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은의멜랑콜리아] 팬덤과 테러
이미지 전쟁 일삼는 정치인들
왜곡·착취의 대상 될 수도 있어
팬덤 부숴야 미디어 테러 척결
두 가지 사례가 있다. 첫 번째 사례: 한 배우가 경찰 조사 중이었다. 몇몇 유튜버가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사생활을 유포했다. 바이럴 콘텐츠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배우는 결국 생을 마감했다. 두 번째 사례: 두 정치인이 있다. 둘은 서로를 ‘적’처럼 비난한다. 둘의 언어는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된다. 레거시 미디어는 이들의 언어, 태도를 추측과 뒤섞어 이차·삼차 파생 콘텐츠를 복제해 유포한다. 정책이나 비전은 없고 혐오만 난무한다.
두 사례를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둘 다 미디어 전쟁이자 미디어 테러다. 미디어가 소통이 아니라 전쟁과 테러에 이용된다.
사이버 레커 유튜버는 바이러스성 마케팅을 한다. 물건이 아니라 조작된 담론을 판다. 담론을 팔면 광고주가 돈을 낸다. 광고주가 사는 것은, 그러나 담론이 아니다. 구독자, 조회수가 광고주가 사들이는 상품이다. 그 담론을 퍼나르는 ‘사람’을 사들이는 것이다. 미디어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사용자 자신이 상품이 된다. 정치인 또한 미디어를 이용하면 할수록 미디어 환경에서 왜곡과 착취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디어 재난사회다. 미디어 환경이 사이버 부패와 사이버 테러를 낳고, 그 그물에서 착취당하고 희생되는 개인이 속출한다.
정치인은 미디어를 활용해 자기선전을 할 것이 아니다. 테러가 만연한 미디어 부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미디어를 이용해 이미지 전쟁을 하고 팬덤을 만들 것이 아니라, 팬덤을 만드는 미디어 환경을 전복시켜야 한다. 정치인들은 서로의 적이 아니다. 협상해야 할 경쟁자다. 경쟁자를 적으로 치환시키고 미디어 이미지 전쟁을 일삼는 정치 환경은 무능만을 양산한다. 미디어를 플랫폼 삼아 전쟁을 벌일 때, 정치가 해결해야 하는 산재한 문제들은 잊힌다. 이 때문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서로를 ‘열심히’ 헐뜯는 풍경은 마치 정치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미디어 노출 빈도가 높다. ‘한동훈’과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한동훈 페르소나’는 동일하지 않다. ‘한동훈 페르소나’에 열광하는 것은 공동체의 절망을 드러내는 증상이다. 팬덤의 시작은 ‘팬덤’이 아니다. 팬덤은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변혁을 열망했던 이들이 그 열망을 한 정치인에게 투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안에 대한 탐색이 대안적 인물로 전이된 것이다. 이것이 악순환을 만든다. 정치에 대한 환멸이 팬덤을 만들고 이 팬덤은 다시 더 무기력한 환멸로 이어진다. 팬덤 구성원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권이 만드는 왜곡된 스펙터클을 구경하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주권자 국민이 주인공이 아니라 입장료 내는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경계했다. 현재 미디어 환경에서는 모든 국민이 구경꾼이 될 수 있다. 정치도, 예술도, 사회문제, 사회악도 미디어 생태계에서 구경거리 스펙터클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은 입장료를 내고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다.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꺼이 구경꾼이 된다. 미디어 사용이 공짜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이 상품이 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한 위원장 또한 구경꾼에 의해 소비될 위험에 처해 있다. 한 위원장이 할 일은 ‘한동훈 이미지’가 스펙터클이 되지 않게 하는 일이다. 한동훈은 ‘한동훈 팬덤’을 스스로 허물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정치가 ‘게임’이 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정치가 게임이 되지 않게 하는 키는 한동훈 자신이 쥐고 있다.
한 위원장은 승리의 과실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다. 국회의원 불출마는 승리를 위해 헌신하되, 그 헌신을 헌신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헌신의 헌신은 불출마에 있지 않다. 자기 이미지를 스스로 허물면서 고독해지는 것에 있다. 그는 자신의 아우라를 해체해야 한다. ‘한동훈 이미지’가 옹립되고 재생산되는 미디어 역학과 싸워야 한다.
미디어 테러는 미디어 팬덤의 그림자다. 정치인의 팬덤과 미디어 전쟁, 유명인에 대한 미디어 테러는 동일한 현상의 이면일 뿐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팬덤을 허물어뜨릴 때, 미디어 테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한귀은 경상국립대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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