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역적자 100억 달러, 반도체만 보는 ‘천수답 경제’ 벗어나야
작년 무역수지가 99억7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2022년(477억8000만달러)보다 액수가 줄었지만 2년 연속 적자다. 원인은 반도체 수출 부진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23.7% 감소한 986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의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한·중관계 등이 나빠지면서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급감했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를 빼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이 20%에 육박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 물량이 10% 줄면 국내총생산(GDP)이 0.78% 감소한다. 물량 변화 없이 반도체 가격만 20% 하락해도 GDP가 0.15% 줄어든다. 반도체 수출은 투자와 소득 경로를 통해 내수와 세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분야가 주력이어서 경기 변동에 더욱 취약하다.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는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이어서 가격 등락 폭이 상대적으로 크다.
다행히 지난해 4분기 이후 반도체 수출이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의 ‘2023년 12월 및 연간 수출입 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 12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21.8% 증가하며 2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방문규 산업부 장관은 “반도체 수출이 ‘업사이클’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며 “어려운 여건에도 수출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취임 3개월 만에 여당 후보로 총선 출마를 사실상 선언한 방 장관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설령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도 과거와 같은 탄력이나 폭발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반도체와 중국 수출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은 한계에 봉착했다. 중국은 반도체에 쓰이는 희토류 수출 금지로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을 언제든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반도체만 바라보는 천수답 경제는 ‘리스크’가 크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지원은 불가피하지만, 국민 경제에서 반도체 부문의 의존도를 점차 낮추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5000만 국민의 삶을 언제까지 반도체 경기 사이클에 맡길 것인가. 재정을 풀고 민간 소비를 늘려 내수를 진작하고, 산업구조 개편으로 수출 품목을 다양화해야 한다. 반도체 수출 실적에 온 나라가 일희일비하는 일이 갑진년 새해에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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