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핵 제한 전제로 한 대화 무관심…치명적 도발 가능성”
핵보유국 과시 거리낌 없어
트럼프 귀환해도 돌파 난망
한반도 정세, 북한이 주도
동맹 압박 통해 억제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강 대 강, 정면승부의 대미 원칙’을 내걸고 핵무기 생산 지속과 추가 위성 발사를 시사한 데 대해 시드니 사일러 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담당관(사진)이 “북한은 핵 능력 제한을 전제로 하는 어떤 종류의 대화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김 위원장이 대남 도발을 예고한 것에 대해 “연평도 포격과 같이 서해상에서 긴장을 높이는 치명적 도발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일러 전 담당관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경향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김 위원장의 ‘신년사’ 격인 노동당 전원회의 발언과 관련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불가역적 핵보유국’이라고 말하는 데 더욱 거리낌이 없어졌다”며 “북한은 대량살상무기(WMD) 역량과 목표를 어떤 식으로든 중지·제한하려는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북한의 정치적 의도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온 측면이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가 귀환하면 북·미관계 돌파구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은 과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2024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후 담판에 나서기 위해 강경 대미 노선을 천명했다는 관측에 거리를 둔 것이다.
현재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으로 있는 사일러 전 담당관은 30년 넘게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 국가정보국(ODNI) 등에서 대북 정보 수집·분석을 담당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한국·일본담당 보좌관, 국무부 북핵 6자회담 특사 등을 맡아 북·미 핵협상에도 관여했다.
사일러 전 담당관은 ‘남조선 전 영토 평정’ 등 대남 고강도 도발을 예고한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놀랍지 않고, 과거 발언의 연장선”이라면서도 “전략적이고 전술적 함의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북한의 대비태세를 고려하면 김정은이 당장 상황을 제어할 수 없는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2010년 연평도 포격 등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고 공격을 억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국방·통일장관 등 남측 지도자들의 (강경) 발언을 빌미로 삼을 것”이라면서도 “실제 한반도 긴장은 상당 부분 북한의 통제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북한이 쥐고 있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통일 성사가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선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대한민국 지도자들이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통일이나 공존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는 인식이 깔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북한이 대화를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상황”이라면서도 “어렵더라도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고 북한의 핵무력 신장을 제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맹·파트너와 함께 제재와 압박을 가해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한·미 워싱턴선언이나 핵협의그룹, 3국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 국무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한 경향신문 질의에 “미국은 북한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추구한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해왔다”며 “북한이 전례 없는 수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상황에서도 외교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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