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철학자’가 되고픈 당신을 위한 몇 가지 조언

이민아 2024. 1. 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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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남편에 대한 다정한 뒷담화’, ‘300페이지에 달하는 러브레터’로 읽히는 에세이 <행복한 철학자, 우애령 글 엄유진 그림>. 엄마의 글에 딸의 그림이 더해져 지난 11월 개정증보판으로 출간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는 ‘년 전의 우리 꿈이 현실이 되었다’는 딸의 말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엄유진 작가는 지난해 11월 어머니인 우애령 작가가 철학자 남편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펴낸 에세이 행복한 철학자에 자신의 그림과 동화를 더해 지난해 11월 개정증보판으로 출간했다

다행스러운 건 엄 작가가 어머니의 ‘강점’을 닮았다는 겁니다. 그녀는 막연히 슬퍼하는 대신 엄마의 특별한 순간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SNS로 질문을 받아 엄마에게 묻고 답변을 인터넷에 올렸죠.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엄마는 사람들에게 힘을 줍니다. 우애령 작가의 유쾌하고 명쾌한 답변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질문을 모아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다음은 철학자와 아내, 딸의 대화를 정리한 것입니다. 엄 작가가 인터뷰어 역할을 맡아 답변에 딸에게 이야기 하는 친근한 말투가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엄유진 작가의 어머니인 우애령 작가는 특유의 유쾌하고 명쾌한 화법으로 독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펀자이씨툰 sns 캡쳐

Q. 인스타툰이나 책 속에서 작가님과 가족들의 티키타카를 본 독자들은 공감할 텐데요. 작가님은 언제나 유쾌하고 명쾌한 화법을 구사하시는데, 작가님도 고민이 있으세요? 철학자의 아내 이 세상에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어. 단지 고민을 늘리는 사람들이 있지. 사람들이 고민을 너무 어려운 걸로 생각하는데, 고민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문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풀어가고 싶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어. 나도 고민이 있지. 하지만 고민에 정성들여 물을 주고 넝쿨처럼 키우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해. 내 강점은 문제가 될 것 같다고 판단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때까지 막아보고, 터져 버렸다면 감정을 빠르게 전환시키는 힘이 있다는 거야. 제일 중요한 것은 이거야.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철학자가 당진의 다 쓰러져가는 작은 시골집을 사겠다고 했을 때, 사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격렬히 저항하다가도 이미 샀다면 잔소리 말고 내버려 두는 것처럼. (웃음)

Q. <행복한 철학자>를 보면 어느 가정에나 한 번쯤 있을 법한 불화나 위기의 순간은 사실 잘 감지되지 않거든요.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어떻게 이겨냈는지요? 철학자의 아내 가정에 찾아오는 불화와 위기는, 가족들이 힘을 합해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 보라는 시간이지 가족 간에 갈라서서 서로에게 창을 겨누라는 시간이 아니야. 가정 내로 찾아오는 위기는 가족 간의 힘을 탄탄하게 하는데 사용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지나보냈어. 딸 하지만 그러한 어머니도, 아버지 때문에 집을 나가겠다고 집을 뛰쳐나가신 예가 있지 않습니까? 철학자의 아내 생각해 보세요. 그래야지 그 다음에 정신을 차리고 잘 하지. (웃음) 그래서 처방이 중요해. (웃음) 뭉친 걸 제 때 풀지 않으면 골이 깊어져서 대단한 불화로 돌아올 수도 있잖니. 속으로 곪고 곪다가 한 번에 터져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보다, 소방관이 불을 끄듯 불화가 생기면 초기에 진화하는 것이 좋아. 내버려둬서 불화가 커지면 자기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거든. 진짜 집 나가서 돌아오지 않을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나가지. 나처럼 수작이 많을 때에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는 반성해라’ 이런 의미야.(웃음) 딸 가족 간에 성향 차이로 갈등이 생기는 경우라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철학자의 아내 마음에 들지 않는 문제들을 일일히 문제 삼기보다, 내가 정말 참지 못할 선을 정해 놓고 그것을 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도 기꺼이 허용하는 편이야. 예를 들면, 철학자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와 물질적 결핍으로 인해 겪었던 상실감을 이해하게 되고 그에 대한 연민이 생긴다면, 거부감이 누그러들거나 동화되는 일도 있었어. 그리고 몇 번의 마찰을 겪은 뒤에는 철학자도 아내가 어디까지의 허용선과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면서 나름의 기준과 전략을 세우게 되었지.(웃음)

