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오늘을 버티자’는 새해 목표 앞에서

김나현 2024. 1. 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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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를 촘촘히 채운 송년회와 신년회 자리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대화 주제가 있다.

지난해 미처 달성하지 못한 목표나 새해를 맞이해 새 마음가짐으로 성취하고 싶은 계획들이 줄을 잇는다.

"그저 하루를 버티자."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을 지원하는 센터 '사람을 세우는 사람들' 김재열 대표가 숙고 끝에 전한 새해 목표였다.

이들의 새해 목표는 김 대표와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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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를 촘촘히 채운 송년회와 신년회 자리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대화 주제가 있다. 바로 신년 계획. 지난해 미처 달성하지 못한 목표나 새해를 맞이해 새 마음가짐으로 성취하고 싶은 계획들이 줄을 잇는다. ‘서울에 내 집 마련’, ‘몸값 올려 이직하기’, ‘프랑스어 자격증 따기’, ‘대학원 진학’ 등. 각자의 원대한 포부가 고개를 든다.

‘올해의 트렌드’로 자산과 학력, 외모와 인성, 집안과 직업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육각형 인간’이 꼽힐 만큼, 새해를 맞이한 사람들은 ‘완벽’을 향해 도약할 준비를 다졌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다소 투박해 보일지 모를 신년 소망이 내 귓가를 두드렸다. “그저 하루를 버티자.”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을 지원하는 센터 ‘사람을 세우는 사람들’ 김재열 대표가 숙고 끝에 전한 새해 목표였다.
김나현 사회부 기자
김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고독사 관련 토론회였다. 그는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늘고 있는 청년층 은둔형 외톨이를 조명하며, 경제적 지원을 넘어선 ‘사회적 관계망’을 강조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수년간 집 밖을 나오지 않거나, 애써 직장을 구했다가도 몇 달 만에 다시 고립을 택하는 은둔 청년들을 치유할 사회적 관계망의 정체가 궁금해 추석 무렵 따로 연락을 했다.

당시 김 대표는 추석 명절을 맞이해 전을 부치고 갈비찜도 만들어 은둔 청년들을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자조 모임’ 센터로 초대한 참이었다. 연말 파티가 열린다면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 때 또 한 번 안부를 물었다. 결과적으로 파티에는 가지 못했다. 은둔 청년들에게 낯선 기자와의 인터뷰는 분명 부담이었을 텐데, 성급한 요청이었다. 대신 김 대표는 파티에 참석한 은둔 청년들이 전한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줬다.

연말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김 대표는 은둔 청년들에게 ‘대접받는 기회’를 선물해주고자 했다. 센터 사람들과 직접 끓인 조개 미역국, 마트용 닭갈비, 후원자가 보내준 김치가 전부였지만, ‘이곳만큼은 누구도 널 해치지 않는 안전한 공간’임을 알려주는 자리였다. 이러한 활동이 2년 차에 접어들자 학교와 직장에서 상처받고 고립을 택한 20대 청년들이 이제는 경기도 수원, 고양에서 서울 도봉구까지 하나둘 찾아오게 됐다. “집 밖에서 이렇게 밥을 먹은 게 2년 만”이라면서.

은둔 청년들은 아직 낯선 이를 두려워하지만 서로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고 있었다. 한 명은 제약사 임상시험에 참여해 어렵사리 번 돈으로 다른 친구들을 위한 대형 도시락을 사 왔다. 누군가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떽! 어디서 그런 소리를!” 외치며 다 함께 혼쭐도 내주고, 각자의 구직 활동을 응원하며 실패의 기억을 털어내고 도전에 익숙해지도록 서로를 격려해준다.

이들의 새해 목표는 김 대표와 유사했다. “오늘 하루만 버티자”, “하루만 더 살자”. 많은 이들이 ‘완벽’에 다가서기 위해 엔진을 켤 때, 은둔 청년들은 서로에게 등을 맞댄 채 ‘버티기’를 외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목표만큼이나 굳건하고 현실적인 목표에 그들이 만들어 갈 각자의 ‘완벽한 새해’를 응원하게 됐다.

김나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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