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빈곤과 고립이 없는 세상을 바라며
2024년 새해 아침은 춥지 않아서 일출을 보기에 좋았다. 해가 솟아오르기 전에 이미 하늘은 밝다. 지평선 위로 훌쩍 올라오기 전부터 해는 하늘 어느 한 곳도 빠뜨리지 않고 고르게 비춘다. 하지만 시선을 하늘 아래로, 건물들로, 도로로, 우리가 사는 이곳으로 내려보면 빛은 그다지 고르지 않다. 어느 곳은 햇빛이 가득한 양지이지만 또 다른 곳에는 그늘이 너무나 짙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100명 중 15명가량은 빈곤하다. 65세 이상 노인이라면 그 비율은 100명 중 약 40명으로 올라간다. 나이가 더 많은 고령노인일수록, 혼자 사는 노인일수록 빈곤할 확률은 특히 더 높다. 일례로 며칠 전 발표된 폐지수집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나이는 76세로 고령노인이 많은데, 80% 이상이 소일거리가 아닌 생계를 위해 일한다. 그럼에도 약 월 130시간 폐지 줍는 일로 얻는 소득은 16만원이 채 못 된다. 노인일자리사업 임금도 대부분 30만원 이하이다. 빈곤한 노인은 자녀를 비롯한 주변 사람과의 교류가 적어 고립되기 쉽다. 몸의 질병도 문제이지만 외로움 등으로 마음의 건강 역시 챙기기 어렵다. 우리가 흔히 행복의 조건으로 말하는 타인과의 교류, 몸과 마음의 건강은 소득계층에 따라 크게 불평등하다.
노인기 빈곤은 갑작스럽게 발생하기보다는 이전 시기부터의 문제가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중장년기의 고립과 빈곤은 과거에 비해 심화되었다. 정년은 빨라지고 일자리는 불안정해진 상태에서 중장년기는 더 이상 경제적 안정성이 확보된 시기가 아니다. 고시생들이 살던 고시원은 홀로 사는 중장년층으로 칸칸이 채워졌다. 생애 단계를 더 거슬러 올라가 청년들의 고립과 불안정성 역시 심각하다. 극단적으로는 청년기 자살은 그 비중이 약 4분의 1이 되었고, 특히 20대 자살은 최근 5년간 43.9% 증가하였다. 우리 사회는 한 해에 20대 청년을 1500명 넘게 이런 방식으로 잃고 있다. 고용 불안정성, 주거비 등과 얽힌 경제적 고통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전 세대에 걸쳐 가족이라는 끈은 약화되었고, 개인은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생계의 중심인 일자리의 불안정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빚에 기댄 결과, 그로 인한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것이 2024년으로 넘어온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바꿔내야 할 현실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는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이렇게 보면 빈곤과 불안정성, 고립의 문제는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어떤 부분에서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그래서 2024년 사회복지와 사회정책의 역할은 중요하게 조명될 것 같다. 복지는 약자에 대한 배려이기보다는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한 보장이자 개인을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는 장치이다. 그렇다면 어떤 접근을 해야 할까? 복지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환영해야 할까? 선거를 앞두고 반짝 4월까지만 복지가 이슈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길 바라본다. 복지는 선거정치의 수단이 아니라 정치의 목적일 때 제대로 다룰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의 표면만 건드리게 된다.
우선 삶의 기본 조건으로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길 기대한다. 또한 한층 심화되는 시장화 흐름 속에서 주거, 의료, 돌봄의 공공성 등을 확보하는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사회복지에 고질적인 공공성의 결핍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복지는 그 질을 개선하기도, 모두에게 고르게 전달되기도 어렵다. 마지막으로 실업·은퇴·질병 등의 상황에서도 삶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보험제도가 제대로 보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중요하다. 올 한 해 선거와 무관하게 한결같이 이 모든 것을 우리 사회가 끝까지 고민하고 실행해내길 기대한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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