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필요한 회색지대 여전히 필요"...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본 '사법과 AI'

김나연 2024. 1. 1. 20: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연말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AI)이 사법영역에 미치는 명암을 제시했다.

AI가 저소득층엔 높기만 한 '법의 문턱'을 낮춰 주는 것은 맞겠지만, "기계는 법원의 핵심 행위자(판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게 로버츠 대법원장의 진단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보고서에서 "기밀 정보를 AI에 입력하면 나중에 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 연말보고서 제언
"저소득층 사법 접근성 높일 수 있지만
미묘한 신호 포착·사실 추론에는 한계"
윤리 강령·트럼프 등 현안 언급은 피해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지난해 2월 7일 워싱턴 의사당에서 연방 상·하원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연말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AI)이 사법영역에 미치는 명암을 제시했다. AI가 저소득층엔 높기만 한 '법의 문턱'을 낮춰 주는 것은 맞겠지만, "기계는 법원의 핵심 행위자(판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게 로버츠 대법원장의 진단이다. 이 같은 견해는 13쪽 분량으로 미 연방대법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2023년 연말 보고서'에 담겼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영어로 적혀 있는 이미지. 로이터 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로버츠 대법원장은 AI가 사법 영역에 적용될 때 긍정적 효과가 일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AI는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사법 접근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문서 작업, 행정 절차 등에서도 편의성을 높이며 법적 조력이 시급한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혼란과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보고서에서 "기밀 정보를 AI에 입력하면 나중에 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컨대 피의자에겐 묵비권이 있는데, 숨기고 싶은 정보를 AI에 입력했다간 유출돼 법적 분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그러면서 AI가 거짓 정보를 사실인 양 지어내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 현상)'으로 가짜 판례가 생성될 수 있다고도 짚었다. 실제로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해결사' 역할을 하다가 갈라선 변호사 마이클 코언이 AI로 생성된 허위 판례를 법원에 제출했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NYT는 이와 관련, "로버츠 대법원장의 보고서가 시의적절하다는 평가가 있다"고 전했다.

미국 연방대법관들이 2021년 4월 워싱턴에 위치한 연방대법원에서 카메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다만 로버츠 대법원장의 결론은 그럼에도 "기계는 법원의 핵심 행위자(key actors)를 온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형사 사건에서 도주 가능성, 재범 여부 등 예측이 들어간 판단을 내려야 할 때 AI를 쓰면 절차의 정당성, 신뢰성, 편견 등에 대한 우려를 빚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판사는 '(재판 당사자의) 떨리는 손과 목소리, 어조 변화, 땀방울, 찰나의 머뭇거림, 순간적 눈맞춤' 등을 모두 종합해 증언의 진실성을 판단한다"며 "이런 단서를 종합해 올바르게 추론하는 일에선 기계보다 사람이 낫다고 대부분이 믿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법정에선 태생적으로 '구체적 사실에 관한 회색지대'가 존재한다는 게 로버츠 대법원장의 판단이다. 사실을 100% 파악하긴 힘든 만큼, 추론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그는 "AI는 현존하는 정보에만 기대고 있어, 판단을 내리진 못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의 민감한 현안 언급을 일부러 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NYT와 WP는 "올해 나온 대법관 윤리 강령,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 및 출마 자격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앞서 대법원은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의 '향응 스캔들'이 불거지자 지난해 11월 대법관 윤리 강령을 처음으로 채택했지만 여전히 신뢰도는 역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 관련 사건들도 '대법관들이 가장 피하고 싶을 소송'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