결과적으로 나는 물건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터득했고 철학자는 최소한의 물건만을 들여오는 안목을 지니게 되었어. 평화와 타협은 한쪽의 무한한 희생과 배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쌍방간에 이루어지는 이해와 신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 모든 사람은 제각기 다르게 생겼고, 약점이나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철학자 사물이나 상황을 대할 때 그것의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현상만 보면 갈등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어. 그런데 좀 더 깊이, 넓게 보면 어떻게든 서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가 드러나거든. 그리고 그 구조가 드러날 때 서로 다른 두 사람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거야. 그렇게 공통된 가치관이나 인생관, 세계관으로 접목이 되면서 즐거운 소통이나 서로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질 수 있게 돼. 그러면 이런 저런 불화나 갈등이 있어도 그게 너무 큰 위기로는 잘 번지지 않게 돼. 딸 자신이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큰 위기나 불운 앞에서는 어떻게 대처하시는지요? 철학자의 아내 누가 녹음이라도 할까봐 두렵지만, 나는 어쩌면 훌륭한 사람일지도 몰라(웃음). 닥쳐오는 불운 앞에 강하거든요.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막을 수는 없어. 생각하기 나름만으로는 안되는 것도 있고, 치유되지 않는 불행도 있지만, 다르게 바라보는 힘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닥쳐온 불행을 완화시킬 수 있지. 어린 시절 부도가 나서 아버지 어머니가 정신을 잃기에 이른 적이 있어. 나는 빨리 판단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직접 부모님의 식사를 챙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어. 무엇보다 사람이 다치면 희망이 사라지는 거라고 생각했어. 건강하게 살아만 있다면, 다른 물질적인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회복시킬 수 있다고 믿었지. 부모에게 어려운 일에 닥쳤을 때, 그래도 자식들은 내 편이라고 생각한다면 훨씬 더 기운을 낼 수 있어. 그런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식들이 부모의 판단력을 비방하고 자신의 상황을 비관한다면 상황은 더 어려워지겠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가족 간에 진짜 중요한 것은, 이미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공격하지 않는 거란다. 삶에 지친 철학자는 즉흥적으로 당진행 버스에 몸을 싣고 아버지의 고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풍경이 세월이 흘러도 삼삼하게 떠오른다고 소설가에게 털어놓자 소설가는 홀로 그 장소를 찾아가 보았다. 소설가는 철학자를 위해 150년 가까이 된 낡은 농가를 마련하기로 결심하였다. -행복한 철학자 中

우애령 작가와 남편인 행복한 철학자 엄정식 교수

Q. 행복한 철학자를 보면서 두 분이 부럽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어서일까요. 요즘은 비혼주의 청년들이 많잖아요. 그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있으세요? 철학자의 아내 “그건 전적으로 당신 마음에 달렸다.”라고 해도 될까? 결혼은 하라고 권할 일이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말해볼 수는 있겠지.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그런데 당신이 다른 그림자를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면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낫다. 상대방을 위해서도. 하지만 빛을 위해 그림자를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어머어머, 방금 내가 한 말이 너무 멋져서 까무라치겠어요. 좋은 배우자는 어느 정도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거야. 어딘가에서 완벽하고 나만을 위하는 사람이 뚝 떨어지는 일은 없거든. 나 같은 경우도, 이런 덜렁대고 괄괄한 성격을 장점으로 해석하고 수용해주는 동반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좋은 배우자가 되기 힘들었을 거야. 성인의 관계는, 양보를 받는 만큼 자신도 배려해야 하는 것, 상대를 바꾸려고 하는 만큼 나 자신도 바뀔 수 있어야 해. 혼인이다 비혼이다 하는 것을 너무 의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상하게도 결혼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정답이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유난히 공격적이 되거나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훈시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거든.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혼에 대한 화제는 인간들이 있는 한 지구상에서 없어지기 어려울 예정이야. 서로 달리 할 이야기가 없거든.(웃음) 그렇다면 결혼이란 혼자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에서 좋은 벗을 만나 의논껏 살아가는 제도적 장치이다,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 철학자 나는 ‘내가 나로서 나답게’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가를 이야기해주고 싶어. 왜냐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를 때 인생을 표류하게 되고 목적 없이 방황하게 되기 때문이야. 그럴 땐 ‘게임할 때 좋은 기보를 남긴다’, ‘좋은 바둑을 둔다’ 하는 느낌으로 그때그때 상황에 충실하기를 바라. 그러면서 자기가 가진 생각의 틀보다 ‘조금만’ 더 넓고 깊고 멀리 보려고 노력을 하는 거지. 세월이 흐르면서 자기 자신도 늘 변화해. 결혼 상대를 통해서도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거나 창출할 수 있어. 그런데 결혼 상대가 자신의 불변하는 자아를 지켜주는데 공헌하기만을 기대하면 안 되지. ‘결혼을 통해 제3의 창조적인 자아가 만들어질 수 있다’ 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해. 인간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자아라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고정된 망부석 같은 것이 아니거든. 자아를 발견한다는 것은 유기적으로 시시각각으로 재창출되는, 새로운 나를 등장시키는 창조적 작업에 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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