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어떤 새해 소망
2024년, 새해가 밝았다. 나라마다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이 있다. 우리는 떡이나 만두를 넣은 국을 먹는다. 새해 염원을 담아 보신각에서 33번에 걸쳐 제야의 종을 친다. 스페인에서는 자정의 종소리에 맞춰 12알의 포도를 먹는다. 콜롬비아 사람들은 여행으로 가득한 한 해를 위해 빈 캐리어를 들고 동네 한 바퀴를 돈다고 한다. 필리핀에선 둥근 모양의 과일을 사는 것으로 새해를 맞는다. 12개의 둥근 과일이 행운을 가져온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새해 풍경은 제각각이지만,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은 한 가지다.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새해가 없다면, 우리도 시베리아 농부처럼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병에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어느 순간 곡괭이를 집어던지고 태양의 서쪽을 향해 하염없이 걷다가 쓰러져 죽는다는 병 말이다. 그러니 새해 의식이 ‘미신’이면 또 어떤가.
내친김에 새해 소망도 빌어본다. 사람들은 어떤 소망을 빌었을까. 지난달 31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새해 가장 큰 소망은 ‘임금 인상’이었다. 새해에도 국회 앞 천막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통과를 소망으로 꼽았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바라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의 새해 소망은 단연 평화다. 가자지구의 일곱살 난 소녀는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새해엔 감자칩과 딸기주스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동안 빌었던 소망 중 한두 개라도 제대로 이룬 해가 있었던가. ‘희망’을 말하고 기원하기가 해가 바뀔수록 어려워진다. 이태원 참사는 아직 진상규명조차 시작도 못했고, 법이 만들어졌지만 전세사기 기승은 여전하다. 가자 주민들의 소망은 중동을 움직이는 정치인들의 귓전에 닿지 않는 듯하다.
그래도 이들의 소망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이들의 소망은 결코 대단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해는 총선도 있다. 정치권의 유권자 ‘갈라치기’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 속에서 휘둘리지 않으려면 주권자인 시민들이 연대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일단 이 정도를 새해 다짐으로 삼으면 어떨까.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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