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핸 외면 말고 들어주세요…힘든 이들의 간절한 외침을”
이태원 참사 유가족
“꼭 진상규명의 해 됐으면”
전세사기 피해자들
“특별법 개정안 외면 말라”
고 김용균씨 어머니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를”
“새해에는 국회가 이 앞에 모여든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었으면 한다.”
2024년이 시작된 1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 설치된 천막 농성장 안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이주영씨 아버지 이정민씨와 유가족들이 새해 첫날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파란색 천막에는 “국회는 신속히 특별법 본회의 통과시켜라!”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천막에서 밤을 지새웠다는 이씨는 “연휴든 휴일이든 우리가 여기서 국회를 지켜보고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어 국회 앞 농성장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국회 앞에선 이씨를 비롯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전세사기 피해자, 중대재해처벌법 유예에 반대하는 노동사회단체 등 많은 이가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왔다. 해가 바뀌었지만 국회 정문 앞 70m 거리에는 여전히 천막 서너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국회 통과를 새해 소망으로 꼽았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인 이씨는 “올해는 진상 규명의 해로 만드는 것이 새해 각오”라며 “오는 9일 특별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어 “조사기구가 발족해 빨리 조사를 시작하면 제일 중요한 원인 규명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법적 책임만 따지는 수사로는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겨울 눈 위에서 오체투지를 벌이고 새해 첫날 농성장에 남은 이유도 이를 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씨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결국 국회밖에 얘기할 곳이 없으니 농성장으로 모이는 것”이라며 “국회가 힘든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고민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태원 유가족에게 농성 자리를 물려주고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촉구해왔다. 개정안은 지난달 2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본회의에 앞서 60일 안에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철빈 전세사기 전국 대책위원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긴 싸움이 예상된다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전세사기로 연초부터 연말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지난 연말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와 관련, 순식간에 대대적인 정부 지원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많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며 “국회는 올해 일상을 회복하려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특별법 개정안을 뒷전으로 외면하지 말고 치열하게 고민해달라”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지난달 28일 국회 앞 천막에서 1박2일 농성을 벌였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힘들게 만든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이 또다시 유예되지 않을까 우려해 급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중대재해법은 오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전면 시행될 예정이나, 정부·여당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쪽으로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힌 터다. 김씨는 “모든 사업장에 중대재해법이 적용돼서 다른 죽음을 막는 것이 새해 소망”이라며 “국회가 자기들 안위만 챙기지 말고 국민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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