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경영진, ‘혁신’보다 ‘돈벌어 떠나자’ 생각하는 이 많아”[인사이드&인사이트]
지난해 4월 카카오의 한 임원은 기자와 만나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의 과거 위기 극복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며 이 같은 고민을 토로했다.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인수 과정에서의 ‘주식 시세조종 의혹’이 불거진 직후였다. SK C&C의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장시간의 ‘카카오톡 먹통’ 사태에 이어 또다시 사회적 논란에 직면한 상태였다.》
카카오를 둘러싼 논란은 이후에도 확산했다. 에스엠 주식 시세조종 의혹으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구속된 데 이어 회사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과 홍은택 대표 등 6명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카카오(모빌리티)의 택시에 대한 횡포는 매우 부도덕하다”며 직접 플랫폼의 수수료 체계를 지적했다. 카카오를 둘러싼 논란과 비판이 누적되며 내부에서도 ‘창사 이후 최대 위기’라는 우려까지 나왔다.
현재 카카오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초기인 4년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카카오 주식은 2021년 성장 기대감에 따른 가파른 주가 상승으로 한때 17만 원대까지 오르며 ‘국민주’로 불렸다. 김 위원장의 모습과 영어 이름 ‘브라이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카카오의 캐릭터 ‘라이언’은 국민 캐릭터 대접을 받기도 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급변하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도 몇 년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카카오의 사회적 위상 변화는 연구 대상”이라고 말했다.
● 독이 된 스타트업식 고속 성장 전략
카카오는 스타트업식 고속 성장 전략을 택해 빠른 속도로 몸집을 불렸다. 네이버(옛 NHN)에서 나와 카카오톡을 출시한 김 위원장은 “100인의 최고경영자(CEO)를 육성하겠다”는 경영 철학을 강조했다. 혁신적인 사업 구상을 가진 벤처 기업인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카카오의 벤처투자사(VC) 계열사인 카카오벤처스(옛 케이큐브벤처스)를 2012년 직접 설립하기도 했다. 카카오 같은 새로운 스타트업의 등장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상당수 스타트업은 짧은 기간에 빠른 성장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외부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으며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는 경영 전략을 주로 채택한다. 이후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을 통해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고 성장에 이바지한 임직원들이 금전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임직원들의 새로운 도전과 각 계열사의 빠른 성장을 유도하는 전략은 카카오가 대기업 수준으로 커지면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카카오는 2019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글로벌 사모펀드(PEF)인 TPG와 칼라일그룹 등으로부터 2017년부터 누적 1조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카카오모빌리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PEF 등의 투자금 회수 압박이 커진 상황에서 IPO를 위해 확실한 수익 사업을 찾아야 했다.
이에 2021년 7월 유료 택시 호출 서비스(스마트호출) 수수료를 인상했다가 거센 반발을 샀다. 당시 유료 호출 수수료가 1000∼2000원에서 최대 5000원으로 인상되자 택시업계와 이용자들은 “플랫폼이 택시 요금까지 좌우한다”며 비판했다. 수수료 논란을 계기로 결국 김 위원장은 2021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3차례 출석해 “성장에 취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논란에 쐐기를 박은 것은 경영진의 ‘주식 먹튀’ 등 경영 윤리를 저버린 행위였다. 류영준 전 카카오페이 대표 등 임원 8명은 스톡옵션을 행사해 얻은 회사 주식 44만여 주를 2021년 12월 10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팔아 877억 원의 차익을 거뒀다. 카카오페이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지 한 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카카오 계열사 임원은 “혁신을 일으키고 회사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경영진보다 ‘제대로 돈 벌어서 떠나자’란 생각을 품은 이들이 더 많았다”고 전했다.
● AI, 클라우드 등 ‘딥테크’ 빠진 사업 확대
어느 산업보다 빠르게 트렌드가 변하는 IT 업계에서 기술력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한다. 카카오는 최근 몇 년간 ‘딥테크(deep-tech·첨단 기술)’를 통한 혁신이 아니라 플랫폼의 영향력을 통한 ‘수수료 장사’로 수익을 내는 것에만 집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국내 IT 업계 경쟁사인 네이버와 비교되는 점이 카카오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기본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출시한 검색 포털과 모바일 메신저, 콘텐츠 플랫폼 등 주요 서비스가 비슷하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 위원장과 홍 대표 등 전·현직 경영진이 네이버의 전신 NHN 출신이라는 점도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것에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네이버는 지난해 8월 한국어 기반 초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했다. 생성형 AI 기술 기반 검색 서비스인 ‘큐(CUE):’도 지난해 11월 30일 네이버 통합검색 기능에 적용했다.
반면 카카오의 AI 모델 ‘코(Ko)GPT 2.0’ 발표는 지연되고 있다. 카카오는 기술 계열사 카카오브레인을 통해 지난해 AI 모델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카카오는 AI 모델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와 공개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카카오 사정에 밝은 IT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달리 AI, 로봇, 클라우드 등의 분야에서 누구나 손꼽을 수 있는 기술 전문가를 육성하지 못했다”며 “이러한 이유로 해외에서 통할 딥테크 신사업을 키우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차기 CEO “시간 많지 않다”…쇄신 속도전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1일 사내 공지를 통해 “짧은 시간에 성공을 만들어내는 성장 방정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며 “기존 경영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기술과 핵심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올 초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계열사의 경영진 교체를 통해 ‘인적 쇄신’ 메시지부터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 차기 CEO로는 이미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가 내정된 상태다. 정 대표는 지난해 12월 18일 기자들과 만나서도 “시간이 많지 않다”며 빠른 쇄신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IT 업계에선 외부 독립 기구 형태로 설립한 ‘준법과 신뢰 위원회(준신위)’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준신위가 모범 사례로 참고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무노조 경영 원칙 폐기와 4세 경영 승계 포기 등의 성과를 냈다. 카카오 내부에서도 준신위가 김 위원장으로부터 ‘가족 경영 승계 포기’와 같은 선언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지민구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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