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민 위해 평생 모은 수집품 공개한 김종신 해성아트베이 회장
[헤럴드경제(부산)=임순택 기자] 김종신 (주)해성아트베이 회장이 부산시민들을 위해 평생 모은 수집품 1만여 점의 미술품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김종신 회장은 “관람객들이 거장들의 작품을 ‘가까운 곳에서 장치 없이 직접 볼 수 있게 하라’는 게 운영 철학”이라며 “문턱을 낮춘 만큼 시민들이 직접 다가가서 작품을 감상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해성아트베이에는 고미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미술 근현대사의 거장들인 김환기·박수근·이중섭·이우환·천경자 화가의 작품들도 전시돼 있다.
부산에 있는 한 미술관이 어떻게 이런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을까. 헤럴드경제는 1일 부산 남구 해성아트베이에서 김종신 회장을 만났다.
김 회장은 평생 미술과 함께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컸던 그는 홍익대학교 동미술대학원 현대미술을 졸업하고, 현재 해성예술문화재단 이사장직과 부산시 미술문화연합회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특히 문화재청 인가 사단법인 한국고미술협회 제23·24·25대 감사를 맡을 정도로 고미술에 대해선 해박하고 심도 있는 안목을 갖고 있으며, 감정위원도 역임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냐는 질문에 “초등학교 때 토끼와 거북이 그림을 구도를 잡고 그려 호평을 받을 정도로 그림을 그리면 곧잘 그렸다”며 “선조 중에 거장인 단원 김홍도가 있는데 그런 피를 물려받은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그가 운영하는 해성아트베이는 부산시·부산관광공사로부터 공매 낙찰받아 김종신 회장이 사비로 리모델링한 미술관이다. 부산 남구 용호만 전경을 앞에 두고 있으며, 규모나 콘텐츠 면에서 미술관을 넘어 자연경관, 주차시설, 다양한 작품, 카페 등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복합문화센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해성아트베이의 ‘해성’은 김 회장의 아호다.
김 회장은 해성아트베이 건립 배경에 대해 “문화 불모지인 부산에서 시민들이 좀 더 가까이서 문화재나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평생의 꿈”이라고 말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의 미술에 대한 애정과 부산 사랑은 실로 대단했다. 그의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해박한 지식에서 그의 경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문화 불모지’ 부산을 걱정했고 시민들이 함께 작품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강조했다.
해성아트베이는 총 3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1층은 대전시실, 2층은 1·2전시실, 3층은 세미나·문화강좌 등을 열 수 있는 해성어부촌 식당으로 구성돼 있다. 각 전시실 작품은 수개월마다 교체한다고 한다.
해성아트베이에는 특히 고미술품이 많이 전시돼 있다. 김 회장은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고미술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할아버지와 부친께서 (고미술 작품을) 좋아하셔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조상부터 모아 온 미술품에 더해 친구 등에게 기증받아 작품이 많이 모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생에 걸쳐 고미술품을 모아왔다.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의 복사꽃 피는 언덕 약 100호 그림과 조선시대 살림살이였던 소를 그린 이중섭 작품, 한국의 풍습을 그대로 재연해 정다움을 느낄 수 있는 박수근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이를 ‘최고 보물’이라고 소개했다. 고미술에 대한 김 회장의 관심에 2022년부터 해성아트베이도 ‘고미술 컬렉션전’ 같은 기획 전시를 선보였다.
김 회장은 “젊은 사람들은 고미술에 관해 지식을 쌓을 기회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한국문화의 뿌리에 대해 접할 기회가 적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동안 평생을 걸쳐 모아뒀던 작품을 재정리해 ‘조상의 얼과 한국의 뿌리’를 중심으로 기획전을 열고 싶다”고 했다.
이어 “다음 전시는 막사발로 불렸던 ‘이도다완’과 관련한 것을 준비하고 있다”며 “특히 정호다완은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유명하며 오사카성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설도 있다”고 덧붙였다.
2층 전시실은 과거와 현대가 공존한다. 1전시실에는 김환기·이중섭·김창열 등 근현대 유명 작가의 그림과 백자·청자 등 도자기를 한눈에 관람할 수 있다. 2전시실의 경우 카페 '향인정'에서 음료와 다과를 즐기며 문화재를 관람할 수 있다.
