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그럴수록 앞을 보세요
새해를 맞아 운동을 새로 시작한 독자들을 응원하며 나의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어릴 적 의료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이후로 서른 살 가까이 되도록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운동 시설조차 찾을 수가 없어, 모니터 앞에 앉아 유튜브에 ‘장애인 체조’라고 검색하고는 5분 동안 손목을 이렇게 저렇게 돌리며 만족하는 것이 내가 아는 운동의 전부였다.
어느 날 운이 좋게도 뒤틀린 몸의 회원 등록을 받아주는 헬스장을 찾게 되었고, 더 운이 좋게도 나를 대상으로 개인 수업(PT)을 도맡겠다는 운동 선생님까지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천장 누수로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당시 첫 체육관의 첫 헬스 트레이너 선생님은 운동에 입문하는 나를 향해 한 가지 지도를 끝없이 반복했다. “그럴수록 앞을 보세요”라는 간결한 명령.
운동을 처음 배울 당시, 누구나 쉽게 들 법한 무게의 아령조차 나에게는 벅찼다. 무엇이든 무겁다 느껴지는 것들 앞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아등바등 힘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그럴 때면 내 옆에 선 채로 운동 자세를 봐주시던 선생님은 근육이 아닌 표정을 보며 “눈 감지 마세요. 그럴수록 앞을 보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하곤 했다. 그의 호통 아닌 호통을 마주할 때마다 깜짝 놀라 이내 눈을 뜨긴 했지만, 다른 동작을 시도할 때가 되면 다시 눈을 감고 말았고, 그는 나를 향해 한동안 같은 경고를 반복해야만 했다.
올바른 자세만 취하면 되지 표정까지 그다지도 중요할까 싶은 마음에 선생님께 짜증을 섞어 물었다. “왜 자꾸 눈을 감지 못하게 하는 거죠? 저는 눈을 감고 집중해야 힘이 덜 들어요.” 그가 내게 말했다. 운동 경험 없는 사람이 무거운 기구를 들어 올리는 게 간단치 않다는 걸 안다고.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무게에 휘둘려 균형이 무너지기 쉽다고. 힘들수록 눈을 감지 말고 떠야만 자세를 놓치지 않는다고. 자신의 모습을 쉼 없이 마주할 수 있어야만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고. 눈을 뜨는 건 곧 나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그는 늘 시야를 앞에 둘 것을 강조했다. 정면을 향한 두 눈과 숙이지 않은 목. 어려운 동작을 수행할수록 시선을 놓치지 않는 것이 몸과 마음을 지키는 첫걸음이라 말했다.
힘든 상황이 닥칠 때마다 체육관의 풍경이 뜬금없이 기억나곤 한다. 중요한 작품 발표를 앞두고 예고 없이 떨려오는 긴장에 온몸의 힘이 다 풀리는 것만 같을 때도 운동하던 순간을 기억하며 앞을 볼 것을 스스로 주문한다. 또, 끊어진 연 속에 겨우 연락이 닿은 어머니와의 전화통화 속에서 당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핸들을 그대로 놓칠 것만 같은 가파른 봉천고개 낡은 도로 위에서 그의 조언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눈 감지 마세요. 그럴수록 앞을 보세요.” 그때 눈물을 닦으면서 다짐했다. 앞으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눈을 뜨자고. 고개를 꺾지 말고, 눈도 감지 말고, 앞을 잃지 말자고.
다가올 한 해, 감당하기 힘든 힘겨움이 닥쳐오는 순간 당신의 시선만큼은 잃지 말기를 바라며. 균형을 잃지 않은 채로 당신이 당신을 지킬 수 있도록.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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