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과 삶] 2024년에는 ‘해방’의 단초를 만들 수 있을까
별 감흥 없이 새해를 맞았다. 영락없이 2024년은 청룡의 해라는 말들이 SNS에서 돌아다닌다. 갑진년이니까 용의 해이고, 청룡의 기상으로 비상하자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무엇으로 올해 비상할 수 있을까? 여의주는 찾을 수 있을까?
연말에 눈도 내리고, 겨울비도 내리고, 길도 얼었다 녹다를 반복했다. 궂은 날씨를 탓하며 두문불출하고 있는데, 아내가 드라마를 보자고 제안했다. <나의 해방일지>, 2022년에 ‘추앙하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던 그 드라마다. 회당 1시간 이상 되는 분량이고, 16회라서 엄두도 못 내다가 이번에 도전했다. 서울이라는 노른자를 감싸고 있는 흰자에 해당하는 경기도 ‘산포시’에서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는 염씨 3남매의 행복 찾기 여정을 그린 드라마다. 박해영씨는 <나의 아저씨>로 익숙한 극작가이고, 주위에서 꼭 보라고 권유를 많이 받았던 터라 졸린 눈 비벼가며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추앙’이라는 말이 참 거북했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지긋지긋한 인간관계들 속에서 말도 못하고 연기하면서 ‘조용히 죽어가는’ 현대 직장인들, 그들은 인생 한순간도 오롯이 지지와 응원을 받지 못했다.
“우리 진짜로 하는 건 어때요? (중략) 어디에 갇혔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갇힌 것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해방… 좋다!”
여전히 해방출구 찾아 분투 중
2022년 상반기에는 <나의 해방일지>가 히트를 쳤다면, 하반기에는 정지아 작가가 쓴 <아버지의 해방일지>란 소설이 나왔다. 묵직하게 무게감 있는 ‘해방’이란 말이 시민들에세 회자되는 희귀한 현상이 휩쓸었다. 그것은 드라마이든 소설이든 현대인들이 짓눌려 살기 때문일 것이다. 정지아의 아버지는 이데올로기에 질곡 많은 삶을 살다가 죽음으로 해방되었다면, 박해영의 드라마에 나오는 직장인(=시민)들은 아직 해방을 하지 못했다. 살아가면서 해방을 향한 출구를 찾기 위해 분투 중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도 해방일지를 써보고 싶었다. 새해 연초이니 올해의 해방일지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한 해 좋은 일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정치는 더욱 희망이 없어졌다. 경제는 회복되지 않는다는데 부자들만을 위한 감세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아예 정책과 예산에서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폭도’로까지 매도되고 탄압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기후위기 징후는 뚜렷하고, 이러다간 인간 종의 멸종까지 불러올 게 확실한데도 도리어 정책과 예산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대한민국을 넘어 국제사회로 눈을 돌리면 지금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의 학살이 진행 중이다. 기존의 인류 보편의 가치가 부정되고, 국제질서는 심각하게 야만적인 시스템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런 모든 경향성의 뿌리에는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자리 잡고 있다. “언론의 자유, 신념의 자유, 공포와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천명했던 75년 전 세계인권선언에서 했던 인류의 약속이 빠르게 지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면서도 인류는 눈앞의 이권다툼에 골몰하면서 열심히 지옥으로 빠져들고 있다.
세월호 10주기서 해방단초 모색
그럼에도 나는 올해의 해방 목록을 만들고, 해방일지를 작성해보려고 한다. 4월10일 22대 총선에서는 무엇보다 생명존중과 안전사회를 위해 일한 후보와 정당에 투표할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기후위기에 맞서는 대안 정치를 제시하는 정치세력의 탄생을 응원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야만적인 학살에 저항하는 활동에 연대해가고 싶다.
올해 4월16일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총선 엿새 뒤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위원회가 만들어져서 함께할 시민위원을 모으고 있다. 함께했던 10년의 기억도 수집하고, 전국 도보행진과 4160명의 시민합창도 준비되는 등 많은 일들이 시작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통해 갑갑한 현실을 뚫고 나갈 ‘해방’의 단초라도 만들어보고 싶다. 해방하고 싶다면, 진짜로 해보는 거다. 오늘로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105일 앞으로 다가왔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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