김 회장은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기획전을 준비하다 보니 관람 체류 시간도 늘어났다”고 평했다. 이런 고미술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김 회장은 한국고미술협회 감사 시절 ‘문화재청장 문화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신진작가 발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1전시실과 2전시실을 잇고 있는 복도에는 최근 제주 본태박물관에서 전시해 유명해진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비롯한 유경준 등 신진작가의 현대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신진작가전의 경우 해성아트베이 개관 이후 네 차례 진행됐고, 올해도 열 계획이다.
김 회장은 전시실과 카페가 함께 있는 구조에 대해 “미술관은 ‘쉼’과 뗄 수 없다“며 “전시실과 카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게 요즘 흐름”이라고 했다. ‘향인정’이라는 카페 명칭에 대해선 “고려시대 충남 부여의 누각 이름을 따 ‘향인정’이라고 지었다”며 “선조들이 그랬듯 향기 있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작품을 감상하고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해성아트베이는 갤러리 고유의 콘셉트에 맞게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조화하는 방식으로 기획전을 구상한다. 2021년 ‘근현대미술 걸작선’을 시작으로 최근 진행 중인 ’10대 거장전’도 마찬가지다. 10대 거장전의 경우 김환기·나혜석·박수근·이중섭·천경자 등 내로라한 작가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한 관광객은 “한두 작품만 있어도 미술관의 가치가 올라갈 만한 작품들이 여러 점 모여 있어 눈을 뗄 수 없었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준비하고 있는 기획 전시가 있냐는 질문에 “선조들의 글씨, 조선 민화, 달항아리 등 기획 중인 것은 많다”고 답했다.
그는 “선조의 어필(임금이 쓴 글씨)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현재 국내 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목판본인데 해성아트베이는 친필본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구·이승만·안중근·박정희·김대중 등 한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의 글씨도 보유 중”이라며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는 새마을운동 경남지역 지도자였던 친형이 직접 대통령에게 선물 받았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또 “조선의 얼을 보여줄 수 있는 민화전도 기획 중”이라면서 “황궁에서 그린 민화는 ‘궁중회화’라고 부르는데, 민화와 궁중회화를 같이 전시해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2층 전시실 곳곳에 놓여 있던 달항아리에 대한 기획전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달항아리전도 기대해 달라”며 “K-컬처(culture·한국문화)라는 게 곧 ‘전통문화’다. 보유하고 있는 조선 18세기 달항아리를 전부 꺼내 전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 회장은 불교미술에 관해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는 “올해부터 불교문화에서 최고로 쳐주는 수월관음도와 특별전으로 송나라 휘종황제의 해상상응도를 전시하고 싶다”며 “만약 기획전을 열면 꼭 봐야 하는 전시”라고 강조했다. 불교미술 작품의 경우 건축·조각·공예·회화 등 여러 영역에 걸친 작품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어 기획을 열기 어렵다는 평이 다수다.
김 회장은 ‘작품은 바로 눈앞에서 아무런 방해물 없이 직관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듯했다. 전시실에 전시된 문화재급이나 거장들의 작품 대부분은 손으로 만질 수도 있다. 더구나 그의 작품은 3년째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고가의 작품을 무료로 공개하면 재정난에 시달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돈을 들여 보는 전시는 문턱에서 봐야 하고 온갖 기물에 가려져 잘 보여주지도 않는다“며 “작품을 파는 일도 매우 적기 때문에 이 일(미술관 운영)이 개인적으로 이익이 남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이어 “이 일을 하면서 주변에서 여러 소리를 들었지만, 여전히 봉사하려는 마음이 굴뚝”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마지막으로 “선생 시절 학생들에게 자료로 직접 보여줄 게 없어서 아쉬웠다”며 “이렇게 많이 작품을 모았지만, 여전히 꿈은 문화 불모지인 부산에 모든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부산시민들에게 “3년 동안 질서 정연하게 한 점도 다친 작품 없이 관람해줘 감사하다”면서 “앞으로도 시민을 위해 무료 전시를 만들어가고 있으니 기쁜 마음으로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kookj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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