의산 다음으로 높은 곳”이라며 “비상상황이나 민방위훈련 때 사이렌이 울렸는데 그걸보고 ‘무슨 급박한 상황이 생겼구나, 지금은 훈련을 하는구나’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유미자(64)씨도 “어렸을 때 신북에 살았는데 망대에서 시작된 사이렌 소리가 신북까지 들렸다”고 했다. 춘천 전역을 들썩이게 한 사이렌 소리였으니 갓난 아기를 재워야 하는 젊은 엄마들은 아이가 놀랄까 맘을 졸여야 했다.

곽규환(86)씨 역시 “지금이야 초고층 아파트들이 많지만 옛날에는 망대에 올라가면 춘천시내가 전부 보였다”며 “동네 사람들에게 청소하러 나오라고 방송하면 동네 주민 모두가 나와서 청소를 했다”고 회상했다. 황건중(83)·목영수(80)씨 부부도 “망대에 올라가면 대룡산에서 서면까지 다 보였다. 밤이면 경치가 정말 좋았다”고 했다.

손목시계도 흔치 않던 시절, 망대는 주민들에게 시계이기도 했다. 통금이 있던 때 망대 사이렌 소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1번 울리면 ‘경고’, 2번 울리면 12시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고순옥(62)씨는 “망대에서 사이렌이 1번 울리면 순찰대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골목 골목을 뛰어다닌 기억이 난다”며 “집에 가지 못해 새벽 4시까지 밖에서 기다린 적이 있는데 시간이 그렇게 안 가는 줄 처음 느꼈던 순간”이라고 했다.

 

▲ 철거를 앞두고 있는 춘천시 약사동 망대

■ 망대의 운명

이런 이야기도 이제는 옛 일이 됐다. 약사명동 일원에 1468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망대는 철거된다. 춘천시가 예측한 철거 시기는 앞으로 2~3년 후다. 망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감안해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업 대상지 한 가운데에 망대가 들어서 있고 망대 자체가 언덕을 포함해서 지상에서 30m 높이에 이르기 때문에 이를 보존할 경우 특정 세대의 조망권이나 재산권 침해가 불가피하다는 게 춘천시의 입장이다. 대신 춘천시는 망대 모형을 목조로 본 따 이를 인근에 설치하고 모형 망대를 중심으로 역사문화 재생공간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망대 철거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입장은 복잡하다. 고순옥씨는 “망대가 없어지는 건 춘천시의 역사가 없어지는 셈”이라며 “망대까지 살려놓고 아파트를 지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보기에도 나쁘지 않고 80대 어르신들도 망대를 좀 더 보고싶어서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는데 망대를 중심으로 공원을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유미자씨는 “개발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망대를 이전한다고 하는데 우리 동네가 곧 망대인데 다른 지역에 있으면 의미가 없다”며 “아파트를 지어도 공원처럼 예쁘게 만들어 놓으면 그래도 관광자원으로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반면 박금선(73)씨는 “동네 발전을 위해서는 철거가 맞다고 본다”고 했고 나이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약사명동의 한 주민도 “동네가 낙후되면 새롭게 고치는 게 흐름이니 이를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이홍(73)씨는 “‘아파트 들어서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없애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파트가 높으면 망대가 제 역할을 어차피 할 수가 없지 않느냐”면서도 “망대 자체가 보존이 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오세현·양유근·이정호·이태윤·최우은·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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