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창칼럼] 국정원이 간첩 수사 못한다니
해외첩보망 없고 전문인력 부족
수사역량 떨어져 안보공백 우려
22대 국회, 수사권 복원시켜야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함께 세계 최고 정보·공작기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중동지역 적대국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 국가안보를 지키는 데 막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대대적 기습공격 낌새도 파악하지 못해 충격을 줬다. 이집트 정보기관이 ‘큰일이 날 것’이란 정보를 줬지만 과소평가한 것이다. 정보 실패가 얼마나 참혹한 피해를 낳았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찰의 준비도 미흡하다. 경찰은 대공수사관을 지난해 6월 기준 462명에서 올해 7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경찰 내 비(非)수사인력을 재배치하는 수준이다. 대공수사를 담당할 경찰 간부의 절반은 이 분야 경험이 3년이 채 안 된다. 지난해 경찰 자체 평가에서도 대공수사 관련 과제들에 대해 ‘미흡’ 또는 ‘다소 미흡’으로 평가한 걸 봐도 그렇다. 이런 수준이라 고도의 훈련을 받고 날로 진화하는 간첩들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정원법 개정 후 3년 유예기간 동안 양 기관이 보완했어야 하지만 업무 이관도 제대로 안 됐다. 그 사이 정권이 교체되자 국정원은 내심 유예기간 연장을 기대하며 소극적이었고, 경찰은 대공수사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통상 안보·간첩 관련 정보는 기관 내에서도 부서가 다르면 공유하지 않는다. 하물며 국정원이 수십년간 쌓아 올린 국내외 대북 휴민트(인적 정보망)를 경찰과 공유하는 건 간단치 않은 사안이다.
정부는 국정원법 시행이 임박하자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부랴부랴 ‘안보 침해 범죄 및 활동 등에 관한 대응업무 규정’을 만들었다. 국정원이 국가안보에 반하는 행위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추적할 수 있고, 행정 및 사법 절차를 지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국정원이 제한적으로 대공수사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미봉책이라 양 기관이 힘겨루기를 할 소지가 있다. 이런 ‘땜질 처방’으로 국가안보를 다루는 현실이 불안하다.
간첩 수사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십년 대공수사 경험과 해외첩보망을 보유한 국정원에 해외정보만 수집해 경찰에 넘기라는 건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다. 대공 전문가들에게 경찰의 업무 보조만 하라면 의욕이 생기겠나. 수사권이 없으면 감청영장 받는 것도 어려워 해외 요원들의 대공 정보수집·채증 활동이 위축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국력 손실이자 안보 자해행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나라다. 국내에는 아직도 북한 체제를 추종하는 종북 주사파들이 암약하고 있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초 남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북한이 대남 적화 노선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국정원의 대공 수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여야 한다. 안보 공백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낳는다. 22대 국회는 국정원이 간첩을 잡을 수 있도록 대공수사권을 돌려줘야 